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기자 Mar 29. 2018

스칸디나비안 가구의 비밀

일상 속 인테리어 관찰기

*아래 글은 인테리어/건축/디자인 알못인 비전문가의 사견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국내에 북유럽 인테리어/디자인 붐이 일었는데 나도 그 심플함에 반한 추종자 중 한 사람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가구라기 보단 예술품 같다)이 아닌, 그간 일상 속에서 직접 보고 겪은 북유럽 인테리어에 대한 개인적이고 단편적인 인상 평을 적어 보려고 한다.








빌트인(Built-In): 평면으로의 고집, 돌출을 용납하지 않는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인 듯하다. 불필요한 공간의 낭비라고 생각하는 건지 돌출부를 최소화하고 '튀는' 요소를 과감히 배제시킨 모습이 외국인 입장에선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마치 물상화된 형태의 '얀테의 법칙'을 보는 기분이다.


좌)기숙사 엘리베이터인데 층간 스위치가 벽에 일체형으로 붙어 있다. 우측 사진 2개)기숙사 내 방의 선반. 벽 하단 틀에 맞춰 선반 아래가 움푹 패여 있어 공간이 뜨지 않는다.




"꼭꼭 숨어라"... 타고난 익명성


최대한 정보를 은폐하려고 한 듯한 구성도 인상적이었는데 거리 곳곳이 형형색색 튀려고 하는 간판으로 가득한 한국에서 와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아래 사진은 기숙사 복도와 현관문인데, 복도는 특유의 데칼코마니 같은 통일성과 대칭성이 두드러진다. 매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길 기다리면서 저 복도를 보고 있자면 편집증 쩌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자주 등장하는 '소실점' Scene이 연상될 때가 많다. 명도가 낮은 오렌지색 조명까지 곁들여져 분위기도 다소 음침하다. 때문에 지인들을 집에 초대할 때마다 이 쥐 죽은 듯한 복도를 걸으면서 "여기가 바로 내가 사는 정신병동"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자폐증스러운 인테리어가 싫지만은 않다. 신경을 긁을 자극이 없는 환경이 공부만 하기엔 차라리 편안하기 때문이다.


방 호수도 (아래 우측 사진 2장에서 보듯) 현관문 귀퉁이 꼭대기에 쪼그맣게 적혀 있다. 처음 도착했을 땐 내 방 호수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눈이 나쁘면 제 방도 못 찾아가는 구조다. 예상했겠지만 초인종은 없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두드려야만' 바깥에 있는 방문자의 존재를 알릴 수 있다. 그러면 저 사진 속 현관문 중앙에 찍힌 작은 구멍을 통해 집주인이 확인을 하고 문을 열어준다. 그런데 그나마도 문 안쪽에 구멍을 가릴 수 있는 덮개가 달려 있다. 사생활은 확실히 보호받는 구조다.


헬싱보리 도서관의 화장실. 마치 '보호색'을 입은 듯 벽과 동일한 소재인 데다 빌트인된 탓에 처음엔 찾기가 힘들었다.


여담이지만 이곳 사람들 성격이 low-key 한 측면이 강해서 옆집 사람들끼리도 마주치길 꺼려한다는 농담을 스웨덴에 오기 전에 듣고 웃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실제로 집에 초대한 스웨디쉬 한 명이 현관문을 열기 전에 복도에 인기척이 들리자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문고리를 잡은 채 기다리는 걸 본 뒤론 더 이상 그 농담에 웃지 않게 됐다.




아동, 장애인, 유모차, 노약자 등 소수자 이동권 보장


지금은 눈에 익어 당연지사처럼 느껴지지만 스웨덴에 갓 도착했을 때 가장 감동받았던 부분 중 하나다. 보통 한국에는 공립도서관이나 구청 같은 공공시설 외엔 소수자 이동권을 배려하는 시설을 갖춘 곳이 드물고, 있다고 해도 실용성이 떨어져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는 반면 스웨덴은 개인 기숙사, 학교, SFI 건물, 화장품 숍, 약국 등 공기관, 사적 건물 할 것 없이 성인 허리 높이에 문을 자동으로 개폐할 수 있는 스위치가 달려 있었다. 벽 하단 스위치를 누르면 문이 자동으로 '튕기듯' 열린다. 열린 문은 1분 정도 열린 채 유지된다.



왼쪽부터) 벽 하단 스위치를 누르면 가운데 사진처럼 문이 자동으로 '튕기듯' 열린다. 열린 문은 1분 정도 열린 채 유지된다.


생각해보니 이런 시설이 보편화된 까닭에는 이동권 보호도 있겠지만, 추운 날씨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외부 냉기를 차단하기 위해 문이 두껍고 견고해질 수밖에 없고 그 때문인지 기본적으로 경첩이 3개씩 달려 있다. 실용적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수동으로 문을 열 경우, 무겁고 뻑뻑해서 열기도 힘들지만 문 무게 때문에 쉽게 닫히지도 않는다. 두 손 가득 짐이 많을 때는 문이 고정된 채로 열려 있어 오가기가 되레 편하다. 출입문뿐만 아니라 기숙사의 붙박이장 문에도 스프링 장치가 달려서 한번 열리면 시간 간격을 두고 천천히, 조용하게 닫혀서 편리하기도 하고 덕분에 생활소음도 줄어 좋았다. 소소하지만 나름의 지혜가 여기저기 숨어 있는 듯하다.


스웨덴에 갓 도착했을 때 헬스장인 줄 알고 한 고등학교 건물에 실수로 들어갔다가 나올 때 문이 무거워서 열 질 못해 진땀을 뺀 적이 있다. Gymnasium이라고 적힌 문패를 보고 Gym으로 착각한 게 화근이었다. 내 꼴을 보고 있던 한 교사가 "더 힘껏 열라"면서 "그게 운동이네! (That is 'Gym')"라고 재치 있게 말했는데 나도 어이가 없어서 웃고 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도 웃었던 게 생각난다. 요즈음도 가끔 뒤에 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고 기다릴 때 "이거 무겁다"며 상대에게 농담을 건네곤 한다.



흑백과 그레이: 모노톤의 조화


주로 흰색이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것 같다. 아래 사진 3장은 내 기숙사 방의 가구와 기숙사 건물의 중앙 계단이다. 그 아래 사진 2장은 각각 헬싱보리 기차역 건물 외관과 SFI 건물 내부 모습이다. 보다시피 주로 블랙&화이트, 아니면 그 중간 어드메에 위치한 회색 톤이 자주 사용된다.





부착형 가구: 공간 낭비 최소화와 일체감 추구


기본 취지는 위의 '빌트인'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 경우는 어느 정도 돌출부는 허용하되 두 가지 기능의 가구가 합체된 형태다. 아래 사진처럼 1) 우산꽂이와 벽이 일체화되거나, 2) 스탠드와 책상이 합체되는 식이다. 특히 2번은 기숙사, 도서관, 학교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정말 흔한 케이스다.



위 사진 2장은 콘센트와 조명이 콜라보를 이룬 사례다(헬싱보리 공립도서관). 별 것 아니지만 아이디어가 좋아서 인상적이었다. 줄을 천정이나 조명에 달아 바닥에 잡다하게 엉킨 선들이 없어 한결 깔끔해 보인다. 공공시설에서 여러 명이 콘센트를 이용할 때 여러 방향에서 접근이 가능해 실용적이기도 했다.



조명으로 구현되는 색의 세계


여러 매체에서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라 설명이 불필요할 듯하다. 기본적으로 가구 색감은 모노톤으로 절제하되 색조는 조명으로 표현하려는 듯한 인상이 강했다.




유리로 된 천장과 벽. 비대해진 유리창


겨울이면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하루 6시간이 고작이다 보니 일조량을 늘리려는 몸부림 중 하나로 보인다. 심지어는 동네 카페만 가도 유리창 크기가 널찍하고 사계절 내내 커튼 구경하기 힘든 경우가 태반이었다.



헬싱보리 해변가에 위치한 부촌 빌라들. 사생활 침해가 우려될 정도로 벽면이 통째로 유리인 건물이 흔하다.




미니멀리즘


아래 오른쪽 사진은 스코네 지역을 오가는 열차 내부 공간인데 처음엔 좌석 등받이에 달린 비닐봉지가 (기내 좌석에 배치되는 토종이 처럼) 구토할 때 대비하기 위한 용도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쓰레기통이었다. 공간 차지하고 미관 해치는 쓰레기통 대신 실용적으로 비닐봉지를 달았다.





반개방형 계단,  일명 '시스루' 계단


이런 형태의 밑이 훤히 들여다 뵈는 계단이 처음엔 익숙지 않아서 현기증을 느꼈다. 자원을 아끼려는 목적인지 단순 디자인 때문인지 아직 취지를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인테리어 중 하나다.











빌트인된 걸 확인할 수 있는 기숙사가 있는 건물(가운데 회색)과 주변 건물동 외관. 1층엔 미용실, 커리 음식점이 입점한 나름 주상복합(?)단지다.


프랙털 구조의 반복이 주는 일체감과 안정감


자를 대고 머리를 자른 듯한 올곧음, 규격화와 반복성도 건물 외관을 관찰할 때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었다. 마치 '오베라는 남자' 같은 스웨덴 소설 속에 나올 법한 2:8 가르마를 고수하는 결벽증이 있는 남자 캐릭터를 보는 느낌이다.


누군가에겐 이런 정갈함이 답답하거나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반면 평소 전자 제품도 흰색 혹은 검은색만 고집하고 미약한 강박증세가 있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환경이 되레 편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완고한 형식주의 이면에 번뜩이는 기지와 디테일이 엿보이는 '배려 돋는' 북유럽식 인테리어가, 아직도 여전히 맘에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