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왓츠라는 저자는 신학박사 과정을 공부했고, 서구에서 ‘비통속적’ 철학자 중 한 명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분은 선불교에 능하고, 서양의 정신의학을 동양의 철학 사상과 연결하여 책을 저술하였다. 책의 2/3 정도를 읽었는데, 매우 집중하면서 단시간에 봤다.
난 개인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12년 동안 받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매우 오랫동안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얼핏 보면 그것이 맞는데, 이 책에도 나오지만 나처럼 만성적이고 상처가 깊은 사람은 주 2회씩 20년을 받는다는 것이다.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을 상담 받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머릿속에 남는 내용은, 깨달은 자는 그러니까 치유가 된 자는 세상에서처럼 구분하는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오직 감각만이 남아 있다. 이 자극은 이들을 흔들지 못하고, 오히려 평화 속의 진동으로 느껴질 뿐이다. 노자와 장자에서 말하는 경지를 뜻하기도 한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부터 들어보자. 유도를 배우러 간 생도는 스승에게 공격을 시도한다. 그런데 그 공격으로부터 스승은 가벼이 피하며, 제자의 공격이 허물어지게 한다. 깨달음의 과정도 이와 같다. 스승은 제자가 물어오기를 기다리고, 제자의 질문을 가볍게 피한다. 그럼으로써 제자에게 되묻게 하고, 이 과정을 거쳐 공부를 이뤄가는 것이다.
한 정신과 의사가 어느 선사에게 ‘신경증 환자를 어떻게 다루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선사는 “나는 그들이 더 이상 질문을 할 수 없는 곳에 몰아 넣지!”라고 하면서, 그들을 덫에 가둔다, 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신경증을 앓고 있는데, 그럴듯한 비유로 들렸다. 신경증은 세상의 경쟁상태로부터 도피한 상태이다. 이들을 다시 세상속으로 집어 넣는 것이, 신경증을 치유하게 한다.
유도 선생은 생도에게 그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도록 납득시키는데, 이 게임이 합의되어야 제자는 스승으로부터 많은 배움을 얻게 된다. 난 이 사례처럼 인생을 살지 못했다. 스승에게 먼저 복종한 다음에, 때가 되어 벗어나야 한다. 난 스승을 너무 우상화해 그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던가, 너무 믿지 않아 사제 관계라는 게임이 형성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깨달은 자는 인생을 연극처럼 받아들인다. 무엇에도 심각해하지 않으며, 비극을 희극으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스승이 그럴 수 있는 것은 ‘무심’을 체험했기 때문이고, 무엇에도 빠져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그칠지를 아는 사람은 불멸을 이룬다.”라고 노자는 말하는데, 이것이 무위를 의미하고, 이것이 저절로 되는 사람을 스승이라 한다.
심리치료의 한 예를 들면, 치료자가 내담자를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느끼지 않아야, 내담자와의 치료 관계가 종료될 수 있다. 그러니까 치료자가 내담자를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면, 내담자는 문제가 진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내담자는 다시 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에서 현인들이 제자 지망생에 대해 가지는 태도와 꼭같다.’ 그러므로 진정한 치료는 치료자가 내면적으로 자신이 진정 마음이 편안한가에 달려 있다.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다고 진짜 스님으로 출가하는 게 아니라, 비본질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본질에 집중하고 싶었다. “정상적으로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아무도 수도 생활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 말은 사회화 과정을 거쳐 ‘가족 봉양과 자신의 직업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수행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방에서 해탈의 과정을 겪은 자는 갖은 고통과 경험을 쌓는다. 이후 해탈에 이르면 ‘대처승이 되기도 하고, 평신도 생활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이제 세속인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은 왕과 같은 인생을 산다. “먹고, 놀고, 여인과 재산 그리고 가족을 즐기되 결코 자신의 몸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매우 집중해 읽어, 여기까지 정리가 되었다. 나머지 1/3 부분의 내용도 내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이라 기대된다. 그동안 읽은 신화학자의 책과 선불교에 관해 알게 된 책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요즘 심리치료가 더딘 시기인데, 이 책에 자극받아 더욱 치유에 힘을 쏟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내 마음에 힘을 준 지혜로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