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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Aug 24. 2022

나의 한계는 내가 만든다

그리고 그 한계를 부수는 것도 나의 몫이다

 홀로 수련을 하다 보면 작년 요가원에서 수업을 듣던 때가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요가 수련을 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아닌 적이 훨씬 많았고 이번 글 또한 새삼 알아차렸던 깨달음 중 하나이다. 요가를 하면 발 간격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발 간격이 골반 너비인지 아니면 발을 아예 붙이고 있는다던지에 따라 생각보다 많은 감각들이 느껴지고 같은 동작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일어서서 하는 스탠딩 자세에서 발 간격은 그만큼 조용하지만 큰 존재로 느껴지기에 충분하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항상 발을 골반 너비 정도로 벌리고서 요가를 해왔다. 발을 붙이기까지가 너무 힘들었고 나의 몸 또한 발을 붙이면서 요가 동작을 할 만큼 좋지도 유연하지도 못했다. 수리야를 할 때마다 발 간격을 유지하며 진행했었고 작년 새로 다닌 요가원에서도 역시나 발 간격을 골반 너비로 유지하며 수련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요가 선생님께서 내게 말을 건네 오셨다.


"요가원에서 수련을 꽤 많이 오랫동안 해오셨는데 왜 계속 발 간격을 넓혀서 하세요?"


나는 순간 당황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의 발 간격에 익숙해졌던지라 골반 너비로 벌리는 건 당연했고 익숙함에 속아 나의 몸이 어떤지조차도 잘 몰랐다. 그리고 나는 내 한계점을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발 간격을 넓혀 수련하는 건 내게 맞는 방식이라 믿었다. 


"아직 발을 붙여서 할 만큼 유연하지도 잘하지도 못해서요."


그러나 선생님께선 웃으시며 이렇게 말을 해주셨다.


"발을 붙여서 해보셨어요? 하지도 않고 벌써부터 한계를 만드시면 어떡해요. 오늘 수련은 한번 붙여서 해보세요. 색다른 느낌이 드실 거예요."


선생님의 따스한 그 말씀이 그날의 내게 어떠한 울림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발을 간격 없이 딱 붙여서 수련을 했다. 발을 붙여서 간격 없이 하는 수리야는 참으로 놀라운 감각의 연속이었다. 그날의 수련 느낌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발을 붙이니 발바닥 4 코너의 고른 감각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단지 서있을 뿐인데도 서있는 자세에서부터 땅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발을 붙이며 하는 우르드바하스타사나는 발에서부터 다리까지 느껴지는 강한 힘으로 손끝까지 에너지가 전해졌으며 발을 붙이며 하는 우따나사나는 간격을 넓혀서 했던 우따나사나 보다 훨씬 힘들고 허벅지 뒷면의 열림이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발을 붙이며 하는 아르다 우따나사나는 허벅지 앞, 뒷면의 고른 열림과 다리의 지지로 인해 더욱 상체를 견고하게 뻗을 수 있었다.


그날의 수련 이후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익숙한 한계를 만들어내어 그 속에 갇힌 것은 나 스스로였다는 걸. 그리고 그 한계를 부수는 것 또한 나라는 걸.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고 단정 지어 발 간격을 넓혀 수련했던 것에 반성했다. 옛날의 몸과 지금의 몸은 또 다르다는 것을, 나의 몸은 시시각각 다르게 변화하고 그에 맞춰 나의 수련방식 또한 변화했어야 함을 뒤늦게 인지했다.


현재 혼자서 매트 앞에서 수련을 할 때 나는 나의 발 간격을 본다. 발 간격을 넓혀서 했던 습관이 있기에 나도 모르게 간격을 넓혀서 수리야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바라본다. 이젠 발을 붙여서 스탠딩 자세를 하는 것도 수리야를 하는 것도 제법 익숙해졌다. 여전히 힘들지만 옛날의 내가 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 단계는 지났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그에 따라 응원해주자. 


나의 한계를 만드는 것은 나지만 그것을 부수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것조차 나만이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오늘의 수련도 미약하지만 작은 변화 한걸음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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