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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와 계란후라이

by 매버지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혼자셨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아니었다. 오래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두 집 살리머였다. 그리고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본처를 철저히 외면하셨다. 외할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짓을 자행하셨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 덕에 외할머니께서는 서른 즈음부터 홀로 8남매를 키우며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 외할머니께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방과 후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봐주셨다. 그래서인지 뭔가 더 가깝고 애틋한 감정이 있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먹고 사느라 바빠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철들고 나서부터 외할머니를 뵈러 갈 때면 늘 좋아하시던 모나카 과자와 과일 그리고 용돈봉투를 쥐어 드렸다. 웃는 모습이 소녀 같았던 외할머니는 그런 손주의 행동을 예의상으로나마 마다하지 않으셔서 오히려 난 좋았다. 그랬던 분이 얼마 전 중환자실을 다녀오셨고, 어느덧 아흔의 나이를 훌쩍 넘기셨다.


지금의 나를 보면 상상할 수 없겠지만 어린 시절 집안에서 밥을 잘 안 먹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요즘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딸아이가 편식이 심해지고 있다. 한동안 아이와 밥씨름을 하며 점점 울화통이 터지는 요즘이었다. 그러다 문득 외할머니와 있었던 에피소드가 떠 올랐다. 바로 계란후라이와 관련한 것이다.


밥을 잘 안 먹던 나도 유일하게 좋아하는 반찬이 있었는데 바로 계란후라이였다. 지금은 가끔 먹는 반찬이 되었지만 당시엔 하루에 한 번은 꼭 계란후라이를 먹어야 했다. 8남매를 건사하느라 손바느질하고 시장에서 장사하랴 바쁘셨던 외할머니는 요리에는 잼병이셨다. 그래서 계란후라이를 해주실 때마다 노른자를 터트려 딱딱한 완숙으로 해주신 것이다. 유독 계란후라이 노른자에 민감했던 나는 노른자가 적절하게 익은 반숙 계란후라이를 선호했는데 그때마다 외할머니께 온갖 짜증을 부렸다. 고작 10살도 채 되지 않은 손주를 처음에는 너그러이 귀엽게 봐주셨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날이 선 비판을 하는 손주에게 외할머니는 마음이 크게 상하셨나 보다. 그래서 그녀의 셋째 딸에게 '저런 고약한 녀석 더 이상 못 보겠다'며 통보를 하셨고, 한동안 외할머니는 보이지 않으셨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한동안 옆집에 신세를 졌는데(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 3살짜리 아이가 있던 그 집에서 난 꽤 많은 눈치를 본 것 같다. 매일 어머니께 옆집에 가기 싫다고 응석을 부렸고, 결국 외할머니는 다시 나를 봐주셨다. 어린 마음에 다시 돌아온 외할머니가 반갑기도 하고 또 밉기도 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외할머니가 해 주신 계란후라이가 반숙이 되어 내 밥상에 올라온 것이다. 노른자 모양도 동그란 내 취향에 딱 맞는 반숙 계란후라이였다. 나중에 들어 보니 외할머니께서는 댁에서 계란 한 판이 넘게 후라이를 지지며 연습하셨다고 한다. 외할머니께서 대학교 1학년 설에 들려주신 이 고백에 나는 더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계란후라이가 뭐라고.


그 이후로는 외할머니를 뵐 때면 늘 계란후라이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리며 함께 웃었다. 얼마 전 중환자실에서 퇴원하신 외할머니를 뵈러 고향에 내려갔을 때도 귀가 잘 안들리시는 외할머니 귓가에 계란후라이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백발이 성성한 마르고 갈라진 얼굴로 침대에 누워 내게 특유의 소녀 같은 미소를 보이셨다. 손을 꼭 잡고 한 동안 외할머니 곁에 앉아 눈을 바라보다 그녀가 좋아했던 가수 故 현철 님의 '사랑은 나비인가 봐'를 들려주고 싶어졌다. 유튜브를 켜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귓가에 들려 드린 후 집 밖으로 나와 자동차에 올라탔다. 자동차 룸미러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눈과 귀가 가을 홍시마냥 빨개져 있었다.


내게 나비처럼 날아왔다 사랑을 심어놓고 이제 나비처럼 떠나려는 그녀가 또 보고싶다.


"고요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

사랑을 심어놓고 나비처럼 날아 간 사람

내 가슴에 지울 수 없는 그리움 주고 간사람

그리운 내 사연을 뜬 구름아 전해 다오

아아아 아아아아아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 봐"


- 현철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 봐 가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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