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청춘의 절정에서 고집을 세게 부리다 고꾸라졌다. 그 후 여기 가면 욕을 먹고, 저기 가면 쫓겨났다. 대략 남들보다 방황을 10년을 더 했다. 청춘은 방황하는 시기인데, 난 40대 초반까지도 방황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40대 중반인데, 내 삶은 그야말로 암흑 그 자체다.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20년을 정신병자와 같은 삶을 살아온 내게는 당연한 모습이다. 다행이 난 심리치료를 정신과에서 15년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예전의 사건으로 여진은 오랫동안 이어진다.
인간에게 왜 루틴이 필요한가? 바로 나처럼 인생의 질서가 무너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루틴을 따르면 최소한 삶에 중심이 잡힐 것이다. 사람마다 루틴의 종류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취미 생활이고, 하는 일이고, 또는 종교이다.
난 종교를 믿을 생각이 없었는데, 루틴이 필요해 종교에 관심이 많이 갔다. 요즘은 다시 자유로운 작가들의 글을 읽고 있어서, 종교 기관에 나갈 마음은 없다. 다만, 종교인처럼 내 삶을 그 질서 위에 세워보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느낀다. 그만큼 내 삶은 무너졌고, 인생이 처절하고 절실하기 때문이다.
난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인생은 졸라 짧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 이런 말을 요즘 자주 읽고, 여기서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내게 종교는 잘 와 닿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난 종교와 관련하여 훌륭한 인물을 알고 있다. 정신의학자 스캇 펙이 그 사람이다. 이분은 종교와 심리치료를 결합했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건 그렇고, 요즘 난 심리치료와 코칭을 연결할 생각이 가득하다. 종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되는데, 지금 생각으로는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자유에 맡기려 한다. 그러면 종교 말고, 나에게 루틴을 만들어 줄 것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내게 중요한 관건이 되겠다.
난 홀로 생활하길 좋아해서, 공동체에 속하는 것을 딱히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싫어하는 편은 아닌데, 나에게 잘 맞는 공동체도 잘 없다. <역발상의 법칙>이란 책에 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나처럼 ‘그 집단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뽑으라 했다. 그런데 한국의 조직은 나 같은 인물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조직에 활기를 부여하는 존재인데 말이다.
그래, 그나마 공동체에 속하게 되면 루틴은 자연히 만들어진다. 그런데 내게 어울리는 공동체가 잘 없다. 심리치료 공동체도 안 맞고, 코칭 공동체도 딱히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이 둘을 결합한 공동체를 만들면 되는데, 이것은 당분간 요원하다.
‘네 마음대로 하라는 거지.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거지.’ 난 이런 김어준 총수의 닥치고 삶을 사는 것에 마음이 끌린다. 다시 말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졸라 짧으니, 우리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루틴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이 순간 나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 좋다.
정리하자. 난 종교 이론을 따르는 무신론자의 삶의 살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인생을 산다. 대표적인 인물이 지식인 리영희였다. 이분은 기자였는데, 아무튼 종교 이론을 무시하지 않았다. 난 철학적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심리치료와 코칭을 합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고, 나중에는 이것을 철학적으로 풀어내고 싶다. 이것이 나의 루틴이 될 것 같고, 난 이런 인생을 살다가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