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불러 온 생각 #1
태어나 처음 도착한 이 섬은 흡사 TV에서 본 화성표면 같은 현무암들이 어딜 가나 가득한 곳이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8시간을 날아와 또다시 주내선을 타고 이 섬에 도착하였다. 이번 여행은 3주에 가까운 긴 여행이기에 무려 32인치와 28인치 캐리어 2개, 아이 유모차와 부스터카시트 그리고 배낭을 메고 어렵사리 이곳까지 왔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장거리여행이 달갑지 않다는데 점점 마음에 와닿는다. 영어가 아주 유창한 것도 아니라 영미권 국가에 가면 늘 긴장하게 된다. 그리고 살인적인 이곳 물가와 하필 이런 고환율 타이밍에 여행을 온 건지 참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시작 전 불길한 기운이 찾아왔다.
아내가 해외에서 사용하려 한 카드가 여행 출발하는 날 사라져 버렸다. 집안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 공항 출발 전까지도 찾아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시작부터 뭔가 꼬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에이 이건 액땜한 거야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비행기에 올라탔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 일어날 일의 서막에 불가했다.
비행기 기내와 3군데 공항에서 총 18시간 가까이 시간을 써 도착한 이곳에서 악명 높은 허츠 렌터카를 찾아갔다. 여기 오기 전 가장 저렴한 금액으로 이미 예약을 해 두었고, 이미 골드멤버십에 가입해 둔 상태여서 문제없을 거라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내가 예약한 금액의 3배 가까운 금액을 오버차징한 것을 허츠에서 숙소까지 30분 넘게 달려와 확인한 것이었다. 뭐지? 분명 내가 예약한 금액은 그들이 발행한 렌트 레코드에 추가된 금액이 다 포함된 것이었는데? 일단 예약을 전담했던 허츠 코리아 측 고객센터에 전화했지만 지금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고 업체에 가서 직접 바로 따지고 정정해야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숙소에서 차를 돌려 30분을 타고 허츠 렌터카에 도착했다. 일단 미숙한 영어로 직원에게 설명했고 전산을 확인해 보더니 매니저를 불러 처리를 도와준다고 한다. 매니저가 왔고 나에게 잘못된 처리를 하게 한 장본인이었다. 기분이 나빴지만 일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다렸고 미안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정정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가결제가 된 금액이 있는데 그 금액의 취소는 기다려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략 난감한 게 이게 하루 이틀 사이에 해결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저 이름까지 물어가며 확실한 거냐 안되면 어떻게 할 거냐 등 재차 확인한 후 원래 예약한 금액과 같은 렌트 레코드 용지를 받아왔다.
그럼에도 찜찜한 마음은 같았으나 다시 숙소로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순간! 오 마이 갓! 내 지갑, 여권이 든 파우치를 허츠 사무실에 두고 온 것이다. 정말 살면서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손에 꼽을만한 나인데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아무래도 영어로 그들과 논쟁을 벌여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나가버렸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 허츠 사무실로 차를 돌렸다. 지갑 속 현금과 카드도 문제지만 여권과 국제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정말 큰 일이었다. 우리나라라면 큰 걱정이 없겠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면 찾을 확률이 거의 없기에 더욱 애가 타고 초조했다.
자책하며 도착한 허츠 사무실의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눴던 데스크를 쳐다 보았는데 내 파우치는 보이지 않았다. 절망이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처음 나를 응대한 직원의 자리를 보니 내 파우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 아닌가. 정말 보자마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직원을 보며 내 파우치, 여기 있었네라고 하자. 이게 당신꺼야? 누구껀가 했네! 라며 맞장구를 쳐준다. 그러면서 거의 쓰러질 듯 찾아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짖는 나를 보며 해맑게 그들의 인사말 'Aloha'를 전한다.
'Aloha'는 사랑, 애정, 평화, 연민, 자비를 뜻하는 일반적인 간단한 인사말로 사용하지만 실제 그 의미는 원주민에게는 훨씬 깊다고 한다. 나 역시 알로하를 외치는 그 남자직원의 유쾌한 인사말이 낯선 이 섬에 도착해 2시간 동안 전전긍긍하며 차로 왔다 갔다 한 내게 다르게 다가왔다.
너 고생 많았지? 이젠 즐겨봐!
앞으로 약 3주 간의 긴 여행을 할 예정이다. 여행을 하면서 생긴 일과 들었던 생각을 주제로 몇 편 글을 적어 볼 계획이다. 지금도 리조트 방에서 이 글을 적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노트북을 켜고 주제를 가진 글을 써 보는 건 처음이다. 보통 술을 마시며 TV나 보던 나였는데, 이거 꽤 낭만이 넘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창문을 살짝 열어둔 테라스를 통해 큰 야자수 나뭇잎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비 오는 소리처럼 들리는 이곳은 바로 '하와이'이다. 여러 의미가 있는 이번 여행 마지막 그날까지, Alo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