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채권관리사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

by 남지만 작가

회사라는 울타리를 걷어차고 '자유'를 선택했을 때, 내 이름 뒤에는 '프리랜서'라는 근사한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매달 입금되는 보수에서 떼이는 3.3%라는 숫자가, 실은 내가 감당해야 할 고독한 생존 투쟁의 입장료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들은 '세금 적게 떼서 좋겠다'며 가볍게 넘기지만, 그 소수점 아래에는 직장인이라면 당연하게 누렸을 수많은 안전망의 부재가 숨겨져 있다.
소득은 불안정한데 자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자비하게 날아오는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 고지서는 프리랜서의 삶을 수시로 위협한다.
어디 그뿐인가.
은행 문턱을 넘는 순간, 수천만 원의 수입을 증명해도 '직업이 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며 대출 상담 창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서글픔은 프리랜서만이 아는 고질적인 소외감이다.
퇴직금도, 유급 휴가도, 심지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하소연할 노동법의 보호조차 허락되지 않는 곳.
우리는 스스로를 고용했다는 자부심 하나로 이 척박한 사각지대를 버텨낸다.
오늘도 3.3%를 떼고 남은 금액을 확인하며 안도와 불안 사이를 오가는 동료들에게, 그리고 화려한 프리랜서의 삶 이면에 숨겨진 진짜 민낯이 궁금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자유'의 대가는 과연 얼마인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채무자들의 온갖 거짓말과 변명을 10년 넘게 들어오며 사람 상대하는 일에는 도가 텄다고 자부했건만, 정작 가장 날카로운 칼날은 믿었던 곳에서 날아왔다.
지속되는 실적 부진으로 정든 직장을 떠나 M신용정보사로 이직을 결심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켜켜이 먼지 앉은 20년 넘은 장기 채권들을 해결해 온 나였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공과 자신감이 있었다.
새로 옮긴 곳은 카드사 단기 채권 업무였다.
장기 채권에 비해 채무자들의 태도는 덜 거칠었지만, 당장 생계가 걸린 그들의 절박함은 피부에 더 진하게 와닿았다.
10년이 지나면 채무는 그대로 있지만 기록은 삭제되어 일상으로 돌아갈 희망이라도 있는 장기 채권과 달리, 단기 채권은 매일매일이 팽팽한 줄다리기였다.
이직은 전 팀장의 소개로 이루어졌다.
면접관으로 나온 센터장은 나를 보자마자 마치 오래된 전우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과거 같은 직장에서 옆 팀장으로 근무했던 인연이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찰나의 순간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예전부터 평판이 좋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망설임을 비집고 들어와 달콤한 제안을 건넸다.
“이미 검증된 분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저 좀 도와주세요.”
그는 당근을 제시했다.
지금은 60억 규모로 시작하지만, 팀 세팅이 완료되면 곧장 100억 원 규모의 채권을 배정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 확신에 찬 목소리를 믿고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제안을 수락했다.


시작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나를 포함해 3명이 모였지만 신설 부서라 집기 하나, 시스템 하나하나를 직접 만들어가야 했다.
새로 온 팀장조차 추심 경험이 전무한 초보였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내 몫을 다해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열정을 쏟았다.
팀장에게 추심 노하우를 전수하며 밤낮없이 뛰었다.
위임사 간의 경쟁이 치열한 만큼 '단합'만이 살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팀장은 팀원들과 밥도 먹지 말라"는 회사의 딱딱한 지침도 무시한 채, 가끔 점심시간에 다 함께 다독이며 식탁에 앉았다.
우리가 이 조직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창 성과를 내며 자리를 잡아갈 무렵, 차가운 쪽지 한 장이 돌아왔다.
계약서를 작성하라는 내용이었다.
확인해 보니 계약 기간은 고작 3개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내칠 수 있는 소모품 취급이었다.
불쾌함이 엄습했지만, '내 실력만 확실하면 설마 내치겠느냐'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펜을 들었다.


마침내 3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초기 멤버 3명이 센터장과 면담을 가졌다.
이때가 2번째 멤버들이 들어오는 날이기도 했다.
센터장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감언이설을 늘어놨다.
어려운 거 있으면 다 말하라며, 우편비, 등기비, 초본 발급비 지원과 당분간 업계 최고치의 수수료를 약속했다.
하지만 본론은 따로 있었다.
갑자기 채권 배정액 계산 방식을 '원금'이 아닌 '총액(원금+이자)' 기준이라고 말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업계의 상식은 원금 기준이다.
좋다.
총액 100억이라고 치자.
1인당 일 할 수 있는 100억 규모의 분량을 배정한다는 말은 사망자, 파산자, 개인회생, 신용회복, 말소자, 거주불명자, 해외 이주자, 기초수급자등 모두 포함한 규모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추심할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총액 100억을 약속했던 그는, 이제 와서 경쟁사와의 형평성을 핑계 대며 2번째로"총액 60억"이라고 말을 바꿨다.
실질적인 원금으로 따지면 30~40억 수준,
애초 약속의 절반도 안 되는 규모였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당황한 우리에게 그는 쐐기를 박았다.
“이 조건이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두셔도 됩니다.
이미 이력서 뭉치가 이만큼 쌓여 있거든요.”
이쪽 세계는 초기 세팅 때 실적이 좋으면 잘 된다는 소문 듣고 사람들이 벌 때처럼 모인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황무지를 일구고 단합해서 만들어낸 성과가, 고작 '너희 말고도 일할 사람은 줄 서 있다'는 오만한 확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가 흘린 땀방울은 그에게 그저 더 싼 값에 부릴 수 있는 대체제를 고르는 여유가 되었을 뿐이었다.
간신히 자리로 돌아온 나는 퇴근 때까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 길로 이틀을 앓아누웠다.
배신감에 몸이 떨리고 이유 없는 오한이 몰려왔다. 노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법적으로 보호받기 힘든 위촉직의 서러움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회사는 3개월, 6개월 단위로 손쉽게 계약서를 갈아치우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 하루하루가 생계요, 삶의 전부다.
다시 짐을 싸서 다른 곳을 알아보기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버렸다.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이 업계의 베테랑인 나조차 그 검은 속내를 읽지 못한 대가는 너무나도 시리고 아프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