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그리고 발견
오늘 오후 교대역의 한 커피숍에서 목격한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생경하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은 말쑥한 차림의 중년남성은 표정이 여유로웠다. 잠시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보던 남성의 앞에 체구가 크지 않은 한 남성이 찾아왔다. 오피스가 많은 지역이라 처음엔 언뜻 보고 부하직원과 티미팅인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자리 앞 불과 1m 남짓 거리에 앉은 두 사람의 옆모습이 마치 영화 프레임처럼 내 눈에 들어왔다. 다소 시끄러웠던 카페의 소음을 피해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아이컨택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달까.
자세히 보니 중년남자의 건너편에 앉은 친구는 아직 앳된 고등학교 학생처럼 보였다. 아버지와 아들로 추정되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확신했다. 사이가 매우 좋은 부자가 아니라면 느낄 수 없는 그런 바이브가 내 자리까지 전해졌다. 주로 아버지가 질문을 하고 대화를 이끌어가는 모습이었고, 아들은 아버지의 질문에 조곤조곤 답하는 모습이 왜 그렇게 새롭게 보였을까? 어쩌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자지간의 모습이기도 하였고, 내 주변에서도 찾기 어려워 보인 케이스였기에 실제로 보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걸 글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지만 엄청 아름다웠고, 부러웠으며, 닮고 싶었다.
조금 더 두 사람의 모습을 묘사해 본다. 먼저 아들은 몸을 앞으로 살짝 숙였지만 곧은 자세로 아버지를 끝없이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살짝 붉어진 얼굴과 약간 올라간 입꼬리에서 알 수 있듯 지금의 대화가 풍요롭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존경심과 사랑을 듬뿍 담은 손가짐을 한 채 아버지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아버지는 자연스러운 눈주름과 팔자주름을 이용해 눈과 입은 웃고 입으로는 들리지 않았지만 따스한 말들을 쏟아낸다. 인상 깊은 점은 아들이 아버지를 바라본 모습처럼 아들임에도 인간으로서 존중과 사랑을 가득히 담은 채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모든 것들이 자세와 표정 손동작에 드러나는데 좋은 아버지임이 분명하였다.
오늘 처음 본 두 사람의 모습을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한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면서 자주 느껴볼 수 없는 그런 감정이었기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되었고, 아이를 기다리던 중이었기에 자연스레 나와 딸의 먼 미래를 상상하게 되었다. 나도 꼭 그런 아버지가 되어 내 딸과 그런 바이브를 만들어 보리라. 지금의 나와 딸을 생각해 보면 앞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내 노력이 더 커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아버지와의 과거를 추억해 본다. 나는 저렇게 오붓하게 부자지간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있었나? 사업 때문에 늘 바쁘셨고 할아버지를 담아 평소 과묵하셨지만 술 한잔이 들어가면 자식들을 식탁에 앉혀 놓고 대화를 가장한 훈계의 시간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때의 미안함이 있으신지 이제 40대 중반이 된 아들인 나에게 무언가 궁금해도 직접 물어보지 않을 때가 많으시다. 괜스레 어머니를 통해 대신 묻곤 하신다. 별것도 아닌 거 그냥 물어보시면 더 소상히 답해 드릴 텐데 말이다. 이쯤 되면 내가 문제인가 싶기도 한데 나 또한 조잘조잘 꼬치꼬치 사소사소 이야기를 건네는 그런 아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간의 편안한 대화의 장을 자주 열어주셨다면 좀 더 친한 부자지간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 시간이 부족했다고 해서 서운했고 아쉽다는 감정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왜 그땐 그러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을 이제야 해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오늘 우연히 만난 이름 모를 아버지와 아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이미 충분히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아름다운 부자지간이 평생토록 이어지길. 그래서 나와 같은 우연한 관찰과 발견들이 계속 일어나길.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