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섯 살이 된 딸의 말과 행동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딸은 조금씩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자신만의 취향이 생기는 중이다. 인간핑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핑크색이 들어가지 않은 옷과 물건에는 관심이 없으며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샤 스커트를 입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래서 아침이면 취향이 확고한 딸과 등원룩 스타일링 협상을 매일 벌여야 한다. 그런 딸이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다.
딸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친구들이 예쁘다고 해주겠지?'이다. 자신의 눈에 예쁘고 즐기면 좋으련만 친구들의 평가를 기대한다. 자기 딴에는 한껏 꾸미고 갔는데 친구들의 반응이 시원찮으면 아쉬워하고 기분이 다운된다. 벌써부터 남의 눈치를 본다는 사실이 조금은 안쓰럽다. 그럴 때마다 '너는 너라서 그냥 예뻐'라고 이야기 해주면 눈만 동그랗게 뜨고 만족은 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
책 [미움받을 용기]를 보면 인간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 자신을 좋아하게 되고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보통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도움을 준 대상의 피드백을 통해 직접적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느끼는 '타자 공헌감'은 쉽사리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생각보다 평가에 익숙하고 내가 아니라 남에게 칭찬을 받아야만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자신의 느낌과 기준보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해져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으면 무너져 버리곤 한다.
한편으론 누군가의 칭찬과 긍정적 피드백이 인생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웹툰작가 이종범 님은 인터뷰를 통해 만화가로서의 삶을 결정함에 있어 어린 시절 그린 만화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극찬에서 비롯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극찬이 한 인생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 역시 열심히 그린 만화에 대해 누군가가 조롱하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직 탄탄한 자아가 생기지 않은 어린이에게는 지나치기 힘든 피드백일 수도 있다.
나 역시 타인의 평가가 중요한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키, 몸무게 데이터를 통해 우량한지 아닌지를 평가받는 세상이기에 평가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학교에서는 나의 내면보다 성적으로 매겨지는 등수로 평가를 받게 되었고, 회사에서는 얼마나 더 큰 성과를 내는지에 따라 짧게는 매주, 매월 또는 분기, 반기, 연간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한 과정 속에 타인의 평가가 중요한가 중요치 않는가를 크게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그냥 평가는 늘 받는 것이지 그게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요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주부의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동안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물론 나 모르게 누군가는 나를 평가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 스스로의 평가에 무게를 둔 삶을 살아가려 노력 중이다. 그러면서 그동안 안보다 밖의 시선에서 나를 바라봤던 얼룩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계속 입증하려던 나와 남의 평가와 기준에 못 미쳐 나를 힐책하던 나도 기억이 났다. 괜찮은 척하며 꽤나 쓰렸을 고통을 숨긴 채 살아온 나 자신이 안쓰러웠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매일 아침잠에서 깬 딸에게 함께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사랑하는지 진심을 담아 눈과 말로 전달한다. 그럴 때면 잠이 덜 깬 눈으로도 살며시 미소 짓는 딸을 느낀다. 내가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이 칭찬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내가 딸을 통해 느끼는 행복한 감정을 왜곡 없이 솔직하게 자주 전달하는 게 자신을 사랑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 딸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