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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Mar 09. 2019

후미진 골목길에 나타난 미묘한 변화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 

내가 처음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를 접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서 도시 및 지역정책학 박사과정에 있을 때였다. 박사과정 학생들의 세미나 시간에 우리나라의 주택 및 도시 재개발, 재건축 정책의 변화과정에 대해서 발표를 하고 있었던 나에게 우리 과 교수님이 던진 한마디는 낯설었다. "한국은 정부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주도하는구나, 재미있네 (That's gentrification, it's very interesting that this has actually been led by the Korean government). 나의 머릿속엔... 젠트리피케이션? 그건 뭐지....? 그 이전까지 나는 한 번도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Ruth Glass)가 1964년 노동자 계층이 모여 살던 런던 도심지에 중산 계층의 진입으로 인하여 나타난 주택시장과 사회계층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gentry+fication이 합쳐진 용어로 직역하자면 '신사 계급화되다'는 의미이다. 신사 계급은 귀족 다음 계급으로 중산 계층을 의미한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런던의 많은 사람들은 보다 나은 거주환경을 위해 런던의 외곽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교외화(suburbanization)'로 인한 '도심공동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1960년대에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진보적이고 보헤미안적인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 계층이 임대료가 저렴한 노동자 계층 지역에 들어와 노후한 건물을 세련되게 복원시키고 주거환경을 쾌적하게 변화시킴으로써 지역의 임대료가 점차 상승하게 되면서 노동자 계층이 밀려나게 되었다. 루스 글라스는 노동자 계층 지역에 나타난 변화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노동자 계층이 모여 살던 지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중산계층에 의해서 침략당하고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과정이 한번 시작되면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쫓겨나게 되고 그 지구의 사회적 성격 자체가 변화하게 된다 (One by one, many of the working class quarters have been invaded by the middle class - upper and lower... Once this process of 'gentrification' starts in a district it goes on rapidly until all or most of the working class occupiers are displaced and the whole social character of the district is changed)" (Glass, 1964, p.xvii).


서구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의 개념은 루스 글라스가 묘사한 바와 같이 노동자 계층의 주거지에 중산 계층이 진입함으로써 나타나는 사회적, 경제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젠트리피케이션의 개념이 점점 더 확대되어 도시의 버려졌던 산업부지 재개발(brownfield redevelopment), 호화로운 주택지 개발(designer neighborhoods), 워터 프런트 개발(water front development) 등과 같은 도시의 대형 개발사업 등을 포함하게 되었다. 또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도시민들이 주말을 보내기 위해서 농어촌지역의 세컨드 하우스를 매입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에 나타나는 사회, 경제적인 변화 현상까지도 다루게 되었다.


오늘날 젠트리피케이션은 서구사회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의 여러 도시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각 도시마다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또한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거시설이 카페나 레스토랑 혹은 부티크 등의 상업시설로 건축물의 용도가 바뀌는 주거지역의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이 대부분이다. 1990년대 중반 홍대에서 시작된 주거지역의 상업화 현상은 2000년대 중반 급속하게 증가하여 이태원, 연남동, 연희동, 부암동, 성수동 등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주거지역의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걸까? 


서구도시의 주거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노후화된 주거지역의 고급화 현상이다. 중산 계층이 노동자 계층의 주거지 내에 건축적으로 혹은 미적으로 가치가 있는 오래된 건축물들을 복원시켜 예전의 모습을 재현시킴으로써 일어나게 된다. 1960년대 루스 글라스가 목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 장소는 런던의 북부에 위치한 이즐링턴(Islington)과 같은 노동자 계층의 주거지역이었지만, 이 지역에는 조지안(Georgian) 스타일과 빅토리안(Victorian) 스타일의 우아한 건축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었다.


[런던 이즐링턴 지역의 초기 빅토리안 스타일의 건축물들]


우리나라의 도시공간에 중산 계층이 매력을 느끼고 복원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 건축물들이 남아있는 주거지역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노동자 계층이 거주하는 지역에 말이다.


우리나라의 도시공간에 이러한 건축물들이 남아있지 못한 이유는 6.25 전쟁,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에 기인한다. 6.25 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를 경험하였다.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세계의 어떤 나라들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1950년에 21.4%에 불과했던 도시지역의 인구비율이 1980년에 56.7%로 급증하였고, 2010년에는 83%, 2015년에는 91.8%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6.25 전쟁의 피해로 많은 주택들이 파괴된 상황에서 도시로, 특히 서울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은 턱없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무허가 판잣집을 만들어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도시 곳곳에는 대규모의 판자촌이 형성되었다. 서울의 경우, 무허가 판잣집의 수가 1976년 143,900에서 1980년에 154,047로 14%나 증가하였다. 오늘날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는 해방촌도 6.25 전쟁 당시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과 이주민들이 임시 정착하면서 형성된 무허가 판자촌이었다.


[서울 청계천변 판자촌]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유물정보


무허가 판자촌을 재정비하기 위하여 정부는 집단이주, 시민아파트 건설, 주택재개발 등의 다양한 정책을 실행하였다. 1980년대 들어 도심지 재개발 사업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이는 1986년과 1988년에 있었던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게임 유치를 위해 시작된 서울의 도시미관 정비사업 때문이었다. 또한 점점 더 악화되어 가는 주택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는 강북의 인구분산정책과 고밀도 주거지 개발정책을 시작하였다. 1970년대 초반에 수립된 '주택건설 10개년 계획'과 ‘강남 개발 계획’은 아파트의 대량 공급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주거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독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다. 1978년 아파트 주거비율은 겨우 5.2%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990년에는 28%로 10년 만에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2015년에는 59.9%까지 올랐다. 서울의 경우, 총 주택수 대비 아파트의 비율은 1980년 19.0%였고, 2000년에 50.9%로 증가하였으며, 2010년에는 58.9%로 증가하였다.  


[우리나라 아파트 주거비율]

출처: 통계청


비록 프랑스의 지리학자인 발레리 졸레조(Valerie Gelezeau)가 우리나라를 '이상한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비판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파트 개발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수의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지적한 대로 우리나라가 아파트 공화국이 된 이유가 단순히 '좁은 면적 대비 많은 인구수'라는 상관관계에만 있지 않다. 영화 '강남 1970'에서 보여주듯이 우리나라의 아파트 개발은 정치권력과, 재벌, 그리고 부동산 투기의 세 박자가 모두 맞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울 한강변에서 바라본 아파트 숲의 모습]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주거지의 고급화, 즉 주거지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주로 대규모의 재개발 및 재건축 사업을 통하여 이루어져 왔다. 재개발, 재건축 사업은 중산층을 위한 주택공급의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저소득층은 주거복지 정책의 부재와 개발사업의 이익이 우선시 되던 한국사회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서구사회처럼 노동자 계층의 주거지역에 중산 계층이 진입하여 개별 건축물의 복원 및 개선 등을 통해 그 지역의 주택시장이나 사회계층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다. 그러나 강북의 낡은 주택들을 상업시설로 개조하는 일은 개개인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경제적 자본이 부족한 소상공인들에게 단독주택 혹은 다세대 주택의 1층이나 반지하층처럼 임대료가 저렴한 곳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 아주 적절한 장소이다. 이태원이나 연남동, 성수동의 골목길에 위치한 핫플레이스들을 찾아가 보면 대부분 이런 식으로 개조한 곳들이다.


[이태원 골목길의 다세대주택 1층을 개조한 식당]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주택들은 비록 경제적 자본이 부족하지만, 문화적 자본이 풍부한 새로운 소상공인들에 의하여 개성넘치는 공간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아파트 공화국에서 태어나 자란 밀레니얼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경험적인 소비와 소확행(작지만 확실하게 실현가능한 행복)을 중요시 여기는 밀레니얼에게 강북의 골목길은 획일화된 아파트 단지에서 찾을 수 없는, 마치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은 탐색의 장소이다. 골목길 탐색은 멋진 카페에서 커피와 차를 마시며 쉼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휴식 여행이자 맛집을 찾아 떠난 미각여행이다. 또한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아이템들을 발견할 수 있는 쇼핑의 장소이며,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취향 공동체를 만날 수 있는 장소이다.  


참고문헌

Ruth Class(1964) London:aspects of change. London: MacGibbon & K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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