인 요가 과정을 수료했다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인 요가의 세계, 그리고 나

by 이소연

드디어 12월 5일, 인 요가의 4주간 여정이 끝났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참 짧았던 그런 기간이었다. 그리고 인 요가 과정을 통해 그간 잊기 쉬웠던 해부학적 지식들을 다시 상기하여 복습할 수 있었고 인 요가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유익했던 시간들이었다. 이로써 나의 티칭의 범주가 넓어지는 것이니 참으로 기쁜 일이다. 마지막엔 직접 시퀀스를 짜서 그걸 티칭 해보고 어떻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피드백도 받는 경험도 했다. 전체적으로 배웠던 내용들을 직접 적용, 실습하니 내가 전문적으로 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실감 났다.


인 요가를 왜 수강하려 했나. 그 이유는 참 단순했다. 내가 좋았기 때문에, 남들에게도 이러한 좋은 것을 경험시켜주고 싶다. 내가 배워서 알려주고 싶다. 이러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인 요가의 세계는 단순히 몸을 좋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모습의 '나'이던, '나'는 '나'다 라는 걸 알려준 좀 더 심오한 것이었다. 이론에서 '타트 바'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진리', '진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의미는 '내'가 무엇이든 '내'가 하는 것이 진실이다라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인 요가에 있어서 자세를 취한다는 것엔 정답이 없음을 의미하고, 그렇기에 함부로 남의 자세에 판단의 잣대를 드리우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르치고 강요하는 것이 그 사람에겐 '진실'이 아닐 수 있기에. 마치 요가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 있는 듯. 나는 요가를 배우지만 그와 동시에 삶을 살아가는 태도, 방식에 대해서도 배우는 느낌이었다.


사람의 체형과 몸이 다 다르고 그렇기에 인 요가에 있어서도 굉장히 많고 다양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 많은 경우의 수를 다 기억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직접 실습하고 몸소 도구를 사용하면서 터득하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이 참 신기했다. 불과 올해 초만 해도, 산스 크릿 어도 요가 동작도 전문적으로 아는 건 하나도 없었는데 이제는 그런 지식들을 바탕으로 인 요가와 해부학에 대해서 깊이 배우다니 세상은 역시 길게 봐야 하는 법인가 보다. 제일 좋았던 점은 인 요가를 하면서 왜 이렇게 화장실을 자주 가는지, 나의 몸이 왜 이 동작을 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동작을 하는 것과, 왜 이러한 동작을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에 따른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서 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그렇게 나는 예전엔 그냥 하는 것이 당연했던 태도에서 점점 탐구하고 알고 싶고 생각하는 태도로 바꿔나갔다. 이 세상에 '그냥', '당연하다'는 것은 없으니까.


인 요가는 천천히 그리고 시간이 쌓일수록 깊이감이 생기는 이치, 철학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우리가 한 동작을 몇 분이고 유지를 할 때, 1 분할 때의 느낌과 5 분할 때의 느낌은 명확히 다르다. 때론 미묘하게 다르다. 우리는 너무도 빠르게 동작을 취하고 빠른 시간 속에서 그러한 미세함의 감각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인 요가는 한 번쯤은 '느림'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은 거라는 걸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래서 우리의 몸이 좀 더 편안해질 수 있도록. 더욱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몸에게 편안함과 이완 그리고 관절, 근막에 적절한 스트레스를 줌을 통해 몸의 가동성과 건강이 더욱 원활해질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의 몸은 참 신기하다. 적절한 운동을 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적절한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받아야 건강해지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 가지의 방식으로만 몸을 움직이고 사용할 수 없다. 우리는 '반복', '이완' 그리고 '리듬'과 '멈춤'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비단, 요가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이는 우리네 전체의 삶에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한 번쯤은 우리는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연 균형적으로 살고 있는가? 몸을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사용하고 있는가? 나의 마음은 나의 주체대로 움직이는가, 타인의 잣대로 움직이는가? 나는 어떨 때, 나의 '진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가? 나의 진실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들은 계속 생겨날 수도, 계속 답해야 할지도 어쩌면 계속 답을 찾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인 요가 과정을 배우면서 나는 이러한 물음들을 떠올렸고 그에 따른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어렵다.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이러한 물음이 떠오를 환경에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렇지만 이제 생각을 했으니, 생각만으로 멈춰 선 안된다.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민하고 나에 대한 관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무엇을 하던, 우리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우리가 될 것이다. 더욱 우리답게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인 요가 과정을 통해, 나는 요가에서도 음과 양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왜 그간 인 요가를 하면서 내가 몸 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좋았는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 게 되어서 뿌듯하다. 나의 수련엔 역시 인 요가도, 빈야사 플로우도 모두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의 음과 양적인 에너지가 조화롭게 이뤄져 나의 몸을 더욱 이롭게 할 것이고 나의 마음까지도 탄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가에서 아사나는 정답이 없다. 그런데 인 요가에선 더욱 그러하다. 내가 느끼는 것이 맞다. 남이 느끼는 것도 맞다. 우리는 서로의 느낌을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해주면 된다. '내'가 느끼는 것이 곧 '진실'이기에.


인 요가를 통해 자신만의 '진실'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그렇게 나의 '타트 바'를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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