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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예찬주의자

by 매버지

재즈를 좋아한다. 특정한 가수의 노래가 듣고 싶지 않으면 평소 재즈를 즐겨 듣는다. 작년과 올해 육아와 재택근무를 하며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재즈를 원 없이 들었다. 보통 혼자 있을 때만 듣기 때문에 이 글을 본 아내가 '무슨 재즈야' 이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재즈를 좋아하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고, 오늘도 일을 하며 노동요로 재즈를 들었으니 이 정도면좋아한다고 할 만하겠다.


재즈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6년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바로 애청하던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통해 듣게 된 Jamiroquai의 [Virtual insanity]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재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펑키하고 정말 신맛이 물씬 풍기는 보컬의 리드미컬한 노래가 나를 사로잡았다. 내가 알고 있던 조금은 지루한 재즈와 전혀 다른 느낌의 노래를 들으며 이것도 재즈구나(acid jazz 장르), 좋은데?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동네의 단골 레코드샵에 달려가 테이프를 사서 늘어지도록 들었다. 실제로 음반 속 다른 곡들 역시 신비롭고 몽환적이었으며 내가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는 고등학교에 입학해 death metal, thrash metal에 빠져들어 꽤 오랜 시간을 잊고 살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한 정보검색이 원활한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유사한 가수들의 다양한 곡들을 섭렵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을 헤비메탈과 J팝에 빠져 있었던 나는 당시 깊이 심취해 있었던 책 [상실의 시대]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동경하게 되었다. 많이 알려진 것과 같이 하루키는 재즈러버다. 하루키는 잘 몰라도 유튜브 뮤직에서 하루키와 관련된 재즈 음악 콘텐츠를 본 사람은 많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상실의 시대를 집필하는 동안 재즈 아티스트 빌 에반스의 음악(Waltz for Debby)을 주로 들었다고 한다. 그는 '말 없는 피아노가 소설의 정서를 함께 만들어줬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하루키가 쓴 재즈 에세이집 [Portrait in Jazz]에서도 빌 에반스를 매우 높게 평가하는데 그 덕분에 나 역시 그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되었다.


빌 에반스는 미국의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이다. 그의 작품들을 듣다 보면 매우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이는 내가 자미로콰이를 좋아했던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음악이 나를 지금 내가 있는 현실 공간이 아닌 어딘가로 데려가는 듯한 느낌을 준달까? 빌 에반스의 My foolish heart, Detour ahead, Some other time 같은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담배연기 자욱한 위스키 바에 앉아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의 말년은 마약중독, 애인과 형의 자살로 매우 불행했지만 그가 남긴 음악들은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 외에도 너무나도 유명한 쓸쓸한 목소리의 Chet Baker, 스캣의 여왕인 Ella Fitzgerald, 팝과 재즈를 넘나드는 깨끗한 보이스의 Norah Jones까지 다양한 재즈가수들의 음악도 즐겨 듣는다. 최근 들어 관심 있게 듣게 된 재즈 보컬리스트는 Samara Joy이다. 2023 그래미 신인상을 수상한 그녀는 20대라고 믿기지 않는 묵직한 목소리로 재즈에 깊이 빠져들게 하는 그녀의 대표 곡 [Guess who I saw today]를 추천한다.


재즈를 즐겨 듣던 내가 요즘 빠져든 음악 장르가 있는데 바로 1960~70년대 록과 소울 음악이다. 빔 벤더스 감독, 야쿠쇼 코지 주연의 영화 [Perfect Days] 때문이다. 얼마 전 잠이 오지 않아 쓴 글에도 등장하는 이 영화에는 다양한 음악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의 공중 화장실을 청소하는데 출퇴근길에 주로 1960~70년대 록과 소울 음악을 듣는다. Lou Reed의 [Perfect Day], The Rolling Stones의 [(Walkin' Thru The) Sleepy City] 등의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특히 Nina Simone의 [Feeling Good]과 함께 연출된 마지막 신은 압권이다. 야쿠쇼 코지의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명품 연기와 Nina Simone의 소울 넘치는 목소리가 엄청난 조화를 이룬다.

https://youtu.be/Bn4lxodunWM?si=EhaCZYHUyPotPUjG

영화 퍼펙트 데이즈 엔딩 신

재즈에서 시작해 록과 소울 음악까지 와 버렸다. 결국 음악을 좋아한다가 더 맞는 예찬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수들의 노래를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듣던 시절이 있었다. 듣다 보면 부르고 싶어져 공테이프에 직접 부른 노래를 녹음해서 들으면 어찌나 어색하던지. 그런 모든 일들이 즐거움으로 남아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한 동안 잊고 지냈던 음악들을 여유가 생긴 후 다시 찾은 건 내 기억 속 추억들 덕분인 것 같다. 앞으로의 삶 속에는 재즈와 소울 음악들이 늘 함께하길 바란다. 그리고 자동차에 타서 무심코 튼 빌 에반스의 음악을 듣고 딸아이가 내게 '아빠, 이건 무슨 노래야'라고 물어 오는 그날이 꼭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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