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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Feb 02. 2019

프롤로그: 2016년 다시 마주한 서울

이태원 골목길의 아우성 1


2001년의 마지막 날 나는 서울을 떠났다. 그 당시 내가 기억하는 뜨는 동네는 매끈한 건축물이 줄지어 들어선 강남에 위치하고 있었다.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하던 X세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세대)의 개성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선도하는 곳은 압구정동과 청담동이었다. X세대는 '우리'를 중요시 여기는 기성세대와 달리 '나'에게 집중하고 '나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 세대였다. 1989년 실시된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정책으로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던 첫 세대기도 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브랜드인 맥도널드는 1989년 압구정동에 1호점을 오픈했고, 1993년에는 당시 가장 인기가 많았던 가수 엄정화와 배우 최민수가 주연한 영화,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가 개봉되었다. 1990년대 히트곡의 바로미터였던 '길보드 차트'의 순위를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곳도 압구정동 맥도널드 앞 노점상이었다.


2016년 늦여름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다시 마주한 서울에서 '뜨는 골목길'은 더 이상 강남에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인기가 있는 핫플레이스들은 대부분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강북의 동네, 그러니까 연남동과 익선동, 성수동이라는 후미진 동네의 어느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좁은 골목길의 간판도 없는 작은 상점들을 찾아다니며, SNS에 사진을 올리고 그곳에서의 경험을 공유했다.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골목 사이를 누비며, 특이한 상점들을 발견하는 데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서울의 핫플레이스 중, 가장 흥미롭게 다가온 공간은 이태원이었다. 1990년대 서울에서 가장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오던 이태원의 골목길에 나타난 변화는 나에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태원은 여전히 가장 이국적인 공간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이런 공간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이곳은 더 이상 이방인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이태원의 골목길에는 이방인의 문화를 즐기는 내국인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소비자 계층은 바로 밀레니얼 세대 Millennials였다.


현재 40-50대가 된 X세대를 잇는 20-30대의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로, 오늘날 대한민국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 Babyboom generation에게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지촌으로 기억되고, X세대에게는 재미 삼아 짝퉁 가방과 신발, 패션 아이템을 사러가는 쇼핑 거리였던 이태원을 바꾸어 놓았다. 1990년대 내가 기억하는 이태원은 커피를 마시거나 브런치를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여전히 미군과 미국 문화가 지배적인 서울 속의 낯선 공간이었다. 하지만 2016년 내가 다시 만난 이태원에는 낡은 골목길을 따라 이국적이고 독특한 레스토랑이나 카페, 그리고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부티크식의 독립적인 소매점들이 있었다. 외국문화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에겐 그들이 외국에서 즐기던 라이프스타일을 재현할 수 있는 경쾌한 일상 공간이었고, 자유로운 X세대에게는 독창적인 문화 경험을 축적해 경제적 행위로 연결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었다.


이태원의 골목길에 나타난 낯선 변화는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이라는 전문용어로 종종 표현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쇠퇴한 지역에 기존 주민보다 부유한 주민들이 유입됨에 따라 나타나는 경제적, 환경적인 개선을 뜻한다. 하지만 이로 인한 급격한 임대료 상승과 기존 주민들의 비자발적 이주 현상이 동반됨에 따라 젠트리피케이션은 ‘둥지 내몰림’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번역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과연 부정적인 결과만 낳고 마는 것일까?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태원의 상권은 외제상품 모조품에 대한 정부의 단속과 범죄와의 전쟁, 미군기지 이전, 1997/8년  IMF 경제위기의 여파로 여전히 위축되어 있었다. 이태원의 위축된 상권을 되살리고자 정부는 1997년 이태원을 관광특구로 지정하였으나, 불편한 교통과 바가지 가격 탓에 엄청난 수요의 쇼핑객들을 동대문 상권에 하릴없이 빼앗겼다. 더구나 이태원에서 유흥을 즐기던 외국인들은 강남이나 신촌, 그리고 홍대 주변의 클럽이나 바를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예전처럼 이태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이태원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공간이 아니라 서울에서 가장 핫한 장소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는 공간이 되었다. 미군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공간인 이태원은 2000년대 중반부터 다국적, 다민족적, 다정체성의 정서가 수용되고 교감되는 문화공간으로 특화되어 갔으며, 이러한 변화는 이태원의 골목길을 따라 빠르게 확대되었다. 이태원에 나타난 변화를 부정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대중매체는 2015년 무렵부터 이태원 골목길에 나타난 변화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이와 관련해 부정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보도의 요지는 '옆동네 르네상스'를 이루며 이태원의 골목길을 변화시킨 소수의 선구적 젠트리파이어들이 오히려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자신들이 창조한 공간에서 내쫓긴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가 우려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은 이처럼 대규모 자본에 의해 발생하는 슈퍼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나타난다. 좁은 골목길에 대형 대형 개발업자들이 진입하고, 곧 부동산 가격 및 임대료가 과격하게 치솟는 것이다. 선구적 젠트리파이어들은 이 단계에서 자신들이 창조한 공간에서 쫓겨나게 되기도 하지만, 일부 젠트리파이어들은 쇠퇴한 구도심에 미쳤던 그들의 긍정적인 영향력이 변질됨에 따라 그 공간에 대한 관심이 상실되어 다른 곳으로 자진해 이주하기도 한다. 이태원의 골목길도 이러한 과정을 겪고 있다.


이태원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이것이 다시 마주한 서울의 골목길, 이태원의 젠트리피케이션 이야기의 시작이다.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먼저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변화된 서울의 발자취를 찾아보았다. 내가 서울을 떠날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았으며, 외국문화를 경험한 사람들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은 세계화, 탈산업화를 겪으며 아주 빠르게 변화하였다. 이러한 사회, 경제적인 변화는 서울의 공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밀레니얼 세대와 같은 후기 산업사회의 새로운 소비계층에게 도시는 더 이상 생산의 공간이 아니다. 그들에게 도시는 소비의 공간이다. 질 높은 상품에 대한 수요와 자신들만의 이국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20-30대의 새로운 소비계층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그들만의 소비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태원의 골목길도 이러한 소비공간 가운데 하나이다. 이태원은 베이비붐 세대, X세대,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를 거치는 동안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지촌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이방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초국가적인 공간이 되었다. 나는 서울로 돌아온 2016년 늦여름부터 2018년 늦여름까지, 이태원의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다. 반듯하지 않은 이태원의 비좁은 골목 언덕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내 스타일'의 사업을 번듯하게 꾸려나가는 10여 명의 새로운 소상공인들과 만났다. 그리고 이들의 상업적 활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소비를 함으로써 이들의 활동을 지속시키는 새로운 소비계층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글을 통해 이태원 골목에 나타난 변화는 '왜',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관찰하고 고민한 내용을 함께 나누려 한다. 이태원이라는 변화무쌍한 동네와 서울이라는 큰 도시와 그 도시의 활발한 호흡을 들여다보면 다음 세대에 만나게 될 서울의 변화까지 예측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우리는 살아있는 도시의 유연한 움직임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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