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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김세원 Nov 06. 2020

02. 고아가 되기로 했다.

부연하는 첫 번째.




흔히들 꿈꾼다.

따뜻한 나의 가족, 행복한 집, 엄격한 아버지와 온화한 어머니...

또한 그렇기에 내 인생은 지극히 평탄하고 따스했노라고, 다들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구절이 '자소설'에 뻔히 등장하는 레퍼토리라고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하긴 최근의 자기소개서 트렌드는 의외로 이런 뻔한 구절을 제외하고서 가족을 소개해야 한다 했던가.


하지만 이 뻔하고 흔한 글귀에는 많은 이들의 바람이 녹아 있다.

마음의 결심을 세우기까지, 나 역시 오랫동안 꿈꿨었다. 이런 집을, 따스한 가족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꿈은. 

이루어질 수도, 이루어질 리도 없는 몽상에 불과했다.


정리해 보자.

그들이 연애하고 결혼해서 자식이란 존재를 만들기까지, 그리고 그 아이를 키우는 동안.

적어도 내가 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듯,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망망대해만이 가득했다고 하던가.


그 누군가의 하는 짓을 감히 따라할 수도,

본보기를 알려줄 멘토조차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첫 번째로 나를 낳았다.


아마도 이 모든 게 시행착오라고 말하고 싶을까.

그들이 평생토록 나에게 가한 온갖 감정 고문, 그리고 폭력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기까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감정 고문은, 여전히 지금도 고약스럽게 내 하루하루를 잠식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인데.


내가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자식은 부모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고. 똑같은 존재도 아니고, 전혀 다른 개개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부모라고 해서 반드시 모든 분야에 있어 '올바르게' 말하고 행동하지도 않는다는 걸.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마음도 기력도, 이제는 내게 사치일 뿐이다.


단지 머리로는 이해한 이 명제를, 어떻게 가슴으로도 확실시하느냐에 꽤 오랜 시간을 버렸다.

그동안 참 무던히도, 나는 그들이 가하는 감정 고문을 견뎌야만 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의 부모는 내가 막연히 생각한 것 이상보다 훨씬 더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처음엔 못내 서러웠던 그들의 성향이,

지금은 내가 본디부터 가질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내가 그들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불행하지는 않겠지.

그러니까 나는 이제, 고아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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