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과 자존감

feat. 완벽주의

by 매버지

사람은 살아가며 누구나 필연적으로 잘못을 한다. 잘못의 크기에 따라 경중이 다를지는 모르지만 크고 작은 잘못을 우리는 자주 저지르며 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잘못을 한 이후 바로 잡고자 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정말 큰 잘못이 아니면 세상에 드러나는 법이 없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어떤 잘못을 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상당한 용기와 자존감이 수반되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가끔 상대방과의 관계를 빠르게 정상화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전략적으로 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잘못을 인정했다고 보기 힘들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진심을 100% 알 수는 없기에 보통 그들의 사과를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사람은 분명 또 어딘가에서 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되어 있고 그 업보는 현생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치를 것이라 생각한다.


반대로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 받아주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상해버린 마음이 상대방의 말 몇 마디로 바로 치유될 수는 없으니까. 이 역시 상당한 배려와 이해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군가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을 만한 자존감이 나를 감싸고 있을 때 용서하는 마음도 생긴다. 개인적으로 상대방이 사과를 했을지언정 내가 사과를 받아줄 만한 상태가 되지 않았을 때는 받아주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어설픈 용서로 인해 상대방은 갈등이 해소되었다고 생각하고 하는 행동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내 감정을 다시 건드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잘못과 사과를 깔끔하게 받아 줄 마음이 되었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다. 그때 화를 내거나 흥분하는 상대라면 아마도 진정한 사과가 아니었을 확률이 높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사과를 받아주는 일은 자존감과 크게 연관이 있다.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장착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존감이 높을수록 잘못을 저지를 확률이 낮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잘못된 행동이 나를 깎아내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존감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자만심으로 변질될 경우 잘못을 저지를 확률은 높아진다. 자존감과 자만심의 가장 큰 차이는 자신과 남을 바라보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전자는 건강한 자기 인식 하에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편인데 반해, 후자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타인을 평가절하하는 습성을 보인다. 그러므로 자만심이 높은 자는 내로남불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자존감을 높이는 일은 인생을 살아가며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라 생각한다. 장점만 있는 사람은 없기에 자신의 단점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가 엄청난 완벽주의인데 어릴 때부터 정답을 말해야 하고,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하며, 튀면 안 된다는 생각을 주입받으며 살아왔기 때에 이것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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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나의 경우 중학교 1학년 정규과정으로 배우기 시작한 영어수업 때 선생님의 지시로 한 챕터의 지문(책의 약 3~4페이지)을 통으로 외워야 했다. 반 아이들이 줄을 서 한 명씩 교단 앞에서 외워 온 지문을 발표해야 했고, 중간에 틀릴 경우 타일로 된 교실 바닥에 다시 내 차례가 올 때까지 머리박기를 해야 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건 절대 틀리면 안 된다는 불안한 마음과 암울한 교실의 분위기가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교사분들이 많이 계셨고, 틀리면 맞는다는 인식이 가득한 시대였다. 그렇게 자라난 나와 같은 부모들이 이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이 왔다. 나의 단점을 인정하고 그것마저 포용하며 완벽하지 않지만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인가? SNS의 홍수 속에서 실시간으로 남과 나를 비교해 가며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한 점만 찾으며 살아갈 것인가? 그런 나에게 절대적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아이를 불안한 성인으로 키울 것인가? 우리는 답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정답은 아니다. 결국, 나에게 맞는 해답을 찾아 길을 나설 뿐 오답은 없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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