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주의자
오랜만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하며 다시 한번 삶의 우선순위를 매기게 되었다. 20대에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30대에는 내가 속한 조직 안에서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반 밖에 달리지 못한 40대. 이제 내 삶에서 가장 우선되는 건 '성공'이나 '좋은 직장' 같은 것이 아니라 심신의 안정, 그리고 건강이다.
지난 금요일, 벌써 8년째 이어오고 있는 모임이 있었다. 첫 직장에서 만난 동기들과 두 달에 한 번씩 이어지는, ‘독서모임을 가장한 술자리’다. 그 사이 우리 셋은 가족이 한 명씩 늘어났고, 사는 곳도 일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날도 늘 그렇듯 근황 토크로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건강과 자식 이야기가 주제였다.
늦게 도착하는 A를 기다리며 B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에게 '이석증'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년 전, 한 코스닥 상장사의 회장에게 스카우트되어 중소 자문사를 함께 키워 온 그는 회사의 매출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다. 전국의 금융사 영업조직을 돌며 자사 상품을 소개하고, 서울에 있어도 늘 출장에 시달리는 나날. 최근에는 한 달의 절반 이상을 지방에서 보내고 있다고 했고, 결국 그의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평소 워낙 강골이던 B였기에 충격도 컸다. 그는 앞으로 두 달은 스케줄을 최대한 줄이며 조금은 ‘덜 사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2주가 되었는데도 어지러움증이 가시지 않는다며 걱정을 했다.
나 역시 3개월 전부터 허리에 이상이 생겼다. 처음엔 단순한 근육통이겠거니 했지만,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신경외과를 찾았다. 의사는 일단 주사를 맞아보자며 수술방 같은 시술실에서 내 허리에 깊숙이 바늘을 찔렀다. 그날 이후 오히려 통증은 더 심해졌고, 한의원을 다니며 비싼 치료도 받아봤지만 통증은 여전히 내 몸 한구석에 남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 맡은 컨설팅 용역 업무는 오랜만에 ‘정면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살면서 몇 번 경험하지 않았던 ‘담’이 등 한가운데 왔고 허리를 제대로 펴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침을 맞고 겨우 풀렸나 싶었는데, 다시 또 담이 왔다. 스트레스는 그렇게 고스란히 몸으로 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허리를 폈다 구부렸다, 일어섰다 다시 앉았다를 반복한다. 이 알량한 몸뚱이를 걱정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A는 어떨까. 그는 마흔이 되는 해에 하늘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갑상선암이었다. 현대 의학에서는 생존율이 높아 ‘착한 암’으로 불리지만, 그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보험회사 지점장인 그는 늘 ‘질병 리스크’를 설파하던 사람이다. 정작 그런 병이 자기 몸에 찾아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수술 일주일 후, 우리는 A와 함께 강릉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는 수술의 여파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멀쩡했던 나와 B는 “인생 뭐 있냐, 건강이 최고지!”라고 외치며 거나하게 술잔을 비웠다. A는 이후 담배를 끊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애썼지만 실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마주하는 그의 삶은 그 결심을 끝까지 붙잡아두지 못했다.
결국 그렇게 우리 셋은 현재 다 어딘가 아프고 골골한 상황이 되었다.
며칠 전, 우연히 본 SNS 쇼츠 영상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한 수도승이 등장해 이런 말을 한다(알고 보니 유명한 분이었다...).
건강할 땐 걱정이 수천 가지지만, 아프면 걱정은 딱 하나뿐이다. 건강.
그 한마디가 뇌리에 박혔다. 무엇보다도 먼저 몸을 존중하고, 돌보고, 사랑하라는 말. 그 쉬운 말이 지금의 나에겐 너무 어렵다. 내 몸은 분명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매번 “지금은 바쁘니까” “급한 일이니까”라며 건강을 뒷순위로 밀어냈다. 결국 몸이 아프고 난 지금 절박한 심정으로 내 핸드폰에 쇼츠의 한 장면을 스크린샷을 통해 배경화면으로 해 두었다.
결국 작년 말 내가 내게 했던 질문으로 돌아간다. [내가 가진 가장 비싼 거]라는 제목의 글을 쓰며 했던 목표설정. 최근 허리 부상으로 흐지부지된 건강관리. 3개월 후 건강을 되찾겠다는 다짐은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이뤄지지 않았다. 왜? 삶의 우선순위에서 ‘건강’을 가장 먼저 올려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가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건강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남은 인생은 무엇보다 건강을 먼저 챙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당장해야 하는 일은 그냥 제시간에 또는 시시때때로 또는 생각이 나면 당장 운동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건강한 음식을 제 때 챙겨 먹고 해로운 음식을 줄인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숙면을 취해야 한다. 일찍 자고 충분히 잔다. 그렇지. 참 잘 안다. 근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새벽 4시 30분이다. 일 생각에 자다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해 쓰고 있는 이 글이 내 건강을 해치는 중이다.
에라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