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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제 Aug 05. 2021

심미안

심미안을 가진 눈 그리고 마음 그리고 손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 그림이란 존재는 내가 가장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나의 마음을 위로가 되어 마음을 데워준 그림의 존재는 나에게 소중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림이 사회적으로 나를 지킬 강한 무기가 되어 주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재능의 문제였다. 상황을 타파할 만한 나의 재주에서도 한계를 느꼈다.


일례로 그림을 그리면서 느낀 것은, 명화를 보면 명화는 사진으로 찍어도 완벽하고 어떻게 보정을 먹여도 심하지 않다면 멋진 변주가 가능했다.

그것은 어쩌면 사진보다 리얼한 눈이 잡아내는 심미안 때문이다. 섬세하게 밝은 농도부터 어두운 농도까지 조화롭고 당연하다는 듯이 존재하는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하는 완벽한 풍경.

이는 심미안의 문제였고, 표현하는 손도 섬세해야 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런데 나의 눈은 신통치 않았다.

시력이 좋고 나쁜을 떠나 미감을 캐치하는 능력이 약했다.

캐릭터를 그려도 다른 사람보다 더 귀엽고 예쁘게 그려내는 사람이 있다.

손은 섬세하지 못했다. 젊음의 패기로 대범하게 그리는 것을 택해 보았지만 마음은 대범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점점 나이를 먹고 현실적으로 되어가면서 현실이 마음에 비집고 들어왔고 뭐든 안정감을 느끼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림의 방향성도 어딘가 어그러졌다.


그림은 여전히 위로가 되지만 어쩌면 나의 마음에서 한 발짝 물러나게 되었다.

그림은 순문학에 나오는 지치고 힘든 감정을 위로하는 것이었고 진취적으로 나의 앞날을 뚫고 나갈 창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림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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