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4년 전에 쓴 자서전 <청춘을 다시 산다면>을 다시 훑어봤다. 빠른 시간에 살펴봤음에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2가지 이야기를 해 보면 좋겠다.
가장 먼저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신경증을 앓았고, 그 후 15년 동안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30살에 심리치료를 정신과에서 시작했다. 그때 고시원 야간 총무 일을 했었는데, 정신과 선생님이 다른 일을 해도 좋다고 했다. 1년을 집에서 백수처럼 지내다, 우연히 첫 취업이란 것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좋은 선배를 만나 15년 만에 친구 같은 존재가 내게 생겼다.
28살에 고집을 세게 부리다, 세상과 꽈당하고 부딪히며 쓰러졌다. 그 후 마흔 중반을 살고 있는 지금까지 여진이 있다. 대학 때 사회공포증이 있어, 사람을 두려워하는 나였다. 그래서 첫 회사에서도 친한 선배 외에는 가까워진 사람이 없었다. 내 또래의 젊은 직원들이 입사해도 난 가발을 쓰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다. 아무튼, 그렇게 조금씩 세상과 만나는 삶을 살았다.
평소라면 교회에 나갈 리가 없는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기억이 있었다. 그분에게 받은 사랑이 하나님에게 받는 사랑인 것 같아서 서른 초반에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도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조금씩 사람들과의 만남을 늘려 갔다. 같은 샘터 형이나 누나들과 긴장하면서도 재밌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내게 낯설다. 그래서 아마 난 지금 결혼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이것이 맞을 것이다. 난 태생이 불안정 회피 애착이다. 어머니가 많은 사랑과 관심을 쏟아준 편은 아니다. 이런 나는 부끄럼이 많고, 나 스스로 창피해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이것이 치유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 스캇 펙 박사의 말대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한 상황’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 작가와 심리상담가에 열정을 가진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책 읽기를 우연히 좋아하게 되면서 최고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 때부터 20년 동안 읽기에 집중했다. 이것은 자연히 글쓰기를 즐기는 나를 만나게 했다. 신화학자 할아버지의 말마따나 “10년이고, 20년이고 그저 써라. 당장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려고 하는가? 자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계속 해라.” 조셉 캠벨이 말한 것을 대충 옮겼다.
심리상담가는 요즘 관심이 많이 가는 것이다. 난 상담심리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심리상담가를 하기에는 부족한 자질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쪽으로 진로를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려 했다. 그런데 이 직업을 좋아하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난 스캇 펙 박사가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당신이 좋은 치료자가 될 수 있을 때, 심리치료는 종결된다.” 난 좋은 치료자가 될 것이다. 즉 심리치료 과정을 끝까지 가서 마칠 것이다.
최근에 생각하고 있는 ‘마음 돌봄 프로그램’이 있기도 하다. 이것은 사람들의 지친 정서를 회복하게 돕는 시간이다. 그리고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재해석하게 돕는다. 또한, 자신의 마음 성장을 계속하게 한다. 사실 심리상담가는 내가 20대 후반부터 관심을 가졌던 분야다. 20년을 돌아왔지만, 난 나를 치료해 주고 사람들을 도울 것이다. 어느 책에서 봤지만 미용하는 여자였는데, 주변의 노숙자를 도와줬다. 그녀는 미용 직업을 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헌신할 수 있는 천직으로까지 끌어올렸다. 노숙자들의 머리를 깎아 줌으로써 자존감을 높이는 활동을 했다. 나도 이 여자처럼 나의 본업으로 세상을 돕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