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처는 잘 낫질 않는다

by 김신웅

상처 많기로 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난 태어나서 1살 때 머리카락의 절반 부분이 화상을 입었다.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 나의 부모님이다. 어려서부터 난 성인아이로 자라야 했다. 아이처럼 행동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대리 남편 역할까지 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때의 뿌리 깊은 상처는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6세까지 주된 양육자인 엄마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정신 건강이 결정된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수치심을 깊이 느끼고,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청소년기 때부터 가발을 쓴다는 것에 관해 창피함을 많이 느꼈다. 또래 여자아이들 앞을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수줍어했다. 이런 나는 자연히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하는 발표 수업을 대학 때까지도 가장 두려워했다.


정신의학자 스캇 펙은 정신 치료는 되도록 이른 시기에 받으면 좋다고 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즉 지금의 한 땀이 나중의 아홉 땀을 던다는 말과도 같다. 나의 부모님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기도 바쁜 분들이었다. 그래서 우리 남매들에게 부모로서 적절한 울타리 역할을 못해 줬다.


나의 경우에는 더 안 좋은 것이, 28살 때 어머니와 크게 부딪힌 사건이다. 그때 고집을 너무 세게 부렸기에 난 정신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 후 피해의식과 과대망상에 자주 빠졌다. 이것은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나를 스스로 믿지 못하는 상태이다. 난 생각으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고 할 경우에 문제가 된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는 자의식 과잉 상태를 나도 살고 있다. 이것은 결국 용기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현자들이 ‘두려워하지 마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 관련 서적에 보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의 부모는 너무 바빠서 그를 아기 때부터 잘 돌보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그는 사람들과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꼈다. 스스로 많이 고독했고, 사람들과 잘 사귀지도 못했다. 이와 반대되는 상태는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지내는 것이다. 이들은 느릴지언정 언젠가는 풍성한 나무처럼 성장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한다.


이 두 사례를 놓고 보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지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나처럼 첫 번째 경우처럼 살아간다. 행복지수에 관심이 많은데, 행복한 사람들은 사람과의 관계가 친밀하다고 했다. 나의 경우에는 마음이 전시 상태라서, 항상 전쟁 상황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다. 이것이 잘 버려지지 않고, 자유로운 작가들의 영향을 포기하려는 마음도 적다.


그런데 다행히 요즘 생각하는 것은 인생의 동아리에 관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정치 평론을 하는 사람이 있고, 경제 예측을 하는 사람 또한 있다. 나는 온정적인 삶에 관심이 많이 가서 치유와 코칭 영역에 속하고 싶다. 물론 이 분야에서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내 마음이 그쪽으로 많이 간다는 것이다.


당분간 나는 책 읽기와 글쓰기로 관련된 활동을 할 생각이다. 문제는 시간이 많은 데도, 생각이 복잡해 집중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상처가 깊고, 아직 낫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난 심리치료를 꽤 오랫동안 받더라도 치유될 것이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이겨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내게 중요한 삶의 화두가 된다. 왜냐하면, 훌륭한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심리치료와 종교는 다루는 범위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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