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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Aug 25. 2022

익숙지 않은 '나'를 마주하기

부러움은 부러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종종 우리들이기에 잊어버리곤 한다. 익숙함에 속아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에 사로잡히기가 너무나 쉽다는 사실을. 타인이면 그래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으나 우리들은 우리 그 자신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거리 두고 바라보기가 매우 힘이 든다. 요가를 하면 좋은 점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수련하는 방식을 통해 삶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작년 수련 중 철학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수련생 분들께 건네셨다.


"여러분들께선 수련을 하실 때 어떤 마음으로 하시나요?"


고요한 적막 속에서 고른 숨소리만 들렸다. 다들 열심히 수련을 해왔으나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수련에 임했는지 돌이켜보지 못한 것일 수도,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나 또한 묵묵히 수련을 했을 뿐 어떤 마음으로 수련을 해왔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분들과 다 같이 수련을 할 때 나는 못하는 동작을 저 사람이 하고 있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이 드세요? 부러우신가요?"


철학 선생님께선 그렇게 좀 더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예시를 드셨다. 몇몇 분들은 가만히 계시기도 하고 살짝 웃으시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시기도 했다. 제각각인 반응들 속에서 철학 선생님께선 웃으시며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다.


"부러움이 드실 수도 있죠. 그런데 부러움은 부러움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내가 잘하지 못하거나 아예 할 수 없는 것을 타인이 해냈을 때 느껴진다. 나는 못했으나 남은 해냈다는 격차 속에서 벌어지는 간극을 감정은 부러움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부러움은 부러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부러움이 진정 무서운 이유는 부러움 뒤에 따라 나오는 그 이상의 것들 때문이다.


"나 자신은 왜 이리 할 수 없을까에 대한 무력감, 자책감 그리고 시기와 질투... 여러 가지 불순물들이 뒤따라오기 마련이죠.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 스스로를 망가뜨려요."


우리 스스로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 불순한 것들은 우리 마음속에 잠식해간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 무감각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부러움이 느껴졌다면 부러워하세요. 그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익숙지 않지만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세요."


부러움을 느끼는 자신을 인정하기 싫어서 뒤 따라 나오는 잡다한 것들에 마음을 뺏기기 쉬운 우리들. 그런 우리들의 상태를 스스로 바라보고 느끼고 솔직해지는 것은 분명 쉽지 않고 익숙지 않은 일이다. 부러움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분명 큰 시작이다. 그렇게 그날의 요가 수련은 좀 더 밝은 분위기로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가엔 무수한 동작들이 존재한다. 머리 서기부터 핸드 스탠드, 경이로운 후굴 자세까지 정말 무궁무진한 세계다. 아사나들은 각기 다른 에너지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은 본래 모든 아사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현대사회의 각박한 삶 속에 맞추느라 몸과 마음이 경직되어, 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경이로운 아사나들을 퍼포먼스처럼 해내는 것에 열을 내다간 마음이 다치기가 쉽다. 요가 수련은 수련자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바라보고 자신이 현재 어떠한지 현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부러움이 느껴지는지 자신이 무엇에 부러워하는지를 알아차리기. 그것 또한 익숙지 않은 수련의 시작임을 깨닫는 것.



부러움을 인정하고 부러움을 부러움에서 끝내는 것.


계속 현재의 나 자신과 함께하다 보면 정말로 부러움이 부러움에서 그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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