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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김세원 Oct 08. 2020

유통과 맛의 협업, 컴포트한 한 그릇을 제시하다

불발탄




우리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한 그릇의 음식, 최근 이 ‘한 그릇’의 간편한 식사를 얼마나 쉽게 즐기는 ‘공간’을 만드느냐가 일선 프랜차이즈 현장에서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들려온 소식만 봐도, 밀폐용기와 주방용품 제조 전문 브랜드 락앤락과 국내 대표 식품 유통 그룹 SPC, 그리고 종로에서 최근 ‘감성 편의점’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플래그십스토어 ‘고잉메리’를 오픈한 옥토끼프로젝트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들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 또한 같으면서도 다른 듯 닮은 점이 많다.



같은 듯 다른 듯, 편의점과 비스트로 사이의 너

종로 감성편의점 ‘고잉메리’를 탄생시킨 옥토끼프로젝트의 진면모는 결국 ‘맛’을 찾아 전국 각지의 식당을 돌고 돌았던 이들의 콜라보레이션에 있다. 가게의 분위기도 독특하다. 천편일률적인 ‘레트로’ 무드의 옛날 분식집이 아닌, 고급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모던한 인테리어로 우선 손님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제공하는 음식은 아무리 봐도 분식이 다수인데, 내용물이 수상하다.



고잉메리를 완전한 ‘분식집’으로 묶기에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괴라면 등 분식의 외양을 한 메뉴판을 옆으로 치워 보면, 다른 한 쪽에서는 한남동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 ‘부첼리 하우스’에서 직접 양념한 스테이크를 공수해온다. 이것도 모자라 상당한 관록의 펍이 아니고서는 볼 길이 없는 각양각색의 와인을 무려 한 잔의 글라스로 판매하는 것으로 가성비와 낭만을 동시에 잡았다. 세상에 어떤 분식집이 스테이크와 산뜻한 와인 한 잔을 함께 즐길 수 있단 말일까? 고잉메리는 그걸 해내는 공간이다.

 이렇듯 ‘신선한’ 맛 스토어의 등장은 비단 고잉메리 뿐이 아니다.



SPC 그룹이 광화문 한복판에 오픈한 간편한 맛집, 스내킹(Snacking) 브랜드 ‘시티델리’ 역시 이와 마찬가지의 특성을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고잉메리와 다를 게 없는 모던한 프리미엄 편의점 느낌이다. ‘그랩 앤 고(Grab and go)’라는 시티델리의 구매 방식 역시 전형적인 편의점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고잉메리가 숍인숍 형태로 분식집과 주점을 편의점과 같은 공간에 배치했다는 점, 그리고 부엌에서 종업원이 요리해서 서빙하는 공식을 통해 역동성과 아날로그적 요소를 갖췄다면, 시티델리는 이와는 전혀 반대의 개연성을 보인다.


간편한 조리와 스낵 바를 셀프로 이용할 수 있는 특징 때문이다. 게다가 1인도 쾌적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게끔 1인 테이블과 콘센트를 잔뜩 배치한 점도 시티델리를 더욱 쾌적한 ‘프리미엄 어반 스타일’로서 앞선 감성편의점 고잉메리와의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는 ‘혼밥남녀’가 대세다, 공간도 마찬가지여야


SPC 그룹은 관련 보도를 통해 “최근 외식 소비의 흐름이 ‘집밥’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종래의 핵가족을 대표하는 4인 가구보다 독신층 등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는 사회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혼자 밥 먹는 사람(통칭 ‘혼밥족’)’의 이야기가 마냥 노량진 공무원 수험생들의 이야기가 아니란 뜻이다. 광화문 시티델리의 런칭에는, 바로 이에 따라 급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간편하지만 맛있는 식사’에 대한 잠재수요가 있었다.


게다가 근래 나온 통계에 따르면, 최근의 ‘혼밥족’에는 종래의 편견처럼 2030 청년층만 포함되는 게 아니다. 경희대 식품영양학과 정자용 교수 연구팀이 013~2017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이용, 만 40~64세 성인 총 7728명을 대상으로 도출한 분석에 따르면, 중년 남녀가 ‘혼밥’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한 끼를 혼자 먹는 일은 이미 반 이상(중년 남성 50.8%, 중년 여성 61.1%)이었으며, 세 끼를 혼자 먹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했다. 시티델리의 노림수는 현재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종래의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캐치프레이즈인 ‘우리 가족의 특별한 밥상’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앞서 소개한 옥토끼프로젝트의 감성 편의점 ‘고잉메리’와 궤를 같이 하는 지점이 다분하다. 바로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일상’을 선사하기 위해 기획된 공간이라는 점에서다.

이쯤에서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이런 ‘혼밥족’들에게 친절했을까? 정리하자면,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권에서는 그래도 양반이다. 하지만 당장 국내 식도락 여행을 떠난 ‘혼밥족’의 이야기만 들어 봐도, 혼자 식당에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경우는 아직도 부지기수다.


혼자서도 간장게장이, 혼자서도 맛있는 남도식 백반 한 상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남은 음식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등의 문제로 여전히 혼자 밥 먹기 참 어려운 세상이다.


컴포트한 반찬 가게에 입힌 라이프스타일 플레이


그런 의미에서 앞서 소개한 SPC의 간편식 스토어 ‘시티델리’, 옥토끼프로젝트의 감성 편의점 ‘고잉메리’, 그리고 지금 소개할 락앤락의 콘셉트 스토어 ‘플레이스엘엘’ 역시 확실히 주목할 만한 트렌드 현상 가운데 하나다.

플레이스엘엘의 첫 시작은 안산 단원구에 낸 1호점에서 비롯됐다. 그때는 사실 간편식 스토어의 특성보다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라는 카피가 더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애당초 락앤락 역시 플레이스엘엘의 콘셉트를 ‘락앤락이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 매장으로 정의했다. 콘셉트 쇼룸에서는 락앤락의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볼 수 있고, 카페에서는 모든 음료를 락앤락 스윙텀블러에 담아 판매하며 자연스럽게 ‘일상 속 락앤락’을 실현한다.

바로 이랬던 락앤락의 플레이스엘엘이 조금 더 색다르게 변모한 것은 지난 12월 초에 5호점으로 개장한 일산식사점에서부터다. 요식 브랜드 ‘식객촌’과 손잡고 낸 간편식이 바로 여기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전국 각지에서 식객들을 불러모은 노포 맛집의 한 그릇을 재현한 간편식이라니. 매력적이다. 여기다 ‘자미당’의 찹쌀 꽈배기 도너츠며 ‘우주인 피자’의 냉동 화덕 피자, 건강 도시락 ‘에브리밀’ 등 8가지 브랜드의 제품까지 더해 다양함을 살렸다.

그러나 이곳이 앞서 소개한 감성편의점 고잉메리, 간편식 스토어 시티델리와 달리 명백히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



바로 플레이스엘엘은 음식을 조리하고 서브하는 공간이 아닌, 철저히 ‘매장’이라는 점에서다. 이런 점에서 이곳은 일종의 옛날 ‘반찬 가게’ 느낌도 풍긴다.
반찬이라기보다는 주식과 간식을 각각 포장해 판매한다는 점, 음식 외에도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을 직접 사용하고 구입할 수 있는 쇼룸 등 다양한 복합문화시설을 갖춘 점을 빼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업계는 현재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온 가족이 다 함께 몰려 앉아 거하게 차려 먹는 한상차림에서 큼직한 이윤을 남기기보다, 이를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분철, 재해석한 간편식 스토어 등 새로운 수익 모델을 발굴하는 점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형태는 컴포트한 편의점에 분식집의 가성비를 더한 고잉메리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시티델리처럼 모던한 프리미엄 어반 스타일 편의점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리라 본다. 아니면 플레이스엘엘 일산식사점의 모양처럼 반찬가게에 라이프스타일 쇼룸을 더한 모양이라든지.

더욱 간편하게, 더욱더 합리적인 비용의 끼니를


그러나 이들 사이의 크나큰 차이점 외에도 우리가 분명 주목해야 공통 분모는, 결국 이 모든 변형이 ‘더욱 간편하게 내 마음에 드는 맛있는 한 끼’를 먹기 위한 세간의 노력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방점은, ‘간편성’에 더욱 치중되어 있다. 이 역시, 재료를 시장에 나가 구입해 들고 와서 다듬고 손질하는 시간조차도 아까운 도시의 오늘 때문에.

이렇듯 점점 한 그릇의 끼니를 집에서 해 먹기보다 사서 먹는 게 익숙한 시대가 오고 있다. 혹자는 ‘매식(買食)’의 시대라고도 평한다. 장래에는 한국인의 ‘소울푸드’에 집밥이 그저 환상 속의 유니콘처럼 되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한편으로 보면, 우리 사회가 그동안 한 그릇의 집밥을 먹기까지 드는 수고와 노동에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의 시류가 더욱더 집밥에서 멀어지는 것도, 결국 ‘나 외의 또 다른 누군가를 먹이기 위한’ 그 수고를 더 감내하기에 우리가 너무 바빠진 탓도 있는 게 아닐까. 한편으로는 다들 지쳤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집밥이라는 유니콘은, 이제 그만 환상의 세계로 놓아 주어야 한다고 대부분 여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상념마저도.

혹자는 이런 추세가 외식업에는 일대의 확장 기회가 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일선 현장에서 점점 더 간편식이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점점 작은 단위로 쪼개지는 외식 소비자의 지갑을 사로잡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모든 구상에 마냥 핑크빛 전망만 자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나이 불문하고 이 세상에 점점 늘어만 가는 ‘혼자 밥 먹는 사람들’에게 외식이 여전히 불친절한 기억으로 남는다면, 그때는 집밥이 뛰노는 저 유니콘의 숲에 우리가 익히 아는 다른 것도 떠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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