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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버지 Oct 17. 2024

모두가 당신을 좋아할 순 없어요

그럴 수도 있지!

  두 번째 직장에서 만난 김 차장님은 온화한 얼굴과 치분한 음색으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드는 분이었다.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투자시장에서 오래 몸 담았음에도 그런 평안함을 유지하시는 게 신기했다. 지금의 나는 당시의 김 차장님 보다 몇 살 더 많은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그와 같은 편안하고 온화한 모습이 생긴 것 같진 않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좋은 사람만 만날 수는 없다. 역시 두 번째 직장이었고 잘 맞지 않았던 사람은 내 사수였다. 나보다 1년 전에 입사한 같은 업무를 맡은 2살 많은 선배였고 직급은 같았다. 함께 하는 업무 중 티가 나고 성과가 드러나는 일은 대부분 본인이 맡았고, 나머지 일을 주로 나에게 배분해 주었다.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이직이 처음이었고 그 회사에 먼저 입사 한 선배였기에 일단 군소리 없이 주는 데로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내게 안 좋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 사람이 나를 여기저기 씹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왜지? 내가 도왔으면 도왔지 특별히 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었는데... 억울했고 화가 났다. 화를 자주 내는 편은 아니지만 아니다 생각되는 일에는 참기 힘든 성격이다. 그래서 퇴근 무렵 그 선배를 회사 1층 커피숍으로 불러내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저에 대해 모함을 하고 다니시는 건가요? 제가 과장님께 무슨 잘못을 한 게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면담요청에 이미 당황하던 기색을 감추지 못했던 그 선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럼 제가 들은 이야기는 다 그분들이 지어낸 말씀이십니까'라며 내가 거세게 말을 이어나가자 그는 오히려 '그들이 누구냐'며 화를 냈다. 나는 그의 그런 태도에 더욱더 화가 났다.


"제가 지금껏 말하지 않았지만 업무를 배분하시면서 티 나고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일들만 주로 해오신 것 다 압니다. 그리고 저에겐 주로 거리가 먼 지방의 출장이나 성과측정이 어려운 일을 시키신 것도요. 저는 경력직으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같은 직급의 과장이지만 회사를 먼저 들어오신 선배님이라 생각하고 참고 일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짓을 뒤에서 하고 계신다는 게 참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가 과장님 같은 인간상을 가장 혐오합니다. 앞으로 제게 또 한 번 이런 이야기가 들려온다면 그땐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평상시와는 다른 나의 완고한 모습에 많이 놀란 눈치였다. 점점 얼굴이 빨개지더니 뭐라고 얼버무리려 하는 그를 노려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나중에 부서의 다른 선배를 통해 들으니 그 해 말 전문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심사를 하는데 나 역시 대상자라 미리 경계를 하려는 행동 같다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던 그 선배는 놀랍게도 어떤 문제로 회사에서 그해 말 퇴사 당했다.) 하고 싶은 말을 다다다 쏟아낸 후 속이 시원할 줄 알았으나 생각보다 찝찝한 기분으로 그날 밤을 보내고 아침에 출근을 했다.


  놀랍게도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능글맞은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순간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뭐지? 수치심이란 걸 모르는 건가? 아니면 진짜 낯짝이 두꺼운 인간인가?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칠 때쯤 온화한 미소의 김 차장님이 '김 과장님, 차 한잔 해요'라며 나를 불러냈다. 지난 금요일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니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시던 김 차장님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다 금세 웃으며 말씀하셨다.


"김 과장님. 많이 속상하셨나 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김 과장님을 좋아할 순 없어요."


  순간 머릿속에 에어컨 바람이 불어와 분노와 짜증이 식는 느낌이 들었다. 그 선배를 향한 화와 미움으로 내 일상을 더욱더 괴롭히려던 찰나였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유를 알기 어렵지만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만나는데 그런 사람들을 향한 화가 결국은 나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는 말이었다. 내게 피해를 준 사람은 멀쩡한데 화가 쌓여 감정이 나를 편안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끄는 건 결국 나만 손해인 것이다.


  김 차장님의 그 말 한마디는 이후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있어 나의 감정 컨트롤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혹시 모르게 내 행동에는 어떤 문제가 없었는지 한 번 돌이켜 보게 되었다. 분명 무언가 그 사람에게 거슬리는 부분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Between stimulus and response, there is a space. In that space lies our freedom and power to choose our response. In that response lies our growth and happiness.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서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힘과 자유가 있다.
그리고 그 반응에 따라 우리의 행복과 성장이 결정된다.


  삶의 여정 중에 다양한 자극을 마주한다. 그 자극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자극에 반응하는 나만 통제할 수 있다.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공간에 존재하는 '나'가 마음에 여유가 있고 받아들일 준비나 정리가 잘 되어 있다면 나에게 이로운 반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개인의 자존감과 많은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반응을 할 것이고, 그 결과로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으며 다시 나의 길을 찾아 떠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수련인이기에 개인적으로 부정적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인데 요즘 아이를 키우며 이 말의 힘을 절실히 느낀다. 육아를 하는 동안 성악설을 믿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으로서 아이의 합리나 이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기적인 말과 행동을 보고 듣다 보면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곤 한다. 그때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 한마디를 속으로 재빨리 뱉으면 생각보다 마음이 많이 가라앉는다. 할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차이를 나 자신의 임상연구를 통해 느끼는 중이다.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 육아 맘빠들이시라면 꼭 해보시길 추천한다.


  두 번째 회사를 떠나고도 여러 회사를 지나오며 아쉽게도 김 차장님 같은 귀인과 연락이 뚝 끊겨 버렸다. 다행히 연락처도 그대로 저장되어 있고 메신저 계정도 그대로이신 듯하다. 이참에 연락을 드려 그때 나를 살린 그 한마디에 대한 감사함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실리는 없겠지만 만약 내 연락을 안 받으시거나 혹시라도 언짢아하신다면?


뭐, 그럴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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