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수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빚’은 언제나 생존을 담보로 한 잔혹한 전쟁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샤일록이 요구했던 ‘살 1파운드’, 혹은 채무자의 신체를 나누어 가졌다는 고대 로마의 법전은 추심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서늘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가혹한 역사 속에서도 진정한 전설로 남은 이들은 단순히 공포를 파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영수증 조각에서 채무자의 숨겨진 삶을 읽어냈고, 또 누군가는 채무자의 자립을 도와 ‘친절한 회수’라는 기적 같은 역설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심에 대한민국 추심업계의 살아있는 전설, 서상수 전 본부장이 있습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받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눈물이 존재합니다.
당장 끼니를 걱정하며 빌린 돈을 갚지 못해 흘리는 회한의 눈물이 있는가 하면, 주머니에 돈이 넘쳐나는데도 내어주기 아까워 연기하는 ‘악어의 눈물’이 있습니다.
서상수 본부장의 평생은 바로 그 후자의 가면을 벗겨내는 여정이었습니다.
그에게 추심은 단순히 숫자를 회수하는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거짓과 진실이 뒤엉킨 삶의 덤불 속에서 ‘신용’이라는 사회적 정의를 길어 올리는 치열한 심리전이자, 고도의 인내를 요구하는 예술이었습니다.
그의 채권추심 인생은 뜻밖에도 가전제품 영업 사원 시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물건은 기막히게 잘 팔았지만, 외상값을 갚지 않고 버티는 거래처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그는 결국 결심했습니다.
‘내 물건값은 내가 직접 받으러 가겠다’고 말이죠. 그렇게 현장에 뛰어든 그의 철학은 의외로 소박한 곳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한 번은 수십억 자산가이면서도 명의를 교묘히 돌려놓고 ‘배 째라’식으로 버티는 채무자를 만났습니다.
법의 망을 비웃는 그 영악함 앞에 서 본부장은 며칠 밤을 그의 집 앞 쓰레기통 곁에서 지새웠습니다.
'쓰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마침내 찾아낸 증거는 해외 백화점 영수증과 최고급 명품 시계의 보증서 조각이었습니다.
돈이 없다던 자의 쓰레기통에는 사치스러운 욕망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이죠.
그 위선의 증거를 들이밀었을 때, 철옹성 같던 채무자의 비밀 금고는 비로소 열렸습니다.
때로 그의 전략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습니다.
사기죄로 구속된 채무자를 모두가 포기했을 때, 서 본부장은 오히려 그의 출소일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새벽녘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교도소 정문 앞, 그는 하얀 두부 한 모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출소하던 채무자에게 그는 정중히 두부를 건네며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콩밥은 그만 드시고, 빚 청산해서 새 삶을 사셔야죠.”
가족조차 외면한 날 자신을 찾아준 유일한 사람이 ‘추심원’이었다는 사실에 채무자는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공포가 아닌, 기묘한 신뢰와 압박이 뒤섞인 이 한 수에 그는 결국 전액 상환을 약속했습니다.
서 본부장이 가장 강조하는 가치는 단연 ‘지속성’입니다.
15년 동안 유령처럼 주소지를 옮기며 도망 다닌 채무자가 있었습니다.
소멸시효가 다가오던 어느 날, 서 본부장은 채무자의 자녀가 결혼 적령기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전국의 웨딩홀 명단을 뒤지고 SNS를 샅샅이 뒤진 끝에 마침내 예식장을 찾아냈습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 혼주석에서 미소 짓던 채무자.
하지만 서 본부장은 그 소중한 식장의 엄숙함을 깨지 않았습니다.
하객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조용히 뒤편에 서 있다가, 연회가 끝날 무렵 다가가 서류를 내밀었습니다.
“이걸 아직도 들고 있습니까?” 떨리는 채무자의 목소리 속엔 15년의 집념을 꺾지 못한 자의 패배감이 서려 있었습니다.
자녀의 새로운 시작 앞에서, 그는 결국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물론 그의 삶이 늘 승리로만 가득했던 건 아닙니다. 흉기를 든 채무자와 대치하거나 자해 협박을 마주하는 일은 일상이었습니다.
‘분유값도 없다’며 우는 이들 앞에서 인간적인 갈등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냉철했습니다.
정말 막다른 길에 몰린 이에게는 채무 조정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지만, 눈물로 위장한 악성 채무자에게는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었습니다.
추심이란 단순히 돈을 뺏는 행위가 아니라, 비정상으로 엉킨 인간관계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는 숭고한 과정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현장을 떠나 후학을 양성하는 그는 우리에게 뼈아픈 조언을 남깁니다.
“돈을 빌려줄 때는 서서 주고, 받을 때는 엎드려 받는다.
그러니 빌려주는 순간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반드시 공증을 써라.”
누군가에게 서상수라는 이름은 끝까지 추적해 오는 저승사자 같았겠지만,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해 피눈물을 흘리던 이들에게는 유일한 구원이었습니다.
추심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기술이며, 그 끝에는 정직한 사람들이 대접받는 사회에 대한 갈망이 숨 쉬고 있습니다.
돈은 돌고 돈다지만, 그 돈에 묶인 마음은 좀처럼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기 마련입니다.
채권과 채무가 단순한 거래를 넘어 실존적인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고인 마음이 바로 나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숨구멍이고 누군가에게는 옥죄는 사슬인 이 관계 속에서, 우리는 매일 자신의 가치와 신용을 시험받습니다.
결국 그 절실함의 끝에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나는 나의 책임을 다했는가, 혹은 나의 권리를 당당히 지켜냈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곧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채권과 채무라는 거대한 바다를 건너가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