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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배워가는 아이에게

감사하는 마음

by 매버지

오랜만에 아이 이야기를 쓴다.


여섯 살 딸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한때 언어 지연으로 마음을 졸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하루 종일 재잘재잘 쉬지 않고 말하는 아이가 되었다. 참, 아이 키우는 일이라는 게 그렇다. 하나의 걱정이 잦아들면 또 다른 고민거리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최근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올해 초, 가장 친하던 친구가 원을 옮겼고, 얼마 전에는 또 다른 친한 친구마저 전학을 갔다. 거기에 1년 넘게 같은 반에서 아이의 머리를 곱게 묶어주시던 선생님마저 퇴사하셨다. 친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사라진 교실에서, 아이는 요즘 말 못 할 내적 고통을 겪고 있는 듯하다.


며칠 전부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어린이집 안 가면 안 돼?”라는 말을 꺼낸다. 처음엔 그냥 피곤한가 보다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같은 말을 반복한다. 결국 아이를 달래 어린이집 문 앞까지 데려가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바라본다. 그럴 때면 마음이 무너진다. 일이고 뭐고 다 접고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약속된 일들이 있기에 억지로 아이를 들여보내고, 우울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아내는 이른 아침 출근하기 때문에 이 상황을 직접 마주하진 않지만, 자기 전 아이에게 “엄마 내일도 회사 가? 안 가면 안 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미어진다 한다. 그래서인지 어린이집 등원 알림이 울리면 어김없이 아내에게 카톡이 온다. “오늘도 울고 들어갔어?” “응, 너무 신경 쓰지 마. 금방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부부끼리 주고받는다.


인생의 3분의 1을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아이에게 친구와 선생님은 그 자체로 세상의 전부일지 모른다. 물론 언젠가 이별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깨닫겠지만, 지금은 너무 버겁고 아픈 순간일 것이다. 나는 그저 더 이상 딸의 소중한 존재들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으론 또 다른 친구들과 웃으며 잘 지내는 모습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요즘 아이들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부모가 먼저 나서서 해결해 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문제를 감당하는 힘, 이른바 ‘자생력’이 부족해지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빠로서 아이에게 ‘혼자서도 놀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싶다. 아이는 유독 혼자 노는 걸 힘들어한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데 기질 상 함께일 때 즐거움이 크고, 사람과의 연결이 에너지인 아이로 태어났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혼자서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주면 좋겠다. 여섯 살 아이에게 너무 큰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혜화에 있는 서울대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고 왔다. 큰 병은 아니지만, 재작년부터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을 하고 있다. 검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어린이병동 앞 택시에서 내리는 부자(父子)를 보았다. 수심이 가득한 아버지와, 뙤약볕 아래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작은 아이. 자세히 보니 그 아이는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상태였다. 아마 아픈 병을 앓고 있는 어린 환아였으리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의 얼굴에는 해맑은 표정이 스쳐 보였다. 그 밝음 앞에 왠지 미안해졌고, 동시에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다시금 생각했다. 지금의 삶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 걱정도 많고, 슬픔도 있고, 해결되지 않은 일도 있지만 우리 가족 모두 크게 아프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리고 이름 모를 소년의 병이 하루빨리 반드시 낫기를 진심을 다해 빌어 본다.


그래.. 감사하며,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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