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등대로를 그려봄
1
방과 후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칠 때였다.
크레파스를 눕혀서 칠하는 방법으로 훨씬 쉽게 틈을 메우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는데
아이는 내가 원하는(표현) 것은 이런 게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타성의 방법에 젖어서 항상 칠해오던 간편한 방식. 나에게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나에게 맞는 방식이란 것이 사실 그렇게 고착화되던가?
나는 계속 변하는데 방식은 그대로이고 나의 그림은 점점 다 비슷해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표현 방법은 그렇게 눕혀 칠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고, 그림을 보니 눕혀 칠한 부분과 아이가 칠한 부분의 질감이나 강도. 섬세함이 다른 느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표현을 위해 세워서 그리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고집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에서 멋지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금 배우게 되었다.
2
독립서점을 다니다가 보면 가끔 표현이 어설프고 블루지한 표현의 그림이나 글을 마주하게 된다.
지나가면서 나도 관람객이 되어 보다 보면 사고 싶은 것을 말리는 사람이 옆에 있다.
"야. 그건 기술적으로 블라블라."
하지만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또 옆에 있다.
"이건 그게 멋이야."
그게 멋이고 개성이라고 이야기하는 말이 참 멋지다고 느껴졌다.
자신의 취향인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멋진 것을 고르는 일은 얼마나 자신을 독립적으로 만들던가. 나는 흐름에 맞게 눈치를 보면서 창작을 하는 그림을 그릴 때도 이리저리 재고 빼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할까? 눈치를 보던 자신에게 말했다.
'저렇게 보고 사는 이들이 창작자들에게 마음이 열려 있고, 주체적인데 그에 걸맞은 주체성을 가져야 보답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