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작가 김세원 Nov 06. 2020

01. 고아 선언.

여는 에세이





하루하루 울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다.

매일매일 퍼부어지는 악담에 가슴을 치고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이제는 결코 기가 죽어 뒤로 숨지 않는다. 옛날 같았으면 아마 진작 고꾸라져 목을 매달았을까. 아니면 울면서 용서해달라고 빌고 또 빌며 울었을까. 닥치는 대로 온몸을 향해 쏟아지는 뭇매를 간신히 견뎌내면서.


생각해 보면 마냥 얻어맞고, 또 맞고 또 맞으며 지냈던 내 어린 시절이다.

손에 잡히는 걸로 닥치는 대로 얻어맞았다. 옷걸이로도, 젓가락으로도, 책으로도. 때로는 발에 채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온갖 험한 말과 주먹질이 나를 향해 쏟아진다.


그들의 불만은 언제나 비슷하다. 왜 자신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느냐는 거다.

안타깝게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울 거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그들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쓰린 가슴을 안고 얻어맞아 멍든 마음을 매만지며 버텼다.


무조건 이 모든 상황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야만 했고,

그래서 언제나 어딜 가나 누군가 '나 때문에' 그놈의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를 늘 노심초사했다.


안 그러면 또 맞을까봐.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만난 세상은 생각보다 너무나 따스한 곳이었다.


지금까지 사회에서 만난 그 누구도,

내가 태어나서 평생을 함께 붙어 산 그들처럼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게 감사하고 또한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좀 더 당당해지기로 했다. 모든 기대를 버렸다. 또한 모든 감정을 버렸다.

적어도 그들에게만큼은.


그래서다.

내가 이제부터 시작될 내 인생에서

그리고 그 이전까지의 내 인생 모든 부분에서

그들을 완벽하게 도려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나는 이제부터 고아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처럼 밑도 끝도 없는 우울에 갇히지는 않았다.

혈연을 버린 대신 인연을 무수히 얻었으니, 그래도 난 앞으로도 원없이 행복할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적어도 그들이 내게 가하는 무수한 감정 고문을

함께 싸워 주고 울어 줄 소중한 친구가 내 옆에 있으니까.


그거면 됐다.

이만하면 인생, 적어도 그들보단 잘 살았어.





고아 선언,

여는 글에 이어, 부연하는 첫 번째 글이 발행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nyanglove189/21

작가의 이전글 유통과 맛의 협업, 컴포트한 한 그릇을 제시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