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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

누구라고?

by 매버지

늦게 말이 터진 다섯 살 딸아이의 수다스러움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애기애기하던 시절 그렇게 안 하던 옹알이를 이제야 하는가 싶다. 그러다 보니 요새 아내와 나는 딸에게 질문하는 재미가 생겼다. 보통 하는 질문들은 어린이집에서 생활 또는 생각을 묻는 것이다. 그러던 중 우리를 빵 터지게 한 대답이 있었다.


아내 :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야?"

딸 :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KTS(실제 내 이름)!"


아내는 딸이 자기 이름을 말할 거라 생각했는데 곧바로 의외의 답이 나온 것이다. 놀랍게도 우문현답을 한 것이랄까? 천진난만한 표정과 유쾌한 혀 짧은 발음으로 내 이름을 외치는 것을 보고 아내와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녀석, 참 많이 컸다.


엊그제 그때 했던 대답이 생각나 주어를 바꿔 물어보았다. 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 기대했는데 역시나였다.


나 : "아빠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야?"

딸 : "KMJ(아내 이름)!"


뭘 알고 이러는 것일까 싶지만 또다시 아내와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우리는 그때마다 '아니야, 너를 제일 사랑해'라고 말했지만 딸이 보기엔 그게 아닌가 보다. 아니면 필연적으로 정답을 맞힐 수 있는 유전자가 있던지.


요즘 집에서 생활하며 아이를 돌보다 보니 아내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올해가 벌써 결혼 10주년.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 엊그제 결혼한 거 같고, 얼마 전에 아이를 낳고 기른 거 같은데. 아내와 내가 연애 포함 11년을 알고 함께 살아왔다.


결혼생활이란 게 그렇듯 늘 즐겁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서로 맘에 안 드는 구석을 두고 싸움도 하고 비난도 하며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그렇게 지내왔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추가된 육아 스트레스와 더불어 지친 육신 덕에 누가 더 힘든지를 겨루기도 하였다. 그렇게 함께 10년을 살아냈다.


얼마 전 아내가 나도 잘 몰랐던 나와 결혼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를 툭하고 던진 일이 있었다. 10년 전 지방에서 서울 본사로 발령을 받아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던 아내는 나를 만났다. 그리고 내 사람이라 생각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할 말이 있다며 '나는 아버지가 안 계셔. 몇 해 전 돌아가셨어'라는 말을 처음으로 했다. 난 그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내가 아버지가 되어줄게'라고 말했는데 아내는 그게 고마웠나 보다. 난 그때 그런 말을 먼저 꺼낸 아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배우자로 삼고 싶은 사람의 흠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문득 내가 한 말처럼 아내에게 진짜 아버지처럼 잘 대해주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 평가한 점수는 50점도 안 되는 거 같다. 무엇보다 최근 몇 년 간 아내에게 마음을 많이 써주지 못했다. 우리 삶에 찾아온 아이 그리고 여러 번의 커리어 변화라는 핑계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 버린 게 컸다. 그러다 보니 아내에 대한 고마움은 당연함으로 변질되었고, 여전히 아내를 많이 사랑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표현에 무뎌지는 나를 발견한다.


결혼 10주년과 아내의 사회생활 15주년을 기념하는 여행을 11월에 떠날 예정이다. 이번 여행에는 아내와 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딸이 함께한다. 물론 여행지에서 아이를 챙기느라 고생도 할 테지만 최대한 아내와 손잡고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매년 기념일마다 주겠다고 뻥을 친 편지도 정성스레 적어 전해 볼 테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삶 동안 귀엽고 현명한 딸의 '아빠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대답이 옳았음을 증명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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