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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버지 Dec 06. 2024

반장선거의 추억

부정선거?!

  학창 시절 겪었던 억울한 사건이 떠 올랐다. 국민학교 6학년 반장선거 때의 일이다. 국민학교 반장선거가 그렇듯 공약 따윈 중요치 않다. 결국 인기가 당선의 척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날렵한 몸으로 축구도 잘하고, 나름 곱상한 얼굴과 언변으로 남녀 친구들과 지냈던 같다. 원래는 매우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사회화되면서 권력(?)을 잡고 싶었던 것일까? 6학년 1학기 반장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당시 다니던 국민학교는 반에 60명에 달하는 학생들로 채워져 있었고, 많은 학생들을 관리통솔(?) 하기 위해 6명의 리더를 뽑았다. 그리고 투표를 가장 많이 받은 순으로 권력(?)이 배분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나와 1위를 겨룰만한 녀석은 학교 바로 앞 수학학원을 크게 하던 집의 아들이었는데 어머니의 치맛바람이 상당했다. 저학년 때부터 학교에 자주 방문하며 학부모 관련 주요 요직을 겸하신 분이었다. 문제의 시작은 반장선거 당일 아침에 일어난다. 라이벌 친구의 어머니께서 담임선생님을 찾아온 것이다. 이 일은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라 당시 주번이었던 친구가 교무실을 들어갔다가 본 사실을 전달받은 것인데 나는 이후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그게 뭘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선거 전날 여러 번 반장을 했던 누나의 조언을 받은 선거공약문을 열심히 연습한 나는 잠시 웅변학원을 다니며 배운 스킬을 활용해 시원하게 발표를 마쳤다. 생각보다 좋은 호응에 나 역시 자신감이 충만해지고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쓸어내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라이벌 친구의 스피치는 내 기준으로 생각보다 별로였고, 공약으로만 본다면 나의 승리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녀석의 공약 중 풍부한 간식 관련된 부분이 마음에 걸리긴 하였지만 학생들의 자유도를 높일 수 있는 공약을 내건 내가 더 낫다고 자부했다.


  모든 후보자의 스피치가 끝나고 투표가 시작되었다. 긴장감이 돌던 시간이 지나 담임선생님의 주도 하에 3명의 친구들이 접어진 투표용지 한 장 씩 펴 보며 써진 이름을 호명하고 칠판에 바를 정 자를 그렸다. 초반 2위로 출발했던 나는 중반 이후 몰표를 받으며 라이벌 친구를 3표 앞선 채 당선이 되었다. 나를 밀어준 친구들이 환호했고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를 이어가던 중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나서 이야기를 하였다.


이거.. 숫자가 좀 안 맞는 거 같은데, 다시 표결에 부쳐보자.


  급하게 칠판의 수많은 바를 정을 지우며 담임선생님이 이야기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번에는 후보자들이 나와서 직접 표결을 해보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야 뒤탈이 없을 거라 생각하신 것 같다. 나와 라이벌 친구 그리고 몇몇의 친구들이 앞으로 나가 표결을 했는데 결과는 내가 3표 차로 진 것으로 바뀌었다. 순간 정신이 멍해진 나는 표결을 하며 본 어른의 글씨가 생각이 났다. 분명 아이의 글씨가 아닌 어른의 궁서체로 라이벌 친구의 이름이 쓰인 투표용지였다. 갑자기 달라진 결과에 나는 투표결과 2위로 밀려나 버렸고, 나를 응원했던 친구들의 얼굴에 아쉬움과 서운함이 비추어졌다.


  이후 함께 표결을 했던 다른 친구들 중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친구 역시 눈이 휘둥그레지며 자기도 어른 글씨로 적힌 투표용지를 봤다는 것이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며 인생 처음 겪어보는 부정선거에 치가 떨리고 담임선생님에게 분노가 치솟았다. 하지만 당시의 교권은 지금보다 훨씬 강했고 맞벌이를 하시는 바쁜 부모님께 이런 이야기를 드린다는 것조차 뭔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반장에 당선된 라이벌 친구의 어머니는 다음 날 햄버거와 콜라를 한가득 사들고 반에 찾아와 인자한 모습으로 반장에 당선된 라이벌 친구와 함께 나누어 주었다. 


  벌써 30년이 지난 일인데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 걸 보면 어린 내게 상당히 임팩트가 있었나 보다. 물론 모든 것이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와 별개로 사회의 쓰디쓴 현실을 먼저 배우게 된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이야 거의 없겠지만 당시는 국민학교 선생님께 촌지를 드리는 문화는 너무나 당연한 시절이었다. 그로 인한 차별도 이루어지는 그런 시대(물론 절대 그렇지 않으셨던 선생님도 계셨을 것이다). 그때 당시 대한민국은 이경규 아저씨가 횡단보도 앞 자동차 정지선을 주행하던 차들이 모두 넘지 않으면 짠하고 나타나 축하하고 양심 냉장고 주던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양심이 냉장고 한대로 채워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예능에서 사람들에게 양심의 중요성을 콘텐츠화할 만큼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다 느꼈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때와 요즘을 비교해 보면 크게 바뀐 것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저런 소소한 불법(?) 보다 대범하고 원대한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이 훨씬 늘어났다. 어린아이들 역시 자본주의에서 부모와 조부모의 경제력이 자신들의 힘이자 권력이라는 것을 더욱더 경험하고 사는 세상이다. 나라가 더 잘살게 되면 부패가 줄어들고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 더 많은 권력자들이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나라의 통수권자까지도 국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세상인데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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