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시대를 알리는 2000년 1월 나는 서울에 상경했다. 당시엔 지금의 서울역 신역사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역에서 내려 맞이한 서울의 첫 느낌은 얼음왕국같이 쌀쌀했다. 지금은 우스운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서울 가면 앉아서 코 베인다'라는 말이 남쪽 촌놈에겐 진실처럼 들리던 시절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수능에 실패한 아들이 고향의 친구들과 어울리다 대학도 못 갈까 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누나에게 보냈다. 그리고 노량진 재수학원을 매일 다녀야 하는 날 배려해 누나와 살 전세 집을 무려 강남에 구해 주셨다. 강남의 아파트라고 하니 대단한 집처럼 보이지만 30년이 훌쩍 넘은 주공 아파트였다. 그곳은 바로 역사의 산물이 되어버린 반포주공 3단지이고, 지금은 무려 3,410세대 총 44동의 반포 자이 아파트가 되었다.
그 시절에도 서울과 지방의 집값 차이는 꽤 났었는데 비싼 전세금에 비해 너무 열악한 아파트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아파트 지하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고, 화단에는 귀여운 쥐와 천적인 길고양이들이 사이좋게 뛰어다니는 아파트였다. 칙칙한 콘크리트빛 외관과 듬성하고 어두운 가로등, 관리되지 않은 놀이터가 여전히 기억에 생생하다. 추운 겨울 방바닥 보일러도 아닌 라디에이터가 딸린 방에서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집의 전세를 추천한 아버지 친구분께서는 아버지께 '그 집을 구매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 제안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결과는 이 글의 마지막에서 확인해 보실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여기저기엔 조합설립과 관련한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고 내가 군에 입대할 2003년 즈음 주택조합이 설립되었다. 이후 사업시행 및 관리처분계획 인허가를 통과하고 2008년 12월부터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2009년의 부동산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과 금융사 연쇄도산, 부실채권으로 인한 글로벌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부동산 경기도 짜게 식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포 자이는 일반분양 평당 가격이 3,200만 원 수준을 보이며 초고가 분양 논란이 일 정도였으니 그 인기는 대단하였다. 용감한 투자자들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고 당시 아파트를 매입한 사람들은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반포자이 35평형 A타입 최근 실거래가 39억 7천만 원, 2024년 7월 기준).
남쪽에서 올라온 촌놈은 반포주공 3단지가 반포자이로 탈바꿈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며 부동산의 강력함(?)을 간접경험하고 호기심과 무서움을 동시에 느꼈다. 부동산과 관련한 신조어 중 하나로 '벼락거지'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소득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음에도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출처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저금리 기조 속 과감한 재테크를 하지 않고 저축만 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거지로 전락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과격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 아파트 무순위 청약만 뜨면 로또라며 몇 백만 명이 청약홈에 몰린다. 얼마 전 동탄역 롯데캐슬 무순위 청약(1가구 모집)에도 무려 300만 명이 청약을 신청했다.
벼락거지가 되기 싫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고, 좀 더 과감한 자들은 코인에 투자를 한다. 지난 월요일(24.8.6) 대한민국은글로벌 경기침체(Recession) 우려로 인한 주가지수 폭락을 경험했다. 하루아침에 투자금을 크게 날린 개미투자자들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만약 여유자금이 아닌 대출을 받아 투자를 하는 것이라면 더욱 고민이 될 것이다. 투자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투자자 본인이 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 이젠 저마다 투자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내 나름의 원칙과 기준에 따라 계획하고 경제를 공부한다면(물론 그럼에도 시장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슈카월드라도 열심히 보자) 고급 찌라시 정보에 부화뇌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2000년대 초반 반포주공 3단지 매입이라는 아버지 친구의 제안을 우리 아버지께서는 받아들이셨을까? 결론은 '땡'이다. 아쉽게도 섬마을에서 태어나 지방광역시에서 한평생 뿌리를 내린 아버지께서는 서울 구축 아파트의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셨다. 그렇게 인생의 기회(?)를 놓치시고 말았지만, 여든을 바라보시는 연세에도 색소폰 동호회에 가입하셔서 열심히 여생을 즐기고 계시는 중이다.
부동산 투자는 관심과 자본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세대에겐 큰 숙제처럼 보여 미리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투기가 아닌 실거주 목적의 부동산 투자를 마음먹었다면 인터넷으로 부동산 가격만 쳐다보지말고 당장 살고 싶은 지역부터 탐방을 해보자. 일명 '임장'을 하다 보면 내 선호지역 시장의 가격과 변동을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다. 머리로 잠깐 기억하고 아는 것과 발품을 팔아 몸으로 느끼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내게 필요한 예산과 그것을 만들기 위한 계획(저축, 투자, 대출 등)을 철저히 세운다.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업데이트 하다보면 분명 기회는 찾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