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요가 지도자 과정 때 썼던 에세이 주제들 중 이 주제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그것은 Satya 진실이다. 그때 당시 나는 진실이라는 주제를 듣고서 내가 나 자신이 얼마나 솔직한 사람인지, 그리고 요가를 통해 얼마나 솔직한 몸과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서술하면서 나중에 나의 전 남자 친구와 나를 비교하며 내가 얼마나 그에 비해 솔직하고 떳떳한지를 과시하는 글을 썼다. 나는 참으로 겉과 속이 같으며 투명한 사람이다라고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에세이에 대한 철학 선생님의 답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철학 선생님께 왜 아무런 말이 없으셨는지 여쭸고 선생님께선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네 에세이엔 남의 이야기가 써져있었어."
나는 나에 대해 썼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라 남을 헐뜯고 나를 더 돋보이기 위해 남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썼던 것이다. 그때 당시 나는 전 남자 친구에 대한 엄청난 원망과 증오로 불타 있었고 그는 나와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그런 대담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글에 진실은 보이지 않았고 나의 허영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도 그 글을 보면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를 이리도 과시하다니. 정말로 내가 나 자신을 온전히 다 안다고 확언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면서. 계속 현재도 나 자신과의 교감을 해야 알 수 있는 사실들을 이리 멋대로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인가.
나도 사람인지라 때론 거짓말을 하고 때론 속이고 때론 나약하고 때론 게으름을 피운다.
나는 나 자신을 참 좋고 솔직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요가 수련을 한 만큼 좋아지는 솔직한 몸처럼 나 자신도 그런 솔직함을 담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그러나 철학 선생님과의 대화 이후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어쩌면 잘 모를지도 모른다는 불편함을 깨달았고 나 자신에 대한 오만함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실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의 성격을 단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나란 존재를 단 하나로 축약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때론 질투가 많을 때도 있고 때론 슬픔에 휩싸이기도 하며 때론 예민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좋은 사람, 솔직한 사람으로 규정짓기엔 나는 너무나도 다양한 생각과 감정과 경험 그리고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너무나도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다. 그런 나란 존재를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단정 짓기엔 너무 단조롭지 않은가.
철학 선생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선생님의 진심 어린 한 마디. 묵직하면서 진실된 말씀. 무게감이 느껴지면서 그 내면엔 따뜻함이 묻어난다.
이 한 마디를 계속 기억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바쁜 생활에 휩쓸리면서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에세이 주제를 떠올리니 다시 기억해낼 수 있었다. 이 한 마디로 나는 나의 부족했던 과거의 나의 모습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보다 공부도 못하고 무엇을 하던 느리고 남들에게 밀리기만 했던 과거의 나 자신. 나는 대학교 생활을 보내면서 그 이전의 나를 스스로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과거의 나 자신까지도 나를 이루고 있으며 지금의 변화된 나도 나다. 모자라고 느린 나로 규정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나로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인 것이다. 어떤 나든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단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존재. 그것이 나라는 소중한 존재.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그런 나였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나를 통해 미래의 나도 성장해 있을 것이다. 요가를 하면서 몰랐던 요가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되고 나의 몸이 얼마나 솔직한 체질인지 알게 되고 식물을 키우면서 식물을 좋아하게 된 것은 다 나의 변화이며 계속해서 알게 되는 나라는 존재의 신비로운 부분들이다.
진실은 하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진실을 이야기하고 진실에 다가가고 진실로 나를 마주하기 위해선 하나만을 바라봐선 안된다. 그리고 은연중에 나 자신을 이야기한다는 명목 하에 남을 이야기하고서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착각을 하는 건 아닌지도 알아차려야 한다. 그건 나 자신에게 하는 거짓이나 다름없으니까. 생각 외로 우리는 남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쉽게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떠올리거나 생각해본 적은 잘 없다. 그렇기에 낯설고 불안하고 마주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만 남을 의식하고 남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자.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차근차근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자. 명상은 나 자신과 오롯이 함께 해주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나에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자.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떤 걸 보든 간에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자.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 하나로 단정될 수 없고 무한한 길이 열려있으며 어떤 길을 걷든 그것 또한 나의 의지이기에.
저 한 마디를 떠올리기 위해 다시 오랜만에 요가 에세이를 들여다보았고 요가 에세이 주제를 끄집어내었다. 일상 속의 무지함이란 이리도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다시 알아차리고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 내가 다시 잊어버리고 있던 나 자신의 가치를 일깨울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