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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웅 Jan 24. 2023

우리들


오늘 정신이 혼란스러운 일을 겪었다. 감정의 밑바닥과 닿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요즘 참여하는 집단상담에서의 시간에서였다. 오늘은 이 이야기와 방금 본 영화 ‘우리들’을 말해 본다.

 

집단상담에서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건은 갑자기 벌어지는 법이다. 집단원들이 아버지와의 불편감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며 듣고 있었다. 그러다 내 이야기를 할 순간이 왔다.

 

한 집단원이 내가 지난 번에 했던 행동이 조금 불쾌하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에 반응을 못하겠더라. 그리고 다른 집단원은 내 행동을 지지해주었다. 그 말에도 지지해 줘서 고맙다는 반응을 못했다. 이 상황이 되니 내가 어떤 걸 느끼고 행동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조금 더 이야기가 진행되고 처음 집단원이 계속 내가 반응하지 못하니 더 불편하다고 했다. 나는 듣고 있다 보니 답답하고 혼동스러운 마음이 속으로 들었다. 그래도 반응이 안 됐다. 결국에는 “나도 안 되는데 어떡하냐고”라고 소리를 질렀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반응을 못하니 집단의 리더가 평소에 화낸 경험이 없느냐고 물었다. 난 없다 했고 화내는 연습을 했다. “씨발놈아”, “재수없어” 이 말을 조용히 내뱉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화제가 돼 내가 화를 못내고, 반응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듣다 보니 진이 빠지는 것처럼 몸에 힘이 없어졌다. 그렇게 집단은 끝났다.

 

감정의 밑바닥과 닿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보다, 라는 걸 느끼고 경험했다. 한 마디로 혼란스럽다. 나는 이 감정이 싫지 않고, 꽉 뭉쳐 있던 응어리가 부드럽게 풀리는 것처럼 느껴져 좋았다. 아무튼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다 학교에 도착해, 지금 책 보기는 그래서 영화를 한 편 찾아서 봤다. 제목이 <우리들>이다.

 

내용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주인공 소녀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외롭게 생활하는데, 전학 온 어느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다. 단순한 스토리지만 여성 감독은 섬세하게 주인공 소녀들의 마음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감정이입이 제대로 돼, 나도 주인공 소녀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의 학창 시절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 더욱이 요즘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하는 내 모습도 닮겨 있어서 인상 깊게 보았다.

 

환경이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고, 어머니는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를 챙기지 못하고 정신 없게 사는 모습이었다. 우리집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는 부모님과 환경 탓을 할 생각은 적다. 왜냐하면, 20대 전까지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에게 전적으로 의지해 생활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상황이지만, 20대를 넘어서는 자신이 자기를 책임지며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갖고 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정신의학에서는 6살 때까지 어머니와 어떠한 친밀감을 나눴느냐에 따라, 감정 발달이 결정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나는 거기서 모든 발달이 끝난다고 보지 않는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살아온 범주를 벗어날 수 없어,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생부터는 자기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반응하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이 크다고 본다.

 

글을 쓰는데 갑자기 “씨발”이란 단어가 내뱉어진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 남에게 맞춰주고, 남의 눈치를 많이 봤다. 또한 남에게 피해를 입어도, 화가 나도 그걸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예의 있는 말로 설명해 주는 어이없는 행동까지 한다.

 

삶에서 예의는 중요하지만, 당분간은 내가 그냥 행동되는 대로 해야겠다는 걸 느낀다. 그러다 실수할 수도 있겠지.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고, 일단은 지르는 게 먼저다. 집단상담에서도 리더가 내가 안쓰럽게 느껴졌는지 안정제를 먹고 있느냐고 물었다. 리더는 내가 날카롭고 직설적이긴했지만 에너지가 느껴지는 예전 모습이 더 좋았나보다. 나도 동의했다. 안정제를 줄이고, 에너지를 더 돌게 해야겠다.

 

지난 9년 동안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충분히 했다. 이젠 감정을 끌어내고 표현해 보는 작업을 해 봐야겠다. 나는 그렇게 한 쪽으로 치우친 모습을 보인다는 게 문제면 문제다. 아무튼, 나의 약점인 감정을 계발하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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