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하게 시작해 정리가 되는 밤
요즘 종종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회사를 다닐 때였다면 일에 지장을 줄 것이라 꾸역꾸역 고통스럽게 잠을 청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처음엔 SNS의 노예가 되어 허덕이지만 조금 지나 책을 읽기로 마음을 먹는다. 책을 조금 읽다 보면 자연스레 뭔가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럴 때 브런치에 로그인해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술술 생각을 써 내려가는 나를 발견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내 생체리듬이 아직 깨어있길 바란다는 것이고 내 의식 또는 무의식이 간절히 잠들지 않고 싶다는 것이다. 이때 잡생각에 빠지는 것은 제일 안 좋은 일인데 생각의 꼬리를 물다 보면 괜한 근심이 생기거나 좋지 못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그래서 무언가 뇌에 주입하거나 몸을 움직여 풀어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개인적으론 이런 심야에 앞서 말한 것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 중 최선이 독서이고 글쓰기라고 결론을 냈다.
작년부터 글쓰기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지인 마이즈 님은 매월 자신이 한 일을 시간 데이터로 정리해 인스타에 공유해 주신다. 볼 때마다 신박한 표다. 평균 수면량이 3~4시간 정도로 나오는데 잠을 잘 자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우리 PT선생님의 말씀과 극렬한 대조를 이룬다. 잠을 줄이시면서까지 다양한 일과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한편으론 그에게도 잠이 오지 않은 날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최근 인상 깊게 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히라야마(아쿠쇼 코지)는 매일 꿈을 꾼다. 대부분 과거와 최근에 겪은 일들이 형체가 흐릿한 흑백의 꿈으로 재현되다 깨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솔직히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의 변화에 대한 의지가 담긴 대사를 곱씹어 보면 후회스러운 어두운 과거와 하루하루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현재가 치열하게 공존하는 느낌이다. 후회와 외면하고픈 과거의 나 역시 나이고 새로운 인생으로 나아가고자 매일 도쿄의 화장실을 청소하는 지금의 나 역시 나이다. 과거의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잠이 안 와서 글을 쓰게 되었는데 지인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써 버렸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이 잠을 못 자서 오는 흐리멍텅함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흐리멍텅함은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다. 가끔은 이렇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좋다. 이런 모습이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나는 이런 내가 마음에 든다.
올해 들어 [예찬주의자]를 연재하며 긍정적인 측면으로 나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나라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그동안의 경험과 그 안에서 생겨난 취향들이 뒤섞여 나를 표현하고 있다. 만약 과거 외형적 성공에 집착하며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살았던 내가 계속 이어져 지금의 나처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면 현재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 이유도 모른 채 많이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잠이 오지 않아 생긴 이 순간이 참 소중하고 지금의 삶이 감사하다. 이젠 자야지. 굿 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