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약 3개월간, 나는 모 기업의 신사업 컨설팅 용역을 수행했다. 계약부터 실무 절반 이상을 도맡았기에 전체 업무의 55~60% 정도를 책임졌다고 볼 수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는 9월까지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했지만, 나는 그 끝을 보지 못한 채 중도 하차하게 되었다.
하차의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무너진 건강과 그 원인 중 하나였던 외주용역사의 관리자와의 협업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처음엔 맞춰보려 했다. 참고, 설득하고, 보완하며 버텨봤다. 하지만 결국 병이 났고 시간이 흐를수록 골골한 몸으로 프로젝트를 견뎌야 했다.
더 이상은 안 된다는 판단이 들었고, 더 큰 병이 나기 전에 용역계약을 파기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생긴 오해나 불신은 일정 부분 해소됐다. 마지막 한 달은 거의 턴키 방식으로 혼자 업무를 책임지며 중요한 중간 결과물을 완성했다. 남은 업무에 대한 기획안과 프로세스, to-do 리스트도 정리해 인수인계자에게 전달하고서야, 나는 7월을 맞았다.
업무 마지막 날 이번 일을 주선했던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조심스레 나의 하차에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러더니 브랜드 마케터 노희영 님의 쇼츠 영상 하나를 언급했다.
일을 할 때 상사의 인성을 평가하는 것은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말의 의도는 쉽게 읽혔다. 내가 함께 일했던 관리자의 ‘인성’을 문제 삼아 결국 프로젝트를 완수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회사에 피해를 끼쳤다는 뜻이었다. 조금은 완고하고 보수적인 성향의 지인이었기에 애써 넘기려 했지만,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 영상을 찾아보게 됐다.
https://youtube.com/shorts/Fi8Jp_0YFgk?si=zIViKYjSh3-Xv6yk
영상 속에서 노희영 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사에서 리더의 인성을 평가하는 건 좋지 않다. 너희 부모님의 인성은 마음에 드니?”
“나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에겐 무조건 배울 점이 있다.”
“팔로워가 리더를 평가하기 시작하면 불행해진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뭔가 다른 게 있으니, 그게 뭘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꽤나 현실을 꿰뚫는 직언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싸가지가 좀 없어도 일 잘하면 되는 거고, 윗사람이면 배워야지’라는 정글의 논리. 특히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에선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 영상은 오히려 ‘도덕보다 성과’, ‘인성보다 위치’, ‘성공은 곧 돈’이라는 명제를 반복 주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콘텐츠를 내게 인용한 지인에 대해서도 실망감이 느껴졌다. 더불어 자신만의 성공 서사에 갇혀 타인의 사정은 지워버리는 노희영님의 완고한 태도가 참 아쉬웠다.
물론 나는 그녀의 의도를 완전히 부정하고 싶진 않다. 분명 그녀는 '완벽한 인성은 없고, 회사에서는 성과 중심의 시선으로 배울 점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롭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인성도 완벽하지 않으니 상사 평가하지 마라”거나,“돈을 많이 버는 사람에겐 무조건 배워야 한다”는 식의 말은 너무 위험하다. 특히 어린 시청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현실적으로 기업에 입사하면 팔로워는 리더를 직접 선택할 수 없다. 주어진 리더를 수용해야 하는 구조이며, 특히 한국의 기업 문화는 아직도 상명하복 체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리더를 선택할 수 있다. 퇴사, 다른 부서로의 이동 또는 마음속으로 따를지 말지를 정하는 것, 직접 리더가 되는 일 등이 보통 리더를 선택하는 방법들이다. 결국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궁극적으로는 리더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인성이 좋지 못한 리더를 따르며 곪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질문은 결국 나에게로 향한다. 한때 내가 리더였던 시절, 나는 어떤 리더였을까? 지금 생각하면 부족하기 짝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때 내 옆에 있어 준 팀원들에게 더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들에게 내 작은 한 구석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늦었지만 당시 불편하고 부족하게 느껴진 점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편히 차 한잔 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행운이 내게 생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