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채권관리사입니다

도망치는 자에게는 길이 없지만, 마주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출구가 있다

by 남지만 작가


최근 정부는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위해 ‘배드뱅크(새출발기금 등)’라는 제도를 시행한다는 소식을 연일 뉴스를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이 신청하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지원을 넘어, 정부가 직접 부실 채권을 사들여 정리해 주는 공적 자금의 선제적 보호 조치라 할 수 있습니다.
고금리 대출을 장기 분할 상환으로 바꿔주거나 회수가 불가능한 채무를 과감히 소각하여, 금융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다시 현업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끌어주는 큰 힘이 되는 제도입니다.
그렇지만 과거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던 상록수 제일차 유동화전문회사, 희망 모아, 국민행복기금 등과 같은 맥락으로, 내가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대상자를 직접 선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본인이 해당되는지는 반드시 별도로 확인을 해야만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카드 연체, 당신은 지금 괜찮으신가요?

저는 채권관리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의 '빚'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보며 살아가는 것이 저의 일상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빚'을 뜻하는 단어로 '아마기(Amagi)'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역설적으로 '자유'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빚을 갚는 행위가 곧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자유로의 귀환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빚은 자유로 가는 통로가 아니라, 발을 들이면 나갈 수 없는 거대한 늪, 즉 '부채의 미로'가 되어버렸습니다.
채권관리사라는 직업은 단순히 돈을 받아내는 과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워질 수 있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혹시 선생님도 빚 때문에 밤잠을 설치거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기분을 느껴본 적은 없으신가요?
어쩌면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해본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많은 분이 겪고 있는, 그리고 가장 흔히 사용하는 카드 연체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늪에 빠지는 순간, 카드 연체와 리볼빙

매달 꼬박꼬박 카드값을 갚아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번 달은 도저히 안 되겠는데...' 하는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옵니다.
물론 연체가 발생하더라도 5일 안에만 갚으면 신용에 큰 불이익은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상황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을 때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가족, 친구, 지인… 하지만 그마저도 한계에 부딪히면, 결국 리볼빙이나 고금리 대출이라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유혹에 빠져들게 됩니다.
사실 리볼빙은 금융사 입장에서 보면 '가장 완벽한 수익 모델'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리볼빙의 이자율이 법정 최고금리(20%)에 육박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를 '대출'이 아닌 '결제 편의'로 오해한다는 점입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회계(Psychological Accounting)'라 부릅니다.
당장 내 통장에서 나가는 돈이 적어 보이기에, 우리 뇌는 이 무서운 이자를 '나중에 낼 작은 수수료' 정도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이 이자는 복리의 마법을 타고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주객이 전도된 채무의 폭발을 불러옵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 독촉과 법적 조치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은 연체 20일쯤에 찾아옵니다. 이때쯤 대부분의 채권은 신용정보사로 위임됩니다. 위임받은 신용정보사로부터 시작되는 독촉 전화, 문자, 심지어 방문까지.
집으로, 직장으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연락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줍니다. (물론 법적 규정상 독촉 횟수 제한이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연체 90일쯤 되면, 신용정보사는 단순 독촉의 한계를 느끼고 채권사에게 법적 조치를 의뢰하여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깁니다.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는 것이죠.
이렇게 법적인 '집행권원'을 얻게 되면 채권자는 무서운 칼을 휘두를 수 있게 됩니다.

가장 흔하고 고통스러운 법적 조치들


* 재산 압류: 통장, 급여, 보험금, 전월세 보증금, 차량, 부동산 등 선생님의 모든 재산에 손을 댈 수 있게 됩니다.


* 기타 조치: 재산명시 명령, 신용불량자(채무불이행자 명부) 등재 등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여기서 하나 예를 들자면, 재산명시 명령은 채무자가 직접 법정에 출석해 자신의 모든 재산 목록을 판사 앞에서 선서하고 공개해야 하는 절차입니다.

채권자는 이 목록을 바탕으로 강제 집행을 행사합니다.

만약 거짓을 고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하면 유치장 감금(감치)까지 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심리적 압박 수단이 됩니다.

20년의 미련, 도망치는 선택


이런 법적 조치를 피하기 위해 수십 년간 채권자와 '숨바꼭질'을 하며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스스로 '저것도 능력이다'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하기도 하죠.

나름 다 사정이 있습니다.

특히 다중채무자로 포기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는 정말 미련한 선택입니다.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 없기에, 언젠가 부모님으로부터 재산을 상속받거나, 사고로 보험금을 타거나, 좋은 직장으로 이직할 수도 있습니다.

채무는 죽어서까지 상속포기나 한정상속을 하지 않으면 직계가족에게 상속됩니다.

그때마다 숨어있던 채권자는 다시 나타나 선생님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준비 없이 살다가 일이 터졌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입니다.

즉, 수십 년간 빚의 족쇄를 풀지 못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정말 어렵고 필요할 때 쓴 돈인데, 단지 어렵다는 핑계로 왜 갚지 않고 회피만 하시나요?

이는 인간의 도리로서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어떤 분들은 아무리 어려워도 본인이 저지른 잘못이기에, 생활비를 쪼개고 또 쪼개어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만약 지금 당장 빚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무조건 피할 것이 아니라 파산이든, 개인회생이든, 신용회복이든 반드시 공식적인 채무 조정 절차를 밟아 빚의 굴레를 끊어내야 합니다.

빚을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3가지 길

빚을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 돈을 빌린 곳에 직접 갚는 것이지만, 상황이 도저히 여의치 않다면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마련해 둔 3가지 제도를 고려해 보세요.
이 제도들은 앞서 언급한 배드뱅크와는 달리 내가 직접 신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 개인파산 및 면책: 지속적인 수입이 없거나 빚이 재산을 초과할 때 신청합니다.
모든 채무가 면제(탕감)되지만, 특정 직업에 제한이 있을 수 있고 5~10년 후 기록이 삭제됩니다.

* 개인회생: 꾸준히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급여 또는 영업 소득자를 위한 제도입니다.
3~5년간 성실히 일정 금액을 갚으면 남은 빚을 면제해 주며, 취업에 거의 문제가 없습니다.

*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연체일이 3개월 이상인 경우(프리워크아웃은 연체 전 또는 30일 이하) 신청합니다.
독촉 중지 효과가 크며, 이자 전액 감면은 물론 오래된 채무는 원금도 최대 90%까지 감면 가능합니다.

● 중요한 Tip: 하나, 신용을 처음처럼 그대로 빨리 회복하고 싶다면 처음 돈을 빌린 곳에 직접 갚는 방식입니다.
둘,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법원에 접수하고 사건번호를 채권자에게 통지하면, 대부분의 지긋지긋한 독촉이 즉시 중지됩니다.
신용회복위원회 절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빚 때문에 고통받는 선생님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채권관리사인 제가 수천 명의 채무자를 만나며 얻은 유일한 진리는 '도망치는 자에게는 길이 없지만, 마주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출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빚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경제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아차 하는 순간 어느새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채무가 있는데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요?
채무가 있는데 그 어떤 다른 일이 손에 잡힐까요?
먼저 최근 정부에서 시행하는 배드뱅크에 해당 여부를 확인해 보시고, 해당되지 않는다면 이 세 가지 제도 중 선생님의 상황에 맞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찾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