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냐”
1980년 5월, 광주는 거대한 무덤이자 부활의 땅이었다.
당시 석영은 광주 북구 운암동에 거주하며 활동 중이었다.
그러나 5월 18일 항쟁 발발 직전, 다른 일정으로 잠시 서울에 올라가 있었다.
이후 광주가 봉쇄되면서 다시 내려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소식을 접해야 했다.
석영은 동료들이 죽어갈 때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이 평생의 죄책감이 되었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는데, 산 자인 내가 무슨 글을 쓴단 말인가."
그렇지만 그는 지하에서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쓰고, 죽어간 이들의 이름을 기록했다.
밤마다 군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고,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해 전국을 떠돌았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가 평양으로 향하게 된 근원적인 동력이 되었다.
'분단이 해결되지 않는 한, 광주의 비극은 반복될 것'이라는 확신이 그의 가슴에 화인처럼 박혔다.
그는 자신의 이름 '석영'이 단순한 필명이 아니라, 시대의 짐을 짊어진 십자가임을 깨달았다.
방북 전, 그는 대작 《장길산》을 연재하며 민초들의 생명력에 천착했다.
전국 팔도를 떠돌며 백정, 광대, 보부상들의 목소리를 채집했다.
어느 이름 없는 포구에서 만난 노인은 그에게 말했다.
"나리, 세상이 바뀐다고 우리 팔자가 바뀝니까?
그저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게 혁명이지요."
그는 깨달았다.
이념은 지식인들의 유희일뿐, 민중에게는 오늘의 끼니와 가족의 안녕이 곧 정의라는 것을.
그는 장길산을 통해 조선의 벽초를 그려냈지만,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벽초인 '휴전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베를린으로 떠나기 직전, 그는 마지막으로 황해 바다를 바라보며 맹세했다.
"가서 보고 오겠다.
저 바다 너머에도 우리와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는지."
베를린을 거쳐 도착한 뉴욕.
화려한 마천루 아래에서 석영은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한국 교포 사회에서도 그는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혀 외면당했다.
어느 겨울날, 난방도 되지 않는 아파트에서 그는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타자기를 두드렸다.
그때 북측 인사들이 다시 접근해 왔다.
"석영 동무, 우리 공화국으로 영구 귀환하십시오.
대우는 최고로 해드리겠습니다."
석영은 창밖의 센트럴 파크를 보며 냉소적으로 답했다.
"나는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계의 개'요.
개는 길 위에서 죽어야지, 어느 한 집의 마당에 묶여 살 순 없소."
그는 미국 땅에서 한국의 사계절을 그리워하며 글을 썼다.
고국의 흙내음, 비린내 나는 어시장, 할매의 된장 냄새...
그에게 '민족'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감각의 총합이었다.
이때의 사무치는 그리움은 훗날 그가 여든의 나이에 펴낸 소설 《할매》의 밑거름이 되었다.
타향을 떠도는 이방인의 허기를 채워주던 것은 이념이 아니라, 먼 기억 속 할머니가 차려내던 투박한 밥상이었기 때문이다.
고립이 깊어질수록 그의 문장은 역설적으로 더 단단하고 날카로워졌다.
감옥을 나온 뒤에도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2009년, 그는 '유라시아 철도'라는 원대한 꿈을 품고 중앙아시아 행보에 동참했다가 '정권의 부역자'라는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평생을 바쳐온 진보 진영의 동지들이 등을 돌릴 때, 그는 카자흐스탄의 거친 벌판에 홀로 서 있었다.
먼지바람을 맞으며 그는 생각했다.
"나를 지지하던 자들도, 나를 비난하던 자들도 결국 내가 만든 '이미지'를 소비했을 뿐이구나."
그는 그곳에서 강제 이주된 고려인 할머니들을 만났다.
낯선 땅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우리말을 지켜온 그들의 굽은 등을 보며 석영은 참회했다.
전쟁과 이데올로기가 할퀴고 간 자리에 남아 씨앗을 뿌리고 생명을 건사한 것은 언제나 여인들이었다.
《할매》 속 주인공처럼, 어떤 풍파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 내는 그 끈질긴 '생명' 자체가 정치적 노선이나 이념적 선명성보다 훨씬 더 숭고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이제 여든을 넘긴 노작가는 강화도 자락에 작은 거처를 마련했다.
눈앞에 보이는 북녘 땅은 여전히 가깝고도 멀었다.
그는 매일 아침 마당을 쓸며 생각한다.
"나는 평생 선을 넘는 자였다.
그 선 때문에 수갑을 찼고, 그 선 때문에 망명객이 되었으며, 그 선 때문에 동지들을 잃었다.
하지만 그 선을 넘지 않았다면 나는 한 줄의 진실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서재로 들어가 다시 펜을 잡는다.
원고지 위에는 이제 '주석'도 '대통령'도 '혁명'도 없다.
오직 시장통에서 국밥을 말던 할머니, 교도소 옆방에서 신음하던 청년, 만주 벌판을 달리던 이름 없는 광대들의 이야기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최근작 《할매》를 통해 그가 도달한 지점도 바로 여기였다.
거대 담론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역사의 거센 물결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남은 작은 존재들의 비루하면서도 찬란한 일상을 기록하는 것.
비난은 바람에 씻겼고, 찬사는 먼지가 되었다.
노작가는 비로소 자유로워진 손길로 첫 문장을 적는다.
"인생은 짧고 이념은 덧없으나, 고통받는 자들의 사랑은 영원히 기록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