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기르는 것은 그 주변을 보듬는 것과도 같다
힘들고 고달프기만 한 줄 알았던 나의 4학년 생활은 그래도 그럭저럭 숨통은 트이며 살고 있다. 그 이유는 가장 여유롭게 짜 놓은 나의 시간표와, 그 시간표 속 나머지 빈 시간에 하는 홈 가드닝 덕분이다. 처음엔 식물 키우기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나였지만 엄마 친구분들과 함께 남사 화훼단지를 자주 가게 되었고 그 속에서 다양한 식물들을 접하게 되면서 점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더랬다.
나의 첫 반려식물은 파리지옥이었다. 어렸을 때 그림책에서나 많이 접했던 파리지옥이 화원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었다. 생소한 모습이었지만 정말 듣던 대로 움직일까 싶어 냉큼 엄마를 졸라 하나를 데려왔다. 그리고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수돗물을 미리 받았다 주는 것이 좋다느니, 통풍이 잘되는 곳에 둬야 한다느니 등등 조금씩 식물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했고 파리지옥을 3개월 동안 풍성하게 키워냈다.
하지만 첫 반려식물 파리지옥은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에 데려왔던 화원에서 분갈이를 한 이후에 죽었기 때문이었다. 이때의 충격으로 나는 한 동안 식물 근처에 가지 않았고 마음 한편에 멍을 안고서 식물을 보지 않았다. 그러나 화훼단지를 또 들르게 되었고 다시 파리지옥과 다른 식물들을 들여오게 되면서 나는 분갈이를 직접 내 손으로 해야겠다는 묘한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흙 배합과 식물 공부를 조금씩 했다.
두 번째 파리지옥은 상태가 매우 부실했으나 열심히 또 3개월 키운 끝에 다시 생기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 집 베란다의 상태를 전혀 몰랐던 나는 파리지옥을 베란다 월동을 시킨답시고 밖에 계속 내놓았고 두 번째 파리지옥은 냉해를 입고서 결국 곁을 떠나게 되었다.
파리지옥과 같이 데려왔던 국화꽃은 베란다에서 잘 지내다가 겨울철이 되어 실내로 냉큼 들여왔는데 국화는 3일이 지나고 나자 응애라는 해충이 들끓기 시작했다. 결국 처치곤란 상태가 되어 국화도 우리 집에서 몇 달 머무르다 떠나갔다.
그때 나는 우리 집 베란다와 실내의 환경이 어떠한지 궁금해졌고 다이소에서 냉큼 온도계와 습도계가 같이 있는 것을 사 와 우리 집 베란다와 실내의 온도, 습도를 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한 겨울일 때 우리 집 베란다 온도는 영상 5도에서 0도였고 한밤중 일 때 영하 5도에서 10도까지도 떨어지는 매서운 곳이었다. 어쩔 땐 영하 15도까지도 떨어질 때도 있었다. 더불어 실내는 매우 건조한 환경이었다. 실내 습도는 18도에서 20도 사이였으며 간신히 습도가 올라가면 24도로 그칠 정도로 매우 건조했다. 응애는 건조한 환경에서 잘 발생된다고 하던데 나는 그 사실을 알기도 전에 국화를 실내로 들여놓아 건조하고 따뜻한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또 한 번 키우는 환경을 알아야 한다는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렇게 숱한 시행착오를 겪고 나는 식물 키우기에 점점 흥미를 붙이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집 근처 꽃집에서 아이비와 아젤리아 철쭉을 데려오기도 했고 올해 1월엔 다시 남사 화훼단지를 들러 그토록 원했던 마란타, 에덴 로소 페페 등을 데려오기도 했다. 실내에 가습기를 3대씩 틀어 습도를 18도에서 50도까지 올리는 등 상당한 노력을 쏟아부었다. 베란다는 겨울철이 되면 매우 추운 곳이었지만 봄, 여름일 때 통풍이 잘 되고 햇빛이 잘 내려쬐는 곳이었다. 그래서 겨울엔 실내로 식물들을 모셨다가 봄이 되는 3월 중순부터 조금씩 내놓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식물을 잘 길러보겠다는 나의 열망과 노력은 집 안 환경 자체를 바꿔놓았고 매일 텁텁한 공기가 가득했던 우리 집은 촉촉한 공기와 포근한 느낌의 실내로 바뀌었다. 덩달아 우리 집 강아지인 이쁜이도 상태가 좋아졌으며 활발해졌고 엄마의 기침도 상당히 줄어들게 되었다. 식물들은 당연히 이전과는 다르게 쑥쑥 잘 자랐고 더 이상 건조함으로 인한 병충해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베란다에 내놓은 식물들은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씩씩하게 잘 자라는 중이다.
식물을 기르면서 식물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식물에만 관심을 가진다고 식물이 잘 자라지 않았다. 식물이 자라는 그 주변 환경까지도 관심을 가져야 비로소 식물이 그에 응해 잘 자라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미처 알지 못했던 집 환경의 상태를 식물 기르면서 알게 되었고 조금씩 식물을 위해 환경을 맞춰나가고 있다.
그렇게 보니 식물은 자신만을 바라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을 둘러싼 주위를 둘러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식물에만 신경을 쏟다 보면 식물이 자라는 환경이 바람이 잘 들어와 물이 빨리 마르는 환경인지 아니면 물이 좀 덜 마르는 환경인지 모르게 되고 그렇게 물을 주다 보면 과습이 오게 되면서 뿌리가 썩어 죽게 된다. 식물을 오래 보고 싶다면 그 주위까지도 관심을 가져야 오래 볼 수 있다. 그렇게 식물은 우리에게 주위에 관심을 가지라고 속삭인다. 그런 면에서 식물은 매우 검소하고 겸손한 태도를 지녔다.
나는 매일 일어나면 아침을 식물 물시중을 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식물을 기르면서 잘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괜히 뭉클해지기도 한다. 매일매일 느린 듯해 보이지만 나중에 보면 신엽이 커져있고 어느새 꽃봉오리가 맺혀있다. 식물은 조용히 자라는 환경에 응하며 살아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 하면, 아등바등 바빠지는 나의 몸과 마음이 잠시 한 숨 내려놓는 시간을 가진다.
식물이 자라는 환경이 중요하듯, 나도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 중요하다. 나 자신에게만 집중해서 자칫 주변을 쉽게 무시하거나 지나치기가 쉽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식물을 보면서 잠시 조급함을 내려놓고 이쁜이와 함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식물에게 물을 준다. 그리고 엄마도 슬며시 곁에 와 같이 식물을 본다. 식물 덕분에 베란다에서 받는 햇살이 얼마나 따뜻한지, 살랑거리며 맞는 바람은 얼마나 상쾌한지. 베란다 바깥에서 보이는 나뭇가지들은 얼마나 평화로운지. 엄마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식물을 보는 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 식물은 내게 소중한 주변의 것들을 하나씩 알려준다.
재밌는 사실은, 식물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우리 엄마가 요즘 열심히 온도와 습도를 들여다보시고 공중 습도를 위해 가끔 분무기로 물 뿌려준다. 이쁜이도 한 번씩 식물들을 킁킁 거리며 돌아다니기 바쁘다. 식물을 통해 우리 집 환경뿐만 아니라 가족도 또한 변화하고 있음을 생생히 느끼고 있다.
요가 수련을 하지 못하고 바쁜 순간들 속에서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었다. 그 숨이 막혀올 때 즈음 나는 식물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결국 식물을 기르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나와 내 주변까지 귀 기울이는 사람으로 한층 성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