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정보사
우리나라에는 약 스물아홉 개의 신용정보사가 신용정보협회에 등록되어 있다.
고려, 중앙, 나이스, MG처럼 이름이 알려진 곳도 있지만,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회사들도 많다.
신용정보사가 무엇을 하는 곳이냐 묻는다면, 한마디로 돈을 받아주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거래에서 생긴 채권이나 법적 집행력이 있는 민사채권을 대신 회수해 주는 것이다.
나는 신용정보사에서 일한 지 이제 열 해가 넘는다.
원래는 철도공무원이었지만, 조기 퇴직을 하고 나니 생활이 만만치 않았다.
먹고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지만, 고정적인 수입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철도 선배의 사모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를 보더니 채권추심 일을 해보라며, 잘할 것 같다고 권하셨다.
솔직히 마음은 내키지 않았다.
영업을 해본 적도 없었고, 채무자와 직접 통화하는 일은 두려웠다.
게다가 영화에서나 보던 험상궂은 추심원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사모님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영업도 아니라고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경력이 아니라 악착같이 버티는 마음이라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이라고 강조하셨다.
나는 신용정보사에서 위임받은 국민행복기금팀을 소개받아 일을 시작했다.
국민행복기금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2013년에 신용회복기금을 전환하여 만든 제도다.
금융회사가 보유한 장기 연체채권을 매입해 채무를 감면해 주거나 상환 기간을 연장해 주는 업무를 맡고 있다.
공사채권이라 회수율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신용정보사끼리 경쟁은 있지만 과도한 압박은 덜한 편이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회의에 들어가도, 전산을 봐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급여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 체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철도 선배의 사모님이 또 나를 찾아와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해보라고 권하셨다.
나는 형식적으로 고맙다고 했을 뿐, 다시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기가 생겼다.
제대로 알아보고, 정말 아니다 싶으면 그때 가서 그만두자는 마음이었다.
다시 다른 신용정보사에 들어가 국민행복기금 업무를 맡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예전의 고생이 대비되어서였는지, 세상에 이런 직업도 있구나 하는 감탄이 나왔다.
신용정보사는 자체 채권을 다루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외부 기관에서 채권을 위임받아 업무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빚이 어떻게 사고 팔릴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실제로 채권을 사서 영업을 하는 작은 업체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몸으로 부딪히며 채권시장의 구조를 조금씩 이해해 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은 것은, 이 일이 단순히 돈을 받아내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채무자의 형편을 살피지 못하면 협상은 결코 풀리지 않는다.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며 대화하는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추심 업무는 냉정함과 따뜻함 사이를 오가는 일이다.
너무 차갑게 굴면 관계가 끊기고, 너무 물러서면 회수가 어렵다.
그 균형을 잡는 일은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었다.
돌아보면, 처음에는 그저 생계를 위해 발을 들였던 길이었다.
그러나 열 해가 흐르면서 나는 신용정보사의 역할과 채권시장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배운 것은 단순한 직업의 기술이 아니라 삶의 태도였다.
돈을 받아내는 일 뒤에는 늘 사람의 사정과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복잡한 사정들 속에서 나 역시 조금씩 단단해지고 성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