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지털 경제의 기로에서
오늘 국회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Power Korea대전”에 참석했습니다. 이정수 교수님이 메인 발표자로 나서신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게 되었는데, 국회의원 주최 공청회는 처음 참석해 보는 것이라 나름의 기대를 갖고 갔습니다. 하지만 발표시간이 짧아 질의응답은 할 수 없었고, 토론자들도 일방적인 발표만 있었고 아무런 토론이 없어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배운 점들은 있기에 후기를 작성해 봅니다.
이정수 교수는 발제를 통해 스테이블 코인 법제화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의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이 전 세계 스테이블 코인 시장의 99%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이에 맞춰 법안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생략하고, 이 교수는 스테이블 코인 법제의 핵심을 두 가지로 정의했습니다:
“은행과 은행에 준하는 금융기관까지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비은행 금융기관을 인정할지가 핵심 쟁점”이라며, “금융기관 외에 카카오, 네이버 같은 기업들의 자회사 형태 전자금융업체들을 전통적 금융업으로 볼 것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발행사의 도산 위험으로부터의 절연(Bankruptcy Remote)과 사용자 상환 요구에 대한 적절한 대응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달러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국내 규제 방안이었습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우리나라에 어차피 들어올 것이고, 이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인데, 발행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한국 사용자가 미국에 가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현실적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동국대 블록체인 연구센터 박성준 센터장은 30년간 정부 산하기관에서 인터넷 진흥 정책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블록체인은 제2의 인터넷”이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정의를 인용하며 국가 전략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또한 트럼프의 정책 전환을 예로 들며, “트럼프가 암호화폐를 미국의 전략자산으로 선언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전략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초이스뮤온오프 최화인 대표는 시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한국의 독특한 시장 구조를 분석하며, 전 세계적으로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99%를 차지하는 상황에서도 한국만의 경쟁력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은 개인 투자자 중심의 원화 마켓으로, 90%가 원화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는 바이낸스 같은 해외 거래소에서 USDT가 80%를 차지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독특한 형태입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 시장의 규모였습니다. “전체 성인의 3분의 1이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거래량이 663조 원, 일 거래량이 7조 3천억 원에 달한다”며, 이는 미국 성인의 14%가 보유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압도적인 수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코인이슈 경제채널 박은성 대표는 스테이블 코인을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닌 통화 패권 확장의 도구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테이블 코인을 카드 결제 대체 수단이나 지역 화폐로 생각하는데, 이는 틀렸습니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 목적은 원화 가치를 상승시키고, 글로벌 통화 패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도구로 써야 합니다.”
구체적인 활용 방안으로는:
무역 결제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 사용: 반도체, 배터리, K-POP 등 한국의 경쟁력 있는 상품을 원화 스테이블 코인으로만 구매할 수 있게 하여 원화 수요 증대
자본시장 결제 인프라: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 국채, 부동산을 원화 스테이블 코인으로 투자할 수 있게 하여 외국 자본 유입 촉진
DSRV 미래금융연구소 김세희 책임연구원은 현업에서 느끼는 실질적 문제점들을 제기했습니다. "이메일로 정보가 실시간으로 이동했듯이, 실시간으로 지급-정산이 가능한 금융 인프라가 블록체인이다"라고 정의하며, 기존 결제 시스템과의 차이점을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지급에 대한 행위만이고, 실제 정산은 몇 시간에서 1 영업일 이상 소요됩니다. 블록체인과 스테이블 코인은 지급, 청산, 정산이 한 번에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실적 제약도 지적했습니다. “한국은 지급업자와 가상자산 사업자를 분리하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입니다. 온오프램프 과정이 부재하기 때문에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실용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공청회를 참관하며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기득권 보호를 위한 암묵적 합의였습니다. 이정수 교수님이 언급한 “발행자를 금융기관으로 한정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스테이블 코인은 본질적으로 은행이 필요 없는 기술입니다. 미국의 지니어스 법안도 발행인을 은행으로 한정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은행이 다 망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스테이블 코인 발행권을 카카오, 네이버, 삼성전자 같은 기업에게 열어준다면? 기존 은행들이 받을 충격은 상당할 것입니다. 따라서 금융기관들은 비은행권에 대한 스테이블 코인 발행 자격을 강력히 반대할 것이고, 이는 금융당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스테이블 코인의 진정한 장점은 핸드폰에서 핸드폰으로 바로 돈이 이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토스를 사용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너무나 편리해서 1년에 몇 번이나 실제 은행 지점을 방문하시나요? 대부분 핸드폰으로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은행이 이미 핸드폰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핸드폰에 최적화된 플랫폼, 기업들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탄력을 받을 수 있고, 달러 스테이블 코인과 경쟁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한국의 통화 주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박은성 대표가 언급한 청나라 비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백 년 전 청나라가 신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통화주권을 잃었듯이, 지금도 똑같은 상황입니다. 무언가 무서워서 스테이블 코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통화주권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는 박성준 센터장의 지적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우리나라가 IT 인프라 강국이지만 IT 서비스 강국이 되지 못한 이유는 규제 때문입니다. 규제는 산업 육성이 첫 번째 목적이어야 합니다.”
최화인 대표가 분석한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는 분명한 기회가 있습니다. 전체 성인의 3분의 1이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90%가 원화로 거래하는 독특한 생태계. 이런 환경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사용자 경험이 중요합니다.
카카오톡에서 송금하듯 자연스럽게, 네이버페이처럼 일상에 녹아든 방식으로, 삼성페이처럼 혁신적인 UX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플랫폼들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의 압박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은행권의 집단 이기주의에 막혀 비은행권의 스테이블 코인 발행 권한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입법이 이루어진다면, 원화 스테이블 코인 시장의 경쟁력은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기득권을 보호하여 혁신을 제한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의 미래를 위해 혁신적 정책을 펼 것인가?
박성준 센터장의 제안처럼 대통령 산하에 ’AI 위원회’를 만들듯 ’디지털 자산 위원회’를 만들고, ’디지털 자산 진흥원’을 설립해서 실행 정책을 펴야 합니다. 이렇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김세희 연구원이 지적한 것처럼 현재 스테이블 코인은 주로 거래소 유동성 공급 수단으로 사용되지만, 실제 결제 비중은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 흐름을 놓친다면, 우리는 또다시 기회를 잃을 것입니다.
이정수 교수님이 강조한 것처럼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불가피한 대응”입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어차피 들어올 것이고, 우리는 이에 대한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만의 원화 스테이블 코인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제발, 입법자들이 이해관계인의 압박에 굴하지 말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서 현명한 조치를 취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국이 다시 한번 혁신의 선두에 설 수 있는 기회입니다. 놓치면 안 됩니다.
(이정수 교수와 최화인 대표의 사진 사용은 동의를 받았습니다.)
뭔가 답답한 듯 고뇌에 빠진 이 교수님.
당신의 어깨가 무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