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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산책길에 마주한 26년의 시간

장암 워터파크

by 법의 풍경

어젯밤, 집에서 자전거로 15분 거리에 있는 장암동을 지나다 문득 페달을 멈췄습니다. 어둠 속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건물. 바로 장암 워터파크였습니다.


2006년 창동으로 이사 왔을 때부터 줄곧 보아온 풍경이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20년 가까이 흉물처럼 방치되어 있던 그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마침내 빛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요.

물에 비친 불빛들이 만들어내는 파장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26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온천수가 발견되던 1999년의 희망, 2010년의 첫 번째 좌절,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법적 공방들.


때로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26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오히려 갈등을 더 복잡하게 얽히게 했고, 상처는 더 깊어졌습니다. 건설사, 투자자, 금융기관, 개별 소유자들… 각자의 정의를 외치며 서로를 향해 날을 세웠던 그 긴 세월.

만약 그때, 누군가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큰 그림을 보았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두세 차례에 걸쳐 이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단순히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는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게임을 26년이나 계속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하지만 오늘은 그저 이 순간을 음미하고 싶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워터파크를 보며, 실패도 충분히 오래 견디면 언젠가는 성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봅니다. 비록 그 과정이 너무나 길고 고통스러웠지만요.


내일 저녁부터는 휴가 특집으로 이곳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려드리겠습니다. 법정 공방의 미로 같은 복잡함, 놓쳤던 수많은 화해의 기회들, 그리고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들을.


오늘 밤, 여러분도 주변을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혹시 너무 오래 방치된 갈등은 없는지, 해결할 수 없다고 포기한 문제는 없는지.


때로는 26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렇게 빛나는 순간이 올 거라고, 장암의 불빛들이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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