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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떠올리며

하늘에서 평안하게 지내고 있기를

by 매버지

사촌동생이 20살 초반 갑작스럽게 병을 진단받았다. 급성 '백혈병'이었다. 하필이면 왜 그 아이에게 그런 병이 찾아왔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역 후 건강한 몸으로 학비를 벌어보겠다며 공장에서 하루 15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그렇게 면역력이 약해질 무렵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던 돌연변이 세포가 증식을 한 것 같다고 작은아버지는 이야기했다.


동생은 아버지의 4번째 동생이었던 작은아버지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나와는 나이차이가 좀 났지만 주말이면 할아버지 댁에서 함께 놀곤 했다. 동생은 할아버지 댁에서 살고 있었는데 작은 엄마와 함께 살고 있지는 않았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동네에서 작은 점포를 하던 작은엄마는 주변에서 돈을 빌린 후 갚지 않고 야반도주를 했다고 한다. 그 후론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맡아 몇 년 동안 돌보아 주셨다. 지금 딸아이와 비슷한 나이였던 사촌동생은 엄마의 사랑이 절대적이었던 어린 시절을 조금은 불우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친동생이 없었던 나였기에 사촌동생에게 연민이 생겨났다. 초등학생이 보기에도 뭔가 의기소침하고 어두웠던 동생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서 주말이면 동생 손을 잡고 시장, 오락실, 놀이터, 뒷 산 등을 함께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형 노릇에 열심히였던 나는 금세 같이 놀아도 재미가 없다고 느꼈는지 조금씩 나 혼자 놀거나 할아버지 동네의 또래 친구들을 찾아 놀기 시작했다. 그러면 항상 주변 구석에 앉아 나를 바라보던 동생이 생각난다.


동생이 자라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집을 나간 작은엄마를 작은아버지께서 찾아냈고, 아이 때문이었는지 두 사람은 함께 살기로 한다. 그리고 작은아버지는 할아버지께 동생을 데리고 작은엄마가 거주하고 있던 인천으로 가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동생은 인천으로 떠나 부모님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가끔 명절이면 만나는 동생은 키가 많이 크고 목소리가 변해서 왔고, 붙임성도 늘고 얼굴도 밝아져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서울에 상경해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즈음 동생은 군에 입대를 했다.


그렇게 바쁘게 살던 나는 부모님을 통해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생의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인천의 한 병원으로 달려갔다. 무균실에서 산소호흡기를 코와 입에 꽂은 채 누워있는 동생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우애가 좋았던 친구들이 서로 앞다투어 병문안을 오고 본인의 조혈모세포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녀석 그동안 참 잘 살아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끔 작은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동생의 안부를 물었지만 특별히 호전되었다는 소식은 없었고 진단받은 지 1년 정도 지난 만 22세의 나이에 사망소식을 전했다.


이후 어머니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천에서의 삶도 그렇게 밝지 않았던 것 같았다. 다시 합친 작은아버지와 작은엄마는 불화가 심했고 이혼만 하지 않았지 이혼한 것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동생의 장례 후 바로 이혼을 한 것을 보면 그 말이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동생이 병석에 있었던 동안 두 사람은 생업도 반쯤 포기한 채 하나뿐인 아들을 살리기 위해 온갖 힘을 썼다. 장례식장에서 본 두 사람의 얼굴엔 짙은 그늘과 몸에는 거죽뿐이 남지 않은 모습이었다. 처음으로 '인생이 참 허망하구나'라고 생각한 일이었다.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해 있다
(상실의 시대 中에서)


고등학생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읽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왜 하필이면 우울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동생에게 이제 성인이 되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도전해 나갈 그에게 그런 일이 찾아왔어야 하는지. 죽음을 죽음 자체로 받아들이기가 힘든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동생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그 후로 한참 동안 동생의 죽음이 내 삶에 떠다녔다.


날씨가 추워질 무렵 이면 하늘로 떠나간 동생이 가끔 생각이 난다. 알 수 없는 슬픔이 묻어나던 어린 시절 그 얼굴, 시원하게 웃지 못하고 수줍음이 많았던 그 모습. 그게 그나마 떠 오르는 동생의 한 장면이다. 뭘 그리 바쁘게 산다고 차로 가면 1시간 남짓인 납골당을 동생이 하늘로 떠난 지 10년도 더 되었는데 한 번도 찾아가 본 적이 없다. 올해가 가기 전 동생에게 꼭 다녀와야겠다. 하늘에서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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