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는 자주 그 길목에 앉아 있었다. 마치 그 길목을 지나려면 자신을 거쳐가라는 듯이. 개의 얼굴과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했고 공격하진 않았지만 언제든 공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 역시 그 개를 처음 본 그날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했던 그 순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생겼다. 매일 그 자리에 앉아있는 건 아니었지만 가끔 볼 때면 공격할까 두려웠고, 지나쳐 걸어가면 일정간격 거리를 두고 어느 지점까지 꼭 따라오는 그 녀석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조용했던 어촌마을은 드라마의 배경지가 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여기저기 난개발이 시작되었다. 우후죽순으로 풀빌라가 생겨났는데 알고 보니 그 녀석은 그 길목 위의 풀빌라 자리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이 마을을 찾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기분 나쁜 그 녀석을 본 뒤 동네 슈퍼의 할머니께 들은 말이다.
"원래 그 자리에서 살던 사람들이 땅이랑 집을 팔고 도시로 떠났어. 근데 그놈이랑 어미를 두고 떠나 버린거야. 그 후론 계속 저러네."
"어미요? 어미는 본 적이 없는데요."
"그놈 어미는 얼마 안 지나서 그 앞 도로에서 차에 치여서 죽어 버렸지 뭐야. 마을 사람들이 길목 위 쪽에 묻어주었는데 거길 자주 왔다갔다하더라고."
속으로 불쌍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주인에게 버림받고 어미는 차에 치여 죽다니. 사람으로 치면 진짜 기구한 인생이구나 싶었다. 그 후부턴 그 녀석을 볼 때면 먹을 것도 던져줘 보고 오라고 손짓도 해보았지만 절대 곁으로 오지 않았다.
글을 쓰다 답답해지면 바닷바람을 쐬러 그 길목을 지나 걸어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녀석이 앉아있었다. 이제는 조금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나를 경계하는 그 개를 지나 걸어갔다. 조금만 걸으면 등대가 있었는데 거기에 낚시의자를 펴두고 담배 한 대를 물고 있으면 외롭기도 하지만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보통 그 녀석은 나를 조금 따라오다가 돌아가는데 오늘은 등대 근처까지 쫓아온 게 아닌가? 속으로 '이 녀석 이제 조금 나랑 친해진 건가?'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녀석의 발목에 감긴 철사가 보였다. 인근 공사장에서 사람들 출입을 막으려 펜스 대신 쳐 둔 쇠철창 같았다. 녀석에게 다가가자 웬일인지 오늘은 가만히 있는다. 조심스럽게 발을 만지려 하니 낑낑거리며 뒷걸음질 치는데 이대로 두면 안될 거 같아 녀석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살을 깊게 파고들진 않아서 조금만 힘을 쓰며 빠질 것 같았다.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뒤에서 녀석을 발로 안고 두 손으로 철사를 벌려 빼주었다. 빠진 철사에 녀석의 피가 묻어있었는데 꽤 아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철사를 빼주자 살짝 절름거리며 걷다 뒤를 한 번 바라보고는 녀석은 유유히 또 사라졌다. 안 써지는 글을 쓰는 와중 좋은 일 하나 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느껴져 담배 한 대를 더 피고 민박집으로 돌아갔다.
이상하게 그날 이후부터 글이 잘 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 보이던 그 녀석은 사라져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는데 내가 글을 마치는 그날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 그 길목을 일부러 가보기도 하였지만 그 녀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파상풍에 걸려 죽은 건 아닌지 그 어미처럼 길에서 차에 치인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 길목 어귀에 개 사료를 그릇에 담아 두기도 해 보았지만 그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 마을을 떠 날 날이 오게 되었다.
떠나기 전 늘 신세를 졌던 슈퍼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할머니께서도 그새 정이 드셨는지 손주 같은 청년이 떠나 아쉽다며 손을 꼭 잡으며 박카스 한 병을 내게 건네었다. 그 녀석이 생각나 할머니께 물으니 할머니께서는 난 어제도 보았는데 하며 대답을 하는 게 아닌가. 뭐지? 난 통 안 보였는데...
"그 녀석 요즘 저기 저 빨간 등대 앞에서 보이던데. 등대 앞에서 바닷가 쪽을 보면서 뭐가 보이는지 짖기도 하고 말이야. 거기 낚시의자 하나 누가 두고 간 거 있지? 가끔 거기에 앉아있기도 하던데."
"낚시의자요? 그 낚시의자 제 건데요. 거기에 가끔 앉아서 있다고요?"
"아 그게 자네 거야? 몰랐네. 어느 날부터 거기에 있더라고."
마지막으로 그 녀석이 있는지 확인해 보려 다시 등대를 찾았다. 빨간 등대 앞 파란 낚시의자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아쉽지만 그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 녀석은 어디 갔을까?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