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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산 하이킹

1500년 역사 속 작은 발견들

by 법의 풍경

새벽 운악산에서 만난 1500년의 시간과 지혜


오늘 새벽 운악산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운악산은 캠핑장이 좋다는 것, 항상 예약이 다 차서 갈 수 없었다는 것 말고는 달리 아는 것이 없는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났고, 그래서 그냥 운악산으로 향했습니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도착한 운악산은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산 중턱 이상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잘 깔려 있어서, 예전 MTV를 타던 시절이었다면 분명히 MTV를 가지고 다시 오고 싶을 정도의 매우 좋은 트레이닝 코스였습니니다. 다시 MTV를 사고 싶은 생각을 참느라 힘들었네요.


역사적 발견: 540년부터 이어진 불교 성지


등산로 초입에서 만난 안내판들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등사는 540년경 백제 성왕 18년, 인도승 마하가섭(摩訶迦葉)이 창건한 천년고찰이라고 합니다. 1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성지에서, 우리나라 불교문화와 인도 불교의 깊은 연결고리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마하가섭(摩訶迦葉)

마하가섭은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중 한 명으로,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불리며 고행과 수행의 모범을 보인 인물입니다. ’마하(摩訶)’는 산스크리트어로 ’위대한’을 뜻하고, ’가섭(迦葉)’은 성씨입니다.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연화미소를 지으며 꽃을 들어 보이셨을 때, 홀로 그 깊은 뜻을 깨달아 미소지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염화시중(拈花示衆)’ 설화로, 선종(禪宗)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현등사의 창건 이야기는 이런 깊은 선(禪) 전통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을 의미합니다.

시간이 많이 없어서 절까지만 올라갔다 내려왔는데, 이제까지 가본 절 중에 가장 손에 꼽을만한 절이었습니다.


문화유산의 보고: 삼층석탑과 적멸보궁

현등사 삼층석탑 (경기도 유형문화재)은 1470년에 세워진 조선 전기의 걸작입니다. 탑 주변에서 느꼈던 고요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550년 동안 이곳을 지켜온 문화유산의 무게였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적멸보궁이었습니다. 특히 마치 중국의 절처럼 꼭대기 쪽에 하나의 작은 암자가 더 있었는데, 그 뒤쪽으로는 석탑이 있었습니다. 이 작은 암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성스러운 공간으로, 전국에 몇 곳 없는 특별한 성지입니다.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고즈넉한 느낌도 나고 구름들이 움직이는 것들이 중국의 여산과 매우 닮아 있었습니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적멸(寂滅): ‘고요할 적(寂)’ + ‘꺼질 멸(滅)’ = 모든 번뇌와 욕망이 소멸된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 즉 열반(涅槃)을 의미
보궁(寶宮): ‘보배 보(寶)’ + ‘궁궐 궁(宮)’ = 가장 소중한 보물이 모셔진 성스러운 전각

따라서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이 깃든 보배로운 성전’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봉안되어 있어, 불교도들에게는 부처님을 직접 친견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정선 정암사, 영월 법흥사와 함께 다섯 곳의 적멸보궁이 있어 ’오대 적멸보궁’이라 불립니다.


역사의 증언자들: 삼충단에서 만난 애국지사들


등산로 초입에서 만난 삼충단(三忠壇)은 또 다른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세 분의 애국지사가 모셔져 있습니다.


⚔️ 삼충단의 세 인물과 그들의 시대

조병세(趙秉世, 1827–1905): 구한말의 문신으로 을사늑약 체결에 격분하여 자결한 인물입니다. 그는 “나라가 망하는데 신하가 어찌 홀로 살 수 있겠는가”라는 유서를 남기며 충절을 지켰습니다.
최익현(崔益鉉, 1833–1906): 대표적인 위정척사 사상가이자 의병장입니다. 을사늑약 반대 상소를 올리다 대마도에 유배되어 단식 투쟁으로 순국했습니다. “의리를 알고도 죽지 않으면 금수와 다름없다”는 신념을 실천한 분입니다.
민영환(閔泳煥, 1861–1905): 을사늑약 체결 후 “국모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적신의 화를 제거하지 못한 죄”라는 유서와 함께 자결한 개화파 정치가입니다. 그의 죽음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세 분은 모두 을사늑약(1905)이라는 동일한 국치를 경험하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저항하다 생을 마감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조선 왕조 500년 역사가 막을 내리는 격변의 시기에, 지식인이자 관료로서 마지막까지 국가에 대한 충절을 지킨 상징적 인물들입니다.


이들의 삶을 보며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안위보다 더 큰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헌신, 근데 옛 사람들은 왜 꼭 자결이라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자연과 역사가 만나는 특별함

백년폭포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안내판은 또 다른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폭포는 45도 경사면의 20미터 높이 암반을 따라 흘러내리는 웅장한 모습으로, 조선 후기 영화민이라는 인물이 자주 찾았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백년’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100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세월’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한참을 멍 때리다가 내려오면서 계곡물에 몸도 담글 수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 두 마리 백구와의 소통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절에서 만난 두 마리의 백구였습니다. 제가 가자 낯선 사람이 왔다고 마구 짖어댔는데, 근처에 가서 “왜 그러냐”고 달래니까 졸래졸래 따라다녔습니다. 금방 순하게 친구를 만난 듯하게 따라다녔습니다. 사람과 동물 사이의 순수한 소통이 이런 것인가 싶었습니다.


성찰: 리더십과 소통의 교훈


이번 산행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진정한 소통의 힘이었습니다. 천 년 넘는 역사를 가진 문화유산도, 처음 만난 동물들과의 교감도, 모두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진정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만남에서의 경계심을 허물고 진정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진정성이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까지 소요산이 제일 좋았는데, 소요산에 버금가게 좋다고 느낀 산은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두 번째로 좋아하는 산이 될 것 같습니다. 인도와의 깊은 연결, 조그마한 산 꼭대기 암자, 그리고 두 마리의 백구까지. 모든 것이 특별했습니다.


1500년 전 인도승이 이 땅에 심은 지혜의 씨앗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듯, 우리가 오늘 만드는 진정한 관계와 소통도 시간을 넘나들며 가치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백구들과 인사를 하고 하산했습니다. 정말 MTV를 다시 사야 되나 진지하게 고민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작가님들은 어떤 순간에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이 글을 모티브로 만든 50 초 초단편영화

나는 감독이다!

이 글을 모티브로 운악산 적멸보궁과 무우계곡을 촬영한 영상에 대금 명인 홍석영이 연주한 '청성곡'을 곁들이고, 영어 나레이션을 곁들인 6분 명상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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