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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와 헌신 그리고 손흥민

예찬주의자

by 매버지

예찬주의자의 첫 번째 예찬 대상이었던 손흥민 선수. 이미 손흥민 선수를 예찬한 글(인간 손흥민)을 썼지만, 이번 유로파 리그 우승을 기념하며 의리와 헌신의 아이콘 손흥민을 다시 예찬하고자 한다.


축구계에는 흔히 ‘우승을 위해 팀을 옮긴다’는 말이 있다. 더 많은 트로피, 더 높은 연봉, 더 강한 팀을 향한 이적은 선수의 본능처럼 여겨지며 당연한 행보로 이야기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손흥민에게 물었다. “왜 아직도 토트넘에 남아 있느냐고.” 하지만 그 질문은 그가 보여준 묵묵한 모습 앞에 언제나 공허하게 울렸다.


2015년 여름, 손흥민은 독일 레버쿠젠을 떠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핫스퍼에 합류했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 선수에게 EPL은 높은 벽이었다. 박지성이라는 훌륭한 롤모델이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성공하지 못했고, 손흥민 역시 데뷔 초반 부진과 부상 속에 이적 실패라는 꼬리표를 달 뻔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시간을 버티고 이겨냈다. 피치 위에서는 몸이 먼저 움직였고, 벤치에서는 누구보다 겸손했다. 훈련장을 가장 먼저 나서고, 모든 선수들이 훈련을 마치고 떠나도 홀로 남아 슈팅 연습을 한 뒤 가장 늦게 떠나는 선수. 그렇게 그는 차근차근 팀의 핵심으로 올라섰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적설은 그의 성장을 방증했다. 수많은 빅클럽들이 그를 주목했고, 언론은 ‘손흥민이 이 팀에 있기엔 너무 아깝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는 떠나지 않았다. 매 시즌 새로운 도전을 하듯 유니폼을 갈아입는 세상에서 손흥민은 같은 색의 셔츠를 입고 그라운드를 지켰다. 그것은 충성이라 불러도 좋고, 의리라 해도 무방하며, 그저 ‘손흥민의 토트넘’이라는 말이 가장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토트넘은 늘 어딘가 2% 부족한 팀이었다. 201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아쉬운 패배를 안았고, 이후에도 카라바오컵 결승 문턱에서 무너졌다. 기대는 실망으로 희망은 무관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결국 그와 함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뛰던 핵심 멤버들은 모두 다 팀을 떠났고, 손흥민만 남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무리뉴, 콘테같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장들을 만나 EPL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어떤 우승도 하지 못했다.


현재 이탈리아 리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나폴리의 콘테 감독이 떠나고, EPL에서 가장 많은 합작골을 넣은 영국 대표팀의 주장인 해리 케인마저 떠났다. 그리고 엔제 코스테코글루라는 이름도 낯선 감독이 부임했고 팀의 마지막 남은 베테랑인 손흥민을 주장으로 역임하여 팀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수 본인의 부상과 팀 핵심 멤버들의 부상 그리고 무리한 전술 등으로 팀 경기력은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번 시즌 팀 역사상 가장 많은 패배를 기록했고, 경기가 끝난 후 혼자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보이는 손흥민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5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유로파리그 결승전. 부상에서 돌아온 손흥민은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이끌었다. 초조하고 조심스러웠던 시작과 달리 그는 경기 후반에 투입되어 팀을 진두지휘했다. 그리고 1:0의 승리로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그라운드 위에 남은 건 그가 걸어온 시간이었다. 10년의 기다림, 17년간의 무관을 깨는 우승,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캡틴 손흥민. 마침내 그는 토트넘이라는 이름으로, 손흥민이라는 이름을 우승의 역사에 새겼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우승 자체에 있지 않다. 누군가는 커리어 중반에 팀을 떠나 손쉽게 트로피를 쥐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영광의 순간만을 좇아 이리저리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그러나 손흥민은 ‘무관’이라 조롱받던 클럽에 남아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견뎌냈으며 팀을 지켜냈고 결국엔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것이 바로 의리이고 신념이자 축구라는 스포츠가 품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감동이다. 어쩌면 그런 그의 모습 때문에 지금 전세계 축구 팬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손흥민은 단순한 스타가 아니다. 그는 ‘남는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증명한 선수다. 그가 들어 올린 트로피는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만이 질 수 있는 무게의 상징이다. 우리는 그 트로피보다 그의 웃음과 신념을 기억할 것이고, 환호보다 그의 눈물을 기억할 것이다.


“때로는 기다림과 견딤이 그리고 묵묵한 걸음이 가장 위대한 승리를 만든다”


출처 : 스포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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