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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기자 Nov 17. 2017

밥은 먹고 다니냐?

'유학생을 위한 집밥' 톺아 보기

먼 옛날. 학번도 기억 안 날 정도로 까마득한 그 시절 대학생이었던 나는 '미각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식도락과 무관한 삶을 살았다. 아침 겸 점심으로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저녁으론 어제 남긴 피자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울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살다 보니 자연 혀가 퇴화하면서 음식 맛이란 걸 모르게 됐고 친구들 사이에선 내 쓰레기 같은 입맛이 단골 놀림거리가 됐다. 입맛보다 더 심각했던 건 체력 저하였다. 젊었을 때야 혈기로 어떻게든 견뎠는데.. 밥심이 거덜 난 저질체력은 일을 시작하면서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아침에 취재를 시작해 낮 2시쯤 되면 벌써 토할 것처럼 어지러웠고 숨이 가팠다. 너무 방전될 때는 운전석에서 30분 정도 잠을 자줘야 간신히 기운을 되찾았는데 몇 번인가 구청 직원 분이 차창 너머로 뚫어져라 자는 사람을 응시하시곤 했다. 당시 겨울철 차량 내 연탄불 자살, 변사사건이 잦아서 걱정되서 그러셨다고. 여하튼 그 뒤로 하루에 삼시 세 끼를 다 먹었더니 그제야 체력이 돌아왔고 건강을 회복했다. 그 뒤로 밥심의 위력을 깨달은 난 가능한 끼니를 거르지 않고 집에서 해 먹으려고 애썼다. 유학을 결심하는 순간에도 내 건강을 위해, 비싼 돈 주고 외식하지 않기 위해 겸사겸사 집밥을 꼭 만들어 먹으리라고 굳게 다짐했다.


(*아래 글은 스웨덴 남부 헬싱보리 동네를 기준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단 이 동네에서 식재료는 저렴한 순으로 1) 일일장 2) Alfo 3) ICA Kvantum에서 구할 수 있다.



1. 동네 일일장


학교 캠퍼스와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동네 광장에 매일 오전 11시~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주로 무슬림들이 운영하는 가판대에서 파인애플, 바나나 같은 과일부터 브로콜리, 양파, 적양파, 양송이버섯, 상추, 양상추, 오이, 가지, 마늘, 대파 같은 채소를 판다. 질도 좋고 신선한 편이고 가격이 ICA나 Alfo 같은 마트보다 현저하게 싸다. 한국 마트에서 구입했을 때 1만 원 정도라면 여기서 웬만한 식재료를 구입하면 3천~4천 원이 들기 때문에 채소과일류는 무조건 여기에서 구입한다. 특히 한국에선 비싼 양송이버섯을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서 좋다.


헬싱보리 Gustav Adolfs 교회 바로 옆 광장에 서는 일일장.


단, 전자제품이나 옷, 머리핀, 액세서리도 판매하는 코너도 있긴 한데 전자제품의 경우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조심할 필요가 있다. 전기포트 주전자가 필요해서 저 중 한 가게에서 구입을 했는데 고장 난 상품이라 다음날 교환하러 갔더니 가격을 깎아서 환불을 해주셨다. 만에 하나 구입하더라도 당일 바로 가동해보고 상태가 이상하면 바로 달려가서 대응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이렇게 미리 씻은 상추와 토마토, 양송이버섯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아침 수업을 듣기 전 치즈와 옥수수, 매실청, 올리브유를 곁들여 먹으면 좋다. 귀찮으면 마트에 파는 콘푸레이크 류에 우유, 요구르트나 프로틴 제품을 넣어 먹어도 된다. Alfo Gross의 견과류 코너에서 땅콩 등을 사서 같이 뿌려 먹어도 좋다.



매일 해 먹는 게 귀찮아서 절임류 채소를 만들었는데 일단 식으면 나물은 맛이 없다. 그리고 스웨덴에 와서 웬만한 재료는 다 찾기 쉬운데 나물류(고사리, 콩나물, 도라지 등)는 참 찾기가 어려웠다. 시금치인 줄 알고 집에 와서 무쳐 먹으려 했더니 알고 보니 샹차이라.. 결국 저 나물은 먹다 포기하고 버렸다. (유학을 오시는 분들은 건나물을 짐으로 부치세요. 무게도 안 나가서 많이 넣을 수 있습니다)



밥솥은 한국서 쓰던 구식 제품이 있어서 짐으로 부쳤는데 주변에 보니 온라인으로 구입을 많이 하시는 듯하다.

ICA나 Alfo 같은 매장에는 rice cooker를 팔지 않았다. 주변 중고가게(Second shop)에도 못 본 걸 보면 밥솥은 가져오거나 온라인으로 사들이는 게 좋은 것 같다.




2. 알포 (Alfo Gross)


헬싱보리 광장 옆 무슬림 대형마트 Alfo Gross.


일일장이 서는 광장 바로 옆에 알포라는 무슬림들이 운영하는 대형마트가 보인다. 그래서 일일장에서 밑반찬 채소를 사고 가공식품은 알포에서 구입하면 되기 때문에 장보기가 편하다. 알포의 장점은 ICA보다 가격이 현저하게 저렴하다는 것. 할인가에 구입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육류나 빵 같은 물건은 품질이 ICA보다는 떨어지는 것 같았다. 대신 과자나 아이스크림, 쌀, 생리대, 화장실 청소용품, 방향제, 수세미, 일회용 장갑, 세제, 화장용 솜 같은 자잘한 물품들을 헐값에 팔고  ICA보다 물품 종류가 다양할 때가 많다. 다이소 같은 느낌.

 



한국에서도 파는 커피믹스(커피, 프리마, 설탕이 한 봉지에 담긴)도 판매한다. 단 양이 많아서 3등분으로 나눠 쓴다. 그 외 무슬림 마트답게 각종 차(터키 차, 재스민차,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포함 홍차, 말차, 과일차)를 파는 코너가 풍성한 것도 장점이다. 밑에 사진처럼 참치 통조림도 팔기 때문에 김장만 담근 뒤 다 먹고 남은 재료를 냄비에 넣고 저기 통조림을 하나 까서 넣으면 김치찌개가 완성된다. 알포에는 치즈 코너도 풍성한데, 제법 먹어보니 질 좋고 양도 많았다. 청어를 각종 양념에 담아 절여 내놓은 유리병은 크기가 작고 비쌌는데 이건 ICA가 더 저렴했던 것 같다. 요새 크리스마스를 앞둔 연말이라 ICA가 세일에 들어가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케바케.



그리고 무슬림 마트이기 때문에 술을 안 판다는 단점이 있는 대신 갖가지 아랍, 동양 식재료를 구할 수 있다. 후추나 카레(한국에서 카레를 사 왔는데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 이 일대 인도아랍계 이민자들이 많아서 양질의 본토 카레 식재료가 넘쳐난다) 종류만 해도 벽 하나를 차지할 정도고, 코코넛 오일, 기코만 간장, 타코 양념, 태국요리 향신료, 중식용 굴소스, 마살라 카레도 판다.


무슬림 마트 Alfo에서  건져올린 건나물로 만든 아욱국.


생일을 앞둔 어느 날인가, Alfo에 미역을 찾으러 갔는데(결국 못 찾았다) 박스에 담긴 말린 나물류가 그럴듯해 보여서 얼른 구글 사전을 검색해보니 '아욱국'에 쓰이는 아욱이란 단어가 나왔다. 당장 득템해서 물에 불려서 그 즉시 아욱국을 생일상에 올려 먹었다.



이건.. 나름 흑역사인데 알포의 육고기 냉동 코너에서 가장 싼 가격의 닭고기가 있길래 무턱대고 구입했다. 겉포장에 '덴마크서 온 키클링(치킨) 뭐시기'라고 적혀 있었는데 매번 사전 찾기도 귀찮아서 그냥 사들고 갔다. 왠지 느낌이 싸했는데 요리를 하다 보니 익숙한 냄새와 친근한 느낌의 요리가 완성됐다. 그렇다. '닭똥집' 요리.

한국에서도 안 먹던 술안주를...  그런데 가격이 저렴한 데다 단백질 함량이 많다고 들어서 그 뒤로 한번 더 해 먹었다. 다음에는 질려서 두 번째로 싼 제품(위 사진 오른쪽, 잘 보면 프로틴 함량이 많다고 적혀 있다)을 골랐는데, 이것도 느낌이 싸했는데 굽다 보니 너무 역한 냄새가 나길래 부랴부랴 사전을 찾으니 '닭 염통'이었다.



피부가 상해서 단백질 보충제로 어쩔 수 없이 먹었을 뿐, 다신 먹고 싶지 않은 요리다.



광장 근처에는 이슬람 거리를 연상케 할 만큼 중동 식자재 업소나 레스토랑이 많다. 이민자들이 많아진 스웨덴에서 유명해진 케밥 피자(위 사진 오른쪽)도 그중 하나다. Alfo의 간이식당에서도 팔라펠(Falafel) 같은 중동식 샌드위치를 판다. 가격은 8천 원 정도로 싼 편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론 고기만 있는 케밥 피자보다 호무스와 피클 등 야채를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팔라펠이 더 맛이 좋았다.



Alfo의 장점 중 또 하나는 호무스(Hommus) 를 맘껏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드 '미란다'에서였나, 남자 옷깃에 호무스가 묻어서 부인이 타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찌나 먹고 싶던지. 위 사진은 친구 집에 갔을 때 대접 받은 호무스 였는데 저 흰 콩을 갈아서 만든 뿌연 것이 콩 아래로 보이는 희고 걸쭉하고 부드러운 호무스다. 그 위에 오일까지 얹힌 뒤 별로 맵진 않고 쌉싸름한 붉은색 향신료를 뿌리면 요리가 완성된다. 아래 사진은 또 다른 종류의 호무스인데 이름이 어려워서 잊어버렸다. 둘 다 부드러운 맛이지만 미묘하게 한쪽은 더 담백하고 다른 하나는 더 달콤 고소했다. 알포에서 통조림에 호무스뿐만 아니라 종이처럼 납작한 아랍식 빵도 구입 가능한데, 빵에 호무스를 찍어 먹으면 된다. 꿀맛이다.





3. ICA Kvantum


구스타프 아돌프 성당 바로 맞은편에 있는 이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스웨덴에 있는 가게 치고는 꽤 늦은 시간까지 운영한다.



알포에서도 태국식 국수, 중국식 라면을 팔지만 ICA에 오면 한국의 삼양라면을 구할 수 있다. 크기는 아래에서 보듯이 작은 편이다. 내 손이 작아서 비교용으로 옆에 둔 마우스 크기가 일반 마우스보다 몇 cm 작은 편인데 라면 크기도 그 정도로 작다. 처음 스웨덴에 왔을 때 저 분량으론 간에 기별도 안 갈까 봐 두 개를 넣고 끓였다가 배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일인용 사리가 작아 보여도 물에 들어가면 퍼지고 불어난다. 저 안에 동봉된 라면수프는 '한국의 그 맛'이 아니다. 철저히 현지화된 달다구리 한 스프라 그냥 통에 따로 넣어놓고 사리만 쓰는 편이다. 모아둔 수프는 따로 쓸 데가 있길 바라며. 그리고 한국서 가져온 라면수프(개인 취향마다 다른데 내 경우는 스낵면 수프를 챙겨 왔다)를 대신 풀어 먹으면 영락없는 한국서 먹던 라면 맛이다. 스트레스받을 땐 신라면 수프처럼 매운맛을 풀어 먹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한국 온라인 매장에서 진라면인가? 라면수프만 대용량으로 팔기도 하던데 그렇게까지 사 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평소 한국에서도 수프 하나를 다 사용하진 않고 나눠서 쓰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남긴 수프들을 가져왔고 지금도 나눠 사용하니 충분한 것 같다.


비 오는 날, 스트레스 받은 날 먹으면 모든 피로가 다 풀리는 라면.




ICA에는 삼겹살도 판다. 가격이 꽤 센 편이긴 하지만 가끔 먹어준다. 한국에서 가져온 쌈장을 곁들여.

고추장도 웬만하면 챙겨 오는 게 좋을 듯하다. 아래 사진의 국처럼, 감자, 당근, 양파 등 현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털어 넣고 고추장만 조금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 맛있는 고추장 감자찌개가 완성된다.



ICA와 Alfo 모두 스파게티용, 라쟈냐용 갖가지 파스타와 토마토, 크림소스를 판다. 만들기 쉬운 요리 중 하나. 소스 넣고 삶긴 면 넣고 양파, 마늘과 볶다가 토마토를 넣어주고 마지막으로 시판되는 깍뚝썰기(?)를 한 치즈를 올려 먹으면 된다. 라쟈냐가 너무 먹고 싶던데 오븐이 있어도 쓰기가 귀찮아 차일피일 미루던 참이었다. 그런데 븐이나 전자레인지 없이도 만드는 법이 있다고 들어서 유튜브나 페북에서 참고할 생각이다.



그래도 요리가 귀찮을 땐 그냥 프라이팬에 토마토, 버섯, 양파를 구워만 먹어도 맛있다.



조금 지겨워지면 한국에서 가져온 짜장 소스를 풀어서 당근, 감자, 버섯, 옥수수를 넣고 볶아 먹어도 된다.



슬슬 아침을 챙겨 먹기 귀찮아지면 이런 콘푸레이크 류에 눈이 돌아간다. 설탕이 아예 없는 곡물류도 먹어봤는데 너무 심심해서 요구르트나 아래 사진에서 보듯 프로틴 류를 섞어 먹으니 맛있었다. 스웨덴 친구들은 저런 프로틴을 운동을 하고 난 전후에 많이들 먹던데 궁금해서 맛을 보니 달짝지근한 요구르트 맛에 가까웠다. 요구르트보단 덜 되직하고 건더기는 없는 맛이다. 초콜릿 맛부터, 라임, 딸기 맛까지 다양했다. 저설탕이라는데 실제로 맛은 달콤한 걸 보면 설탕 대신 대체 당을 첨가했다는 건지, 설탕을 대체할 만큼 양질의 당인지 아직은 확인을 못 했다. 꺼림칙하여서 잘 안 먹고 있다. 실제로 단백질 보충을 해주는 지도 잘 모르겠고.



장 보러 갈 땐 비닐 준비, 다 쓴 비닐을 모아 두기


이카나 알포 할 것 없이 계산대는 늘 붐빈다. 일처리 속도는 늦고 사람들은 많고 계산대 수는 한계가 있기 때문. 그래서 계산대 옆 셀프 결제기기를 사용하는 편이다. 바코드 기기로 바코드를 찍고 카드 결제를 한 뒤 영수증이 출력되면 출입구에 영수증의 바코드를 찍고 나가면 된다. 장 보러 갈 땐 배낭이나 쇼핑백을 들고 가는 게 좋다. ICA나 Alfo에서 비닐봉지를 사려면 돈을 따로 내야 하지만 일일장터나 무슬림들이 운영하는 소형 골목가게는 비닐포장을 해주는데 돈을 따로 청구하지 않는다. 이렇게 무료로 모은 비닐을 차곡차곡 보관해 뒀다가 음식물 쓰레기나 일반쓰레기를 버리는 용도로 사용하면 된다.




제일 요리하기 싫을 때 먹는 간편식이다. 기름을 두르고 양파, 토마토 등 재료를 한꺼번에 익히고 후추만 뿌려주면 끝.



간혹 가다 ICA나 Alfo에서 청어 절임을 곁들여 먹는다. 겨자 소스나 각종 식초 소스로 절여서 병에 포장된 제품을 판매하는데 개인적으로 한두 번은 맛있지만 양념이 너무 강하고 설탕 소금이 과하게 들어가서 건강에는 별로 좋지 않을 듯하다.



훈제 연어도 따로 포장해서 마트에서 파는데 가격이 꽤 비싸다. 가끔 ICA에서 세일할 때 사 먹으면 별미다.



한식이 그리울 때면 룬드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다른 학생 분들과 명절 요리를 해서 나눠 먹는다. 진심 행복했던 한때.



드디어 참다못해 유학 온 지 석 달만에 생애 첫 김장을 했다. 배추김치 한 포기면 한 달 반(매일 먹었습니다)은 가는 것 같다. 일일장터에서 산 배추 한 포기를, Alfo에서 산 굵은소금에 절여 반나절 넘게 재워두고, 양파, 마늘, 대파, 채썰기 한 무, 한국서 가져온 새우젓과 고춧가루, 전분 대신 짓이긴 밥풀을 넣고 섞어서 양념을 준비해 둔다. 적당히 숨이 죽은 김치를 꺼내서 (소금을 적게 썼고 까나리액젓이 없어서 싱거운 편이었기 때문에 김치를 물에 헹구는 과정을 생략했다) 바로 양념과 섞는다. 김장할 통이 없어서 배추를 잘게 자른 뒤 양념을 섞는, 막김치에 가까운 김장(?)을 했다. 이렇게 금방 만들면 비슷한 맛은 나지만 숙성이 안 돼 맛이 없다. 하루 꼬박 상온에 둔 뒤 다음날 수업을 다녀와서 냉장고에 넣었더니 다음날 적당히 발효가 돼 상큼하고 시원한 그 김치 특유의 풍미가 났다. 방 안엔 온통 새우젓 냄새가 가득하고 전날 마늘을 까면서 손에 냄새가 배이는 바람에 향수를 엄청 뿌리고서 수업을 들으러 갔다. 일회용 장갑이 필수일 듯하다.



김장은 한꺼번에 많이 해서 주변에 선물


사실 스웨덴에 온 뒤로 의식적으로 마늘을 안 먹고 수업이 있는 날엔 양파도 안 먹었다. 냄새가 날까 봐 걱정해서였는데 그렇게 석 달을 김치를 안 먹고 견디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석 달만에 먹은 김치는 천상의 맛이었는데 혀가 그 새 현지 음식에 적응을 했는지 심심하게 간을 했는데도 일주일간은 혓바닥이 따끔거릴 정도로 매웠다. 그런데 최근 알게 된 건 외국인 친구들 중에는 의외로 김치 마니아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 보이고 싶거나, 평소 신세를 갚고 싶거나,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한 번 김장을 할 때 많이 했다가 따로 통에 담가서 "자, 이거" 하면서 김치를 선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먹고 남은 김치 잔반은 버리지 말고 참치캔을 투입, 한 번 더 끓이면 김치찌개가 완성. 버릴 것이 없어 좋다.



다 쓴 통은 버리지 말고 반찬통으로 활용


락앤락은 가져올 필요도 살 필요도 없다.  Alfo에서 산 옥수수병은 옥수수를 다 먹으면 김장통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ICA의 반투명 아이스크림 통도 내용물을 다 먹은 뒤 반찬통으로 요긴하게 쓰인다. 위 사진 왼쪽의 작은 유리병은 파프리카 으깬 것에 치즈를 넣은 양념인데 샐러드나 각종 요리에 곁들여 먹기 좋다. 알포나 인근 무슬림 가게에서 많이들 파는데 아랍 음식은 아닌 것 같았다. 치즈가 들어있지 않은 파프리카 으깬 것만 팔기도 하는데 치즈가 들어간 것이 더 풍미가 부드럽다.



일타 이피,  재료 하나로 두 요리 만들기


Alfo에서 파는 유리통에 담긴 깐 옥수수는 품질이 복불복이다. 8월에 샀던 옥수수는 9월까지 싱싱하게 오래갔는데 11월에 산 것은 꾸덕꾸덕 굳어지며 변형되는 낌새를 보여서 옥미탕을 해 먹기로 했다.  요새는 요리 잘하는 블로거들이 너무 많아서 참고하기 좋다. 단 월계수 잎, 노계.. 이런 식의 전문가스러운 식재료는 유학생 신분에 구할 수도 없고 구할 시간도 없으니 없으면 안 될, 가장 기본적인 재료만 챙기고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옥수수가 유통기한이 다 됐으면 썩기 전에 옥미탕을 만들어야 하는데 옥미탕의 밑재료는 치킨스톡과 옥수수다. 마트에서 닭을 사 와서 냄비에 넣고 육수를 뺀 다음 익은 닭은 찢어서 프라이팬에 간장을 치고 파프리카와 양파를 넣어서 조림을 만들고, 닭이 목욕을 한 물(?)인 천연 치킨스톡에는 변질되기 직전의 옥수수를 넣고 마늘, 파 등등을 썰어 넣는 식이다.



요리가 얼추 다 됐으면 프라이팬에 닭이 식을 때까지 리딩을 한다. 반드시 다 식은 뒤 잔반통에 넣어야 플라스틱 통이 변형이 안 된다. 웬만하면 환경호르몬 안 나오는 유리통을 쓰고 싶지만 귀찮다.




4. 아시안 마트


헬싱보리 중앙역 옆에 중국인이 운영하는 아시안 마트가 하나 있고 건너편에도 베트남인이 운영하는 아시안 마트가 있다. 개인적으론 중국인이 운영하는 업소가 더 크고 한식 재료가 많았던 것 같다. 만두, 양파링, 당면, 국수, 떡국용 떡, 빼빼로, 김장재료뿐만 아니라 태국, 베트남 음식재료도 팔고 있었다. 일전에 한국 떡에 열광하는 떡 마니아인 스웨덴인 V양의 말을 듣기로는, 헬싱보리 공공도서관 건너편에도 새로운 아시안 마트가 생겼다고 한다. 거긴 떡을 판다고 하니 떡 성애자라면 필히 방문해봄직 하겠다.


헬싱보리 중앙역 인근 중국인이 운영하는 아시안 마트
헬싱보리 시립도서관 인근에 들어선 신설 아시안푸드 마켓


헬싱보리  도서관 근처에 새로 개업한 아시안마켓 '여의'는 중앙역 근처 아시안마켓 2곳보다 규모가 큰 편이다. 일단 들어가면 아래 사진처럼 냉동식품 코너와 나물채소 냉동칸이 좌우로 나뉘어 있다.


죽순, 새우, 팽이버섯, 가재, 심지어 아래  사진처럼 중국서 들여온 닭발 69Kr도 팔고 있었다. 닭발 옆으로 떡 29Kr이 보인다. 마늘의 경우, ICA나 일일장터, 아시안마켓에서는 다듬지 않고 통째로 팔지만 Alfo의 경우 깐마늘을 대용량으로 진공포장해 파는데 편리한 대신 수작업이 포함되선지 비쌌다.

냉동코너에 오면 한식 재료보다 슈마이 (89~105Kr)나 완탕용 만두(86Kr), 채소만두(38Kr)에 눈이 돌아간다. 중앙역 근처 아시안 마켓에서는 떡국용 떡을 파는데 한국회사 제품이긴 했지만 가격  대비 분량이 적고 떡이 그렇게 맛이 없었다. 그래도 가끔 입맛 없는 날이나 설날에 계란에 떡만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해서 손쉽게 먹기 좋을 듯하다.

'여의'에는 한국 과자(바나나킥 13Kr, 알새우칩 15Kr, 자갈치 11Kr)나 신라면, 불고기양념 42Kr, 김밥용 김 32Kr, 돌김구이 55Kr, 일본 된장(미소), 고추장 23Kr, 김치(작은 병에 든 것으로 ICA에서도 팔지만 한국회사에서 만든 것인데도 현지화되서 달고 맛이 없다. 직접 김장을 하느니만 못한 맛)도 판다.

채소 코너에서는  각종 시금치나 양파, 배추도  팔지만 나물은 (댓글로 어느  분이 제보 주신대로)숙주나물 하나밖에 없었다. 아마 그나마도 베트남쌀국수 같은 밑재료용으로  들어오는 게  아닐까 싶다. 아직 갓 개업해선지 매대가 빈 곳도 눈에 띄는데 각종 나물반찬도 들여오길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본다.

종갓집김치(열무ㆍ깍뚜기 모두 41Kr), 한성김치 41Kr 와 샹차이, 호박, 고추도 있지만 무슬림들이 운영하는 일일장터만큼 저렴하진 않다. 중국 식재료에 들어가는 희소 채소를 구하긴 좋지만

일상 재료를 대용량 구매할 땐 일일장터가 최고다.

안쪽 별도 공간에 달린 해산물코너에는 새우나 생선도 판다. '여의'의 매력은 태국, 중국, 일본의 향신료도 맘껏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샘표에서 나온 한국의 사과 식초 22Kr 뿐만 아니라 똠양 소스 39Kr, 데리야키 소스80Kr, 그린커리 87Kr, 팟타이 소스  23Kr, 중국 굴소스 19Kr 등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굴소스 19Kr와 칠리오일  29Kr, 까나리액젓 대용품인 피시소스 45Kr도 보인다.


아무튼 헬싱보리로 유학을 오시는 분들은 딱히 식재료를 준비하지 않으셔도 될 듯하다. 매실청이나 김장 담글 까나리액젓 같은 희소 재료는 챙겨 오는 것이 좋지만 그나마도 대체 가능한 재료가 시중에 많다. 예를 들면 식초로 매실청을 대신하고(그래도 매실청의 감칠맛은 못 따라가지 싶다) Fish sauce로 까나리액젓을 대체하는 식이다. 개인적으로는 혼다시 가쓰오부시 가루(모든 국류에 삼삼한 간을 하기 좋다), 라면수프, 건나물(미역, 고사리, 도라지, 콩나물 등), 매실청, 까나리액젓, 새우젓, 쌈장, 고추장, 된장, 김 정도를 제외하면 굳이 필요한 재료가 없을 것 같다. 현지서도 조달 가능하니 말이다. 특히 까나리액젓은 반드시 가져오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떤 실험 결과에서 김장을 할 때 유산균 발효 효과가 가장 높은 것이 까나리액젓이고, 제일 낮은 것이 새우젓이었다고 한다.)




유학을 온 뒤 한국에 계시는 분들이 자꾸 "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물어보셔서 겸사겸사 안심시켜 드릴 겸 간증 글을 쓰게 됐는데 아무쪼록 도움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아부지, 저 이렇게 잘 먹고 다닙니다,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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