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내가 기르고 싶은 것들만 자라요
우리 집에 식물들을 들여와 제법 안정적으로 기르게 된 지 올해로 5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작년 5월부터 시작된 나의 식물 집사 생활은 파리지옥을 시작으로 꽤나 다양한 식물들을 접하고 기르고 떠나보내고 다시 들여오기를 반복하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면서 식물을 우리 집 환경에 잘 적응시키려는 노력과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내가 기르고 싶어 데려온 식물들 뿐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 집에선 꽃이 잘 안 된다!
엄마는 관엽식물보다 화사하고 알록달록 예쁜 색들의 꽃을 좋아하신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파리지옥과 그 외 식물들을 제법 잘 기르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으셨는지 국화꽃을 시작으로 시클라멘, 안개꽃 등을 데려오셨다. 그러나 국화꽃은 응애의 습격으로 떠나보내고 시클라멘도 시들시들하다가 운명, 안개꽃도 1달 버티다 떠나갔다. 엄마를 위해 나도 애니시다나 용담과 같은 종류도 데려와 길러보았으나 결국 죽었다.
일단 우리 집에선 햇빛이 들어오는 반경이 매우 짧다. 그리고 햇빛이 머무르는 시간도 짧다. 저층의 한계다. 그렇기에 광량을 많이 필요로 하는 꽃 종류가 잘 될 리가 없다. 물도 충분하고 통풍도 습도도 좋으나 빛이 문제였다. 부족한 빛을 채우기 위해 다른 식 집사 분들께선 식물을 위한 LED 등을 구비하신다지만 우리 집 형편에 맞지 않는 물건이었다.(라고 엄마가 말했다)
그렇기에 꽃은 모조리 떠나보내고 그나마 살아있는 종류가 아잘레아 서양 철쭉, 불꽃 철쭉, 돌나무 과에 속하는 카랑코에 정도다. 그 외에 엄마가 빨간색을 좋아해 별생각 없이 들여온 포인세티아도 멀쩡히 살아있다.
그런데 엄마 친구분의 집에 놀러 가면 그 집은 고층인 데다 따뜻하고 햇빛도 잘 들어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집의 실내는 꽃과 잎들로 늘 화사하다. 엄마가 부러워하는 집이지만 우리 집은 우리 집대로 잘 되는 식물들이 있다며 요즘은 괜찮다고 하신다.
이쯤 되면 우리 집에선 어떤 식물들이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잘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지만)
내가 기르고 싶은 식물의 기준은 모양이나 특징이 남다른 '특이성' 혹은 남들이 잘 갖고 있지 않은 '희소성'이다.(희귀 식물을 뜻하는 게 아니라 대중적이지 않은 식물들을 말한다) 옛날부터 나는 남들과 다른 차별성을 두고 싶어 하던 별난 아이였다. 그렇게 나는 남들과 다른 취향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에 대해 나중에 브런치로 자세히 글을 쓸 날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갖고 싶은 식물 위시리스트를 적게 되었고 그 리스트들을 차곡차곡 모으다 보니 어느덧 제법 기르고 싶었던 식물들이 많이 모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씩 차근차근 살펴보자.
1. 퍼포리아 사라세니아
식충식물들 중 제일 나중에 들여오게 된 아이. 양배추 같은 외모에 사람 핏줄과 비슷한 무늬가 아주 매력적이다. 별생각 없이 기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잘 자라고 쑥쑥 커서 성장하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넘친다. 햇빛을 좀 쬐어야 초록빛에서 빨간빛으로 달궈진다. 벌레도 많이 잡아먹는 대식가 식물이다. 꽃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꼭 열심히 잘 길러내어 꽃까지 보는 것이 목표이다.(꽃도 잎만큼이나 오묘하고 특이하다) 물은 미리 받아서 하루 이상 염소 날린 물로 주고 있다. 가끔 통 속에 물이 부족하면 채워 준다.
2. 마란타
마란타 과의 마란타 레우코네우라이다.(길고 어렵다) 시중엔 칼라데아 종류라고 알려진 듯 하지만 인터넷 식물 백과에서 정확한 명칭을 살펴본 결과 마란타 과라고 한다. 칼라데아로 오인된 이유는 칼라데아처럼 잎이 움직이는 특징 때문인 듯하다. 아무튼 이 식물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사랑에 빠졌다. 자연적으로 나오는 거라 믿기지 않는 독특하고 독보적인 무늬. 대칭을 이루면서 초록색 바탕에 빨간색 무늬가 뱀처럼 느껴진다. 꽃은 의외로 작고 수수한 보랏빛을 띤다는 게 반전 매력! 현재 대품으로 성장 중이다. 까다로울 것처럼 생긴 생김새와는 달리 엄청 순둥 하며 어디서나 잘 자란다는 매력적인 아이. 나중에 알았지만 이 아이는 사람들이 많이 기르고 있어 흔둥이라고 불린다. 요즘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중인데 그 이유는 혼자서 잘 자라는 성장 속도와 밤마다 기도하듯 잎들이 위로 솟아나는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잘 자라는 건 좋으나 수시로 잎에 물을 분무해줘야 잎 끝이 타는 걸 막을 수 있다.(그 덕에 매일 분무기에 물 채우는 것도 일이다)
3. 세네시오 에인절 윙스
까탈스럽기로 나름 이름이 난 에인절 윙스. 그래도 우리 집에선 기특하게 새 잎들을 뽕뽕 연신 내주고 있다. 토끼처럼 앙증맞은 새 잎 모습이 귀여우며 전체가 보드라운 털로 덮여있어 신비롭기까지 한, 단연코 제일 신기한 식물이 아닐까 싶다. 우리 집에 오신 분들이 한 번씩은 이 에인절 윙스 잎을 만지고 간다. 보드랍고 폭신폭신하여 촉감도 아주 좋다. 여름이 휴면기라고 하여 물을 조금씩 줄이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새 잎을 내고 있기에 언제쯤 물을 끊어줄지 고민스럽다. 최근에 분갈이를 해줬는데 뿌리가 엄청 꽉 차있어서 놀랐다. 의외로 성장 속도가 빠른 편인 듯하다.
4. 나폴리 나이트 페페
너무나 귀엽고 앙증맞은 잎모양에 반했다. 그리고 오묘한 녹색빛의 컬러와 펄감. 꽃 같지 않은 긴 막대기의 꽃. 여러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다니 자연은 알면 알수록 신기한 것들 투성이다. 원래 나폴리 나이트를 먼저 데려오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에덴로소를 먼저 데려오고 그다음에 데려오게 되었다. 흙이 습한 환경을 견디지 못한다고 하여 최대한 저면관수로 물을 주다가 최근에 관수로 바꿔줬다. 그래도 잘 자라고 있다. 너무 잎들이 다글다글 하여 포기를 나눠주었고 위의 사진처럼 되었다. 햇빛도 평소에 자주 쬐어주려 노력한다.
5. 에덴로소 페페
인터넷에서 열심히 검색해보니 이 아이는 내 생각엔 에덴로소라기보다 멘도자 페페인 것 같다는 생각.(화원에서 데려왔을 땐 에덴로소라고 표기되어 있긴 했다) 아무튼, 나폴리 나이트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졌지만 자세히 보면 또 다르다. 나폴리 나이트가 좀 더 둥글둥글한 느낌이라면 에덴로소는 좀 더 뾰족한 느낌이 강하다. 이 아이를 처음 화원에서 봤을 때 초록빛이 아니라 아예 회색으로 자라고 있어서 내가 인터넷에서 봤던 짙은 녹색의 이미지와 달랐으나 그래도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좋다고 데려왔다. 나폴리 나이트처럼 둘 다 사이좋게 물 주고 햇빛도 쬐어주고 있다. 위의 사진은 4월쯤 사진으로 지금은 나폴리 나이트처럼 포기를 나누어주었다. 그 덕에 좀 앙상하긴 하지만 열심히 잎을 내주길 기다리는 중.
6. 마오리 코로키아
마오리 시리즈는 악명이 높다. 워낙 예민한 데다가 잘 기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고. 조건이 안 맞으면 잎은 우수수 떨어지는 것은 당연, 앙상한 가지만이 오도카니 있을 뿐이라는 여럿 글들을 봤으나 요가원에서 봤던 마오리 소포라는 너무 잘 자라고 있었기에 나도 희한한 자신감을 얻어 마오리 시리즈 중 코로키아를 데려왔다. 코로키아를 데려온 이유는 하늘하늘한 자태와 자유로운 가지에서 우러나오는 오묘한 아우라. 그리고 일단 전체적으로 멋져 보였다. 마치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는 걸 보여주는 듯한 가지들의 수형이 멋져 보였다. 그래서 데려왔는데 생각보다 우리 집과 찰떡이었나 보다. 새 가지도 엄청 돋아났고 새 잎도 연신 펑펑 터뜨리고 난리 났다. 어떻게 수형을 잡아줄지 고민하는데 내 졸업작품도 고민해야 하는 것이 함정이다. 참고로 이 아이가 우리 집 식물들 중 제일 비싸다.(그래서 엄마가 싫어하지만 키우는 방식은 엄마와 잘 맞는 아이러니함)
7. 바로크 벤자민 고무나무
꼬불꼬불한 이파리. 이걸로 이 아이를 데려오려고 한 이유는 설명 끝이다. 꼬불꼬불한 잎이 너무너무 귀엽고 독특하고 이쁘지 아니한가! 이 아이는 녹태고와 같이 데려온 아이인데 안타깝게도 데려올 때부터 벌레를 끼고 들어왔기에 격리를 일주일 정도 했다. 뿌리까지 싹 물 샤워시키고 방충제도 뿌리고 여러모로 들어올 때부터 고생했으나 잘 자라주고 있다. 새 잎부터 말려서 자라는데 그게 너무너무 귀엽고 싱그러운 녹색이라 참 멋스럽다. 지금은 사진보다 조금 더 자라서 지지대를 더 긴 것으로 교체해주려고 생각하는 중이다.
8. 녹태고
동글동글. 이걸로 설명 끝이다. 이 식물을 보자마자 내가 든 생각은, 이게 식물인가? 였다. 세상에 자연 속에서 이렇게나 인위적이고 기하학적인 동그라미가 존재하다니. (물론 벌집과 같은 정교한 육각형 모양을 떠올리지 못한 건 아니다, 하지만 보통 자연이라 하면 불규칙적이고 유려한 곡선들이 더 떠오르지 않나!) 만화나 게임 속에서 톡 하고 튀어나온듯한 비주얼에 당장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인고의 3개월을 보내게 되고(...) 최근에 드디어 새순들이 돋아났다. 너무 감격스럽다. 여름이라 힘낸 것 같다. 처음엔 너무 얼음이라 버리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너무 동글동글한 잎들이 견고하게 있어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잘했다 나 자신.
9. 블랙 금전수
이 식물은 엄마한테 검은색 식물을 들여오고 싶다고 보여드린 식물이었다. 엄마는 금전수가 돈을 불러온다는 식물이라 좋아했고 나는 이 광택 나는 멋진 검은색을 데려오고 싶었다. 모녀의 각기 다른 이유로 들여왔지만 결론은 잘 자라고 있다. 새순도 올라오고 잘 지내는 중이다. 성장 속도가 그리 빠른 편은 아니라 했는데 밑에 같이 딸려온 새순은 잘 크고 있다. 햇빛을 잘 쬐어야 검은색이 더욱 멋지게 발한다고 해서 햇빛도 잘 받게 하는 중이다. 이 품종이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품종이라 더욱 놀라웠다는 사실. 대단하다! 검은색을 띠는 식물이 몇 안되는데 광합성을 하면 초록색이 되는 일반 식물들과는 달리 이 금전수는 검은색으로 물든다. 그리고 이 검은색이 멋스러워 인테리어용으로도 아주 탁월해 보인다. 일반적이지 않고 고급스러운 식물을 원한다면 추천하고 싶다.
내가 작성했던 위시리스트에 있던 식물들을 쭉 나열한 것이다. 잘 자라는 식물은 여기에 추가하자면 파리지옥(결국 또 데려와 이번이 세 번째이다), 끈끈이주걱, 아잘레아 서양 철쭉, 불꽃 철쭉, 염좌, 카랑코에, 아이비가 있다. 공통점은 어떤 환경에서든 잘 적응하고 잘 자라며 특별히 햇빛을 엄청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결론은 순하다는 뜻. 물론 코로키아와 에인절 윙스는 특별한 경우인데 (둘은 결코 순둥이가 아니다) 코로키아는 무심한 듯 물을 주고 있고 우리 집의 통풍이 잘되는 환경과 매우 잘 맞는 듯했다. 에인절 윙스는 물을 충분히 관수를 해주고 코로키아 옆에 둔다. 둘 다 사이좋게 잘 자라는 모습이 보기 좋다.
최근에 나는 자취를 다시 시작하면서 집에서 나와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종종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들러 식물들을 봐주고 필요하면 분갈이나 정리 같은 것들을 해주고 있다. 내가 없을 동안엔 엄마가 대신 맡아서 물을 주고 계신다.
나는 의도치 않게 식충식물을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모은 셈이 되었고 그 외에도 갖고 싶었던 식물들을 두루두루 착실하게 모으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넓고 별난 식물들은 많다.
각 집마다 기르는 식물들이 다 다르고 잘되는 식물들이 다 다르다. 그래서 항상 다른 집에 갈 때마다 다른 식물들을 보게 되고 그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집마다 환경이 다르며 잘 자라는 식물들이 다르다는 사실은 내게 각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잘 맞는 식물들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물론 문명의 이기를 활용한다면 좀 더 윤택하고도 환경을 뛰어넘는 또 다른 차원의 식 집사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겠지만 세대주 우리 엄마를 이길 수 없기에 한 수 접기로 한다. 특이하고도 매력적인 식물들을 보며 나 또한 Unique (독특한, 특별한,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다 되뇐다. 이 식물들이 갖고 있는 고유의 특징, 개성들을 나처럼 좋아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보는 그런 어느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