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The docuphile

by 매버지

아주 오래전 [심플하게 산다]라는 책 제목에 반해 덥석 구매한 책이 지금도 책장에 있다. 여전히 가끔 꺼내 읽기도 하며, 당시에 읽으면서 많이 감탄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4~5년이 지났던 그 시기 나는 누가 봐도 맥시멀리스트였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머리론 이해하나 몸으로는 실천을 못해 여전히 나는 맥시멀리스트다.


최근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보았다. 과거 많은 것을 가지려 했던 두 명의 주인공이 결국 현재 미니멀리스트가 된 과정이 조명된다. 그리고 우리의 소비와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가진 문제점과 미니멀리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풍요와 결핍 사이, 미니멀리즘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물질적 풍요를 경험 못해본 사람들에게
미니멀리즘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아직 많이 가져보지 못한 이들에게 '덜 가져야 행복하다'는 말은 다소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히려 원하는 물건을 갖는 경험 또는 과정 자체가 삶의 원동력이 되고, 그 기대감이 주는 기쁨도 무시할 수 없는 가치다. 실제로 이 다큐 주인공인 현재의 미니멀리스트 2명은 어려운 가정형편을 극복하고, 사회적 성공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축적한 부를 통해 많은 원하는 물건을 마음껏 소비를 해 본 경험이 있다. 그러한 경험이 더 많이 가진다고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해 본다.


처음엔 락밴드 멤버인 줄 알았다.. (출처 : 유튜브 채널 The minimalist)


돌아보면 나 역시 충분히 가진 사람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소비한다. 진짜 필요해서라기보다 순간 마케팅(특가세일, 쿠폰 등)에 혹하거나, 유행이라는 이름의 파도에 휩쓸린다. 이미 옷장과 서랍 안에는 같은 종류의 물건들이 넘쳐나고, 버리거나 기부해야 물건들이 가득하다. 이런 가득 찬 상태의 나는 어떤 결핍을 느껴 자꾸 물건을 사게 되는 것일까? 결국 채워야 할 부분을 채우지 못하고, 이미 채워진 부분들을 더 채우고 있는 건 아닐까?


이미 물질적 풍요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과잉이 오히려 피로가 되고, 그 순간부터 비움이 주는 자유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결국 미니멀리즘은 특정 계층의 특권적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결핍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선택적 채움'이, 풍요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의식적 비움'이 같은 맥락에서 작동한다. 물론 기본 성향 자체가 채움보다 비움을 소유보다 무소유를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세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미니멀리즘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미니멀리즘은 다소 낯선 개념일 수 있다. 산업화와 경제 성장기를 겪으면서 '많이 가지는 것이 성공의 증거'였던 시대를 살았고, 가족을 지키는 자부심이기도 했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소유를 늘려가는 것이 삶의 목표였던 시대였다고 생각된다.


반면 오늘날의 밀레니얼, MZ세대는 꽤 상반된 환경에서 살아간다. 국가적 풍요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성장했고,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더 작고 효율적인 집, 공유 서비스, 디지털 기반의 라이프 스타일에 익숙하다. 그래서 젊은 세대에게 미니멀리즘은 결핍을 참는 절제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롭고 스마트한 삶의 전략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명품 소비와 과시적 소비에 집착하는 모습도 동시에 보여준다. SNS가 개인의 무대가 된 시대에 소유는 단순히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도구(물론 과거에도 그러하였지만 SNS가 더욱 가속화..)로 변했다. 그래서 미니멀리즘이 강조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과 정반대로 위배되는 경향성을 보인다.


어찌 보면 MZ세대의 소비 행태는 많이 가지려고 노력한 과거 세대와는 또 다른 방식의 과잉이다.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더 비싸고 더 특별해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과잉. 그렇기에 MZ세대가 미니멀리즘을 실천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절제라기보다 '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에서 '무엇이 나에게 진짜 의미가 있는가'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전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삶의 주도권 그리고 미니멀리즘

우리는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덜어내고 싶은 욕망을 안고 살아간다. 미니멀리즘은 그 욕망의 균형을 묻는 삶의 태도이다. 꼭 필요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많이 갖는 것과 적게 갖는 것, 그 사이 어디쯤에 당신의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나?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온전히 나만의 기준으로 삶을 고른다면 나의 선택은 무엇일까?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소비의 노예가 아닌, 선택의 주체로 다시 서는 과정이다. 풍요와 결핍 어느 지점에 있든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메인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채널 The minima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