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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기자 Jan 22. 2018

팀플레이는 개인플레이다

해외 석사생을 위한 '조 발표' 잡학 지식


'얀테의 법칙'으로 유명한 스웨덴이지만, 국제학생 비율이 스웨덴 학생 비율을 압도하는 학교에선 그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은근한 경쟁의식이나 티 안 나게 잘난 척하는 경우도 흔치 않다. 특히 발표나 토론 시간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이런 기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아시안 학생들은 소외되는 경우가 많고 논쟁에 끼더라도 핑퐁처럼 주고받는 문답 속에서 무시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교실은 총성 없는 전쟁터?)


아래 잡다한 TIP들은 '조모임 천국'이라고 불리는 스웨덴 교실에서 얻은 교훈에 대한 소소한 기록이다.






교재를 참고해 각 조당 기업 1개를 정하고 경영혁신이나 전략ㆍ조직문화ㆍHR 등 strategic management에 해당하는 주제로 Q&A 포함 45분 발표를 끝내야 한다.


팀플레이는 개인플레이다


조모임은 사실, 영어나 수업 내용 자체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다.

우리 조의 경우 무임승차자는 없었지만 조원들이 비협조적이고 자기 파트만 하는 성향이 강했다. 예를 들어 자기 파트가 아니면 오타나 실수가 보여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특히 조장 역할을 한 여자애가 같이 일하기 참 힘든 스타일이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서구권 학생 중 영어가 자기보다 서툰 외국인 학생에게 특유의 그 쐐한 태도를 보이거나 씹는 애들이 있는데 처음엔 이 아이도 그 부류에 속했다. (지금은 안 그런다) 몇 번 이건 아닌데... 싶어서 발표 방향을 수정하자고 제의했지만 메신저에서도 아무도 답을 안 하고 모임 때도 내 의견이 반영이 되질 않았다.



말빨(or 영어)이 달리면 권위에 호소하자


그래서 내가 생각한 방법은 우리 수업에 참관하는 박사 학생에게 피피티를 보여주고 그 피드백을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문제를 지적받았다) 조원들에게 들이대는 것이었다. 내 말이 맞지 않았냐고 무언의 강변을 하면서. 처음엔 이것조차 메신저에서 아무도 답변이 없어서 아, 이번 조모임은 망했구나 생각했는데 독일인 남자애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막판에 PPT를 대폭 수정하자고 건의했고, 나도 "우리 '제발' 바꾸지 않으련?" 하고 부추겨 결국 피피티를 고쳤다.


조모임 할 때 스트레스받고 그렇다고 각 잡기도 싫을 땐 (여기는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정색하거나 화를 내면 자기만 바보가 된다. 어떠한 경우라도 화내는 건 금물. 더군다나 앞으로 2년 간 볼 친구들이다) 저런 식으로 조교나 박사과정 학생의 피드백을 공유함으로써 내 의견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권위에 호소해서 지금 task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넌지시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사실 저런 팁도 먼저 프레젠테이션 수업을 한 다른 학과(Strategic Commucation) 소속 학생의 조언을 통해 건진 정보다. 꼭 같은 학과 2학년 선배가 아니라도 다른 학과는 어떻게 했는지 듣고 커닝 혹은 영감을 얻는 것도 좋다. 이 학과는 커리큘럼이 더 빡센 편인데 연극이나 롤플레이 등등 (내 생각으론 우리 학과보다 월등한) 창의적인 발표 사례가 나왔다고 친구가 귀띔해 줬다.


프릿지 prezzi 라는 PPT프로그램. 깔끔하고 무료다. 우리 조 PPT 양식이 너무 허접해서 저걸로 바꾸자고 할랬는데 그랬다간 조장 여자애에게 맞아 죽을 것 같아서 그냥 말았다


'누구나' 무대 울렁증은 있다


처음에 나는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긴장하는 이유가 영어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일례를 들어보자.

#1. 우리 학과에는 미모의 스웨디쉬 여학생 A가 있는데 오늘 그 애가 발표를 했다. 그런데 이 여학생이 초반부터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발표 말미에 가면서는 거의 울먹이듯 겨우 이어갔다. 본인도 의식한 듯 중간중간 웃었지만 안쓰러울 정도였고 솔직히 발표 내용에 집중이 안됐다.

#2. 내가 속한 조에는 늘 패셔너블 하게 입고 다니는 이탈리아 여자애 B가 있다. 패션 강국 출신답게 H&M을 케이스 스터디 주제로 제안한 것도 이 아이였다. 그런데 발표를 하루 앞둔 날, 25분간 발표 예행연습을 한 뒤 각자 짐을 챙겨 나가는데 이 아이가 말했다. "아 어쩌지 나 무지 떨 거 같아. 내 말은, 이탈리아어로는 잘 하는데 영어 발표는 처음이라" 그래서 "학교 오기 전에 와인을 마셔라"라고 했더니 다들 웃었다. (솔직히 그 정도로 웃기진 않는데 문화 차이인지 웃음 코드가 다른 것 같다)

#3. 인도네시아에서 국가 장학금을 받고 온 수재 친구 C도 쉬는 시간 긴장 풀 겸 나에게 와서 수다 떨다가 "와 어쩌지 떨린다" 이러며 환하게 웃었다. 당연히 귀를 의심했다.


위 3가지 케이스의 공통점은 A도 B도 C도 영어가 매우 유창하다는 거다. 스웨디쉬 학생 A도 우는 목소리로 떨면서도 영어를 좔좔 말했다. 결국 발표 때 떨리는 건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실수할까 봐, 군중의 시선을 받는 것이 일상적인 상황은 아니라서 그런 것인데, 개개인마다 드러나는 실수가 발표상의 허점인지, 영어 실력인지, 말실수인지 등으로 나뉠 뿐인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나는 2번의 발표를 할 때 전혀 긴장하지 않고 무사히 발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른 조가 발표할 때 조원 한 명 한 명을 보면서 시선처리나, 어조나 목소리, 속도, (의도적으로 연출하는) 농담이나 동선, 행동거지를 관찰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실 무지하게 잘들 하면서도 간혹 떠는 모습들을 발견하면 위안 아닌 위안도 받고 정작 내 차례가 되면 떨지 않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미키마우스 뱃지를 달고 종업원으로 빙의해서 '디즈니' 성공 사례를 발표한 조원들.


대본을 쓰고 외워가자 (안 보고 발표하기) / 의도적인 농담을 섞고 실전에선 발표가 아닌 '연출'을 한다.


1) PPT의 각 슬라이드에 해당되는 발표 내용을 적어 대본으로 만든다. 2) 계속 읽으면서 구어체로 수정한다. 3) 내가 평소 쓰는 익숙한 어투로 고치고, 모든 문장은 짧은 길이로 고친다.


이렇게 하면 설사 긴장해서 외운 걸 까먹는다고 해도 혀가 빨리 문장을 기억해 낸다. 친구들 중에는 쪽대본이나 스마트폰을 보고 발표하거나, 안 보고 하는 사람이 반반이었는데 확실히 보고 하는 쪽은 자신감이 없고 준비가 덜 된 것처럼 보였다. 또 문어체로 쓰인 글을 보고 읽기 때문에 전달력이 떨어지고, 청중도 쉽게 지루해져 주의력이 분산된다. 결정적으로 '없어 보인다'. 그래서 (교수님에게 최소한 준비를 했다는 걸 어필할 용도로) 대본을 준비는 하고 손에 들고 있되, 보지 말고 청중을 보면서 발표하는 게 좋다. 조당 1시간 가까이 발표하다 보면 다들 지루해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웃긴 말실수를 하거나, 교수님을 지칭해 예를 들면서 농담을 곁들이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채점을 하는 교수님들은 일반적으로 제일 앞자리에 앉는다. 본인 목소리가 작다고 생각하면 교수님 근처에 앉는 것이 발표 후 질문을 할 때 정확한 의미 전달을 돕는다.



휘발성 강한 발표의 특성을 역이용하자 - "약점은 숨기고, 강점은 두 번 세 번 강조"


발표의 특성상 (채점관이 녹취를 하지 않는 이상) 한 번 들으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에 '잘' 들어야 한다. 그래서 내 발표의 논지가 허접할 땐 이런 휘발성이 되레 유리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면,


#4. 우리 조는 H&M의 지속가능 전략이 발표 주제였는데, 애초에 SPA 패션 회사가 지속 가능한 경영 전략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지만 그래도 신선해서 주제로 선택했다. 그런데 문제는... 2012년부터 착수한 이 전략이 역사가 짧아선지 (아님 효과가 없어선지) 이 전략이 성공했다고 증명할만한 수치가 없었다. 그래서 PPT엔 온통 H&M이 말하는 장밋빛 전략을 고대로 받아쓰기했을 뿐, 실제로 이 전략이 성공적인지 증명할 근거가 빈약했다. 겨우 독일인 친구 B가 분기별 매출 분석 보고서에서 숫자 하나를 찾아냈지만 그걸론 부족했다.

그래서 내가 발표를 맡은 파트 (SWOT 분석)에서 억지로,

1) "SPA 패션업계 중 H&M이 지속가능 전략의 선도주자이고 '차별화 전략' 그 자체가 혁신이다"
2)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시적 성과는 적지만 확실한 건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다. (이미지 제고로 이어졌다는 근거 없음) 그래서 우리는 이걸 '성공적' 혁신 사례라 본다. ('성공적' 단어 재차 강조)
3) 그 증거로, CEO 칼 요한 페르손은 2016년 지속가능 리더상을 수상했다. (사실 상을 받았다고 이미지 높아지는 건 아님)
4) 그리고 매출에서도 이것은 드러나는데, 정확한 수치에 대해선 B가 나중에 발표할 거다" (회피)
 


이렇게 가능한 입으로 쪼개고 물타기를 많이 했다. 친구들이 B가 말한 부분을 찾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못 듣고 넘어가면 그건 그거대로 더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결론은, 발표를 끝낸 뒤에도 무사히 단점을 은폐할 수 있었다. 친구들 중 일부는 뭔가 수상했는지 "넌 H&M이 하는 저 말을 믿느냐? 난 안 믿는다" 이런 식의 개인 감상을 말하는데 그쳤지만 다행히도(?) 정확한 수치상의 근거가 누락돼 있다고 예리하게 지적한 학생은 없었다. 전체 그림과 패착을, 발표를 준비한 당사자들인 우리 조원들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기에 망정이었다. 하지만 교수님이 좀 총명한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발표 후 잘했다곤 하시긴 했는데 아마 다 눈치채셨을 것 같다. (이제 학점이 나오면 만천하에 드러나겠지...)


일본에서 유학한 경험을 십분 활용한 인도네시아인 친구의 발표. 같은 조 안에서도 튈려면 본인만의 킬링 아이템을 적극 어필할 필요가 있다. 특히 Asian이라는 문화적 특이성을.


'착한 아시안'이 되기보다 차라리 '해변' 같은 여자가 되자


항상 웃고 수동적이고 착한 동양인. 이런 것보다 차라리 Beach (언어 순화를 위해 동음이의어를 사용했습니다) 같은 여자 콘셉트로 나가는 게 유리한 것 같다. 유럽 출신의 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 애가 무심결에 한 말에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중국인들이랑 발표하는 건 참 좋아. 서양애들은 서로 자기 뜻대로 하려고 싸우는데 내가 뭘 하자고 하면 중국 친구들은 다 yes, yes 해주기 때문에 편해"


순간 깊은 빡침을 뱃속 아래 억누르고, "중국인들은 문화적 자부심이 강하고 표현도 거침없는 편이다. 다만 영어가 익숙지 않아서 그 애들이 그랬던 것 같다" 고 변명해준 뒤 집에 와서 혼자 속상해했다.


아마 제삼자의 시각에서 본 아시안들의 이미지가 저런 거겠구나, 추측하면서. 특히 서구권 학생 중에는 이미 네덜란드, 덴마크 등 같은 EU 내 다른 국가에서 공부한 아이들이 대다수이고, 그런 만큼 서구식 교육 시스템이 익숙하다. 반면 그렇지 못한 아시안들을 자신들의 학사기간 동안 경험했기 때문에 스테레오 타입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아시안들을 배려(?)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편견을 갖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둘 다 별로 기분 좋은 태도는 아니다. 그래서 웃고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아시안 이미지를 버리려고 노력했다. 아니다, 싶은 건 (한국에서라면 그냥 넘어갈 일이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본인이 수정하건 말건, 틀린 건 설명해 주는 게 좋다. 국적 불문, 어느 나라에 있건 간에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된다. 영어가 부족해도 주눅 들지 말고 자주 말하고, 끝까지 말하려고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런 게 모이고 모여서 자기 이미지를 형성하고, 주변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가 학기 말미에는 미묘하게 바뀌는 걸 실제로 경험했다.


'칼스버그' 발표를 위해 직접 코펜하겐 양조장에 다녀온 조. 발표 말미에 견학 영상을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적이었다.


마침표는 내가 찍는다.


존경하는 한국인 교수님이 계시는데 그분 대응이 인상적이었다. 노동 특성에 따라 다른 조직의 인적자원 관리를 설명하셨다. "같은 서비스 산업 종사자라도, 의사 같은 지식 노동자의 경우와 스튜어디스 같은 front line 노동자의 관리법이 상이하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는데 어떤 학생이 굳이 안 해도 될 반론을 펼쳤다. "스튜어디스라고 지식 노동자 범주에 안 들어갈 순 없다"라고. 지엽적 사례일 뿐이라 굳이 각주를 안 달아도 될 질문이다 싶어 아시안 학생들끼리 허공에 대고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또 시작이다.. 걍 좀 넘어가지' 이런 눈빛의.


그런데 그때 교수님은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넘어가시는 게 아니라 조목조목 근거를 대면서 끝까지 반박하셨고 마지막엔 "내 딸이 스튜어디스로 일했기 때문에 그 분야 일을 잘 알고 있다"라고 확인사살까지 하셨다. 그리곤 더 이상 그 애의 입에서 반박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사소한 일화지만 대응이 인상적이라 나도 다음에 따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토론 시간에도 마찬가지여서 학생들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시되, 맞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은 자신 있게 할 말 다 하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스웨덴 이름 중엔 누구네 아들이라는 뜻의 '-son'으로 끝나는 이름들이 많다. 도서관에 갔다가 책장에 꽂힌 교재의 예약자 이름표들을 보고 하도 웃겨서 도촬을 했다.


친구들 기분 안 상하게, 그러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준비


친한 친구가 하는 발표라면, 감정 안 상하게 에둘러서 질문하는 게 후일(?)을 위해 좋다. 예를 들면, 겉보기엔 잘한 거 같은데 핵심 내용 빠져있고 연극이나 롤플레이로 얼렁뚱땅 넘어간 부분 있으면 Q&A 시간에 아래와 같이 질문을 던졌다.


#5. "프레젠테이션 정말 좋았고 잘 봤다. 고맙다 (질문에 앞서 반드시 말하는 게 좋다. 대부분 다른 학생들은 안 하기 때문에. 이걸 하고 안 하고 차이가 큰 것이, 다들 공격적 질문을 받을까 봐 쫄아있는데 이렇게 칭찬을 해줄 경우 내가 발표할 순번 때 태도가 호의적이었을뿐더러 평소 서먹하던 애들과도 벽을 허물 수 있었다)
그런데, 너넨 '고어 재팬'의 핵심역량이 AA라고 했는데 난 BB라고 생각하거든. 왜냐면 CC라는 증거가 있잖아? 이에 대한 너희들 개인적 생각이 궁금하다"
이 말의 뜻은 '너네는 핵심역량을 안 거드리고 피상적인 정보를 언급했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건데 조원들 대부분이 질문 요지를 파악 못 해서 엉뚱한 답변을 하거나 한 친구는 발표가 끝난 뒤 다시 질문을 물어봤는데 정작 교수님은 알아들으신 듯했다.


가급적 친한 친구가 끼어 있는 발표 때는 "발표 중 oo라고 한 부분 한 번만 더 설명해줄 수 있냐" 이런 식으로 개념 위주 질문을 했지만 교수에게 어필하고 싶을 땐 뾰족한 질문을 던져서 점수를 따는 게 좋을 것 같다.


#6. 예를 들면 내 친구의 경우 "제조업에 국한해 Lean management 사례를 발표했는데 인력 감축에 악용될 가능성은 있나"라는 질문을 했다가 교수님의 칭찬을 받았다. 이 친구는 또 성격까지 좋은 것이... 발표 전날 은근슬쩍 나에게 SNS를 보내 "나 내일 질문하고 싶은데 AA 부분이 궁금하다"면서 내가 당황하지 않게 사전에 힌트를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목소리가 적다면 뒤에 앉지 말고) 질문할 거리 있는 날이면 교수 옆에 앉아서 교수에게 잘 들리도록 하자. 대신 질문은 이상한 거 말고 진짜 뾰족한 준비 해야 한다. 특히 챕터에 벗어난 질문 하면 학생들 안 좋아한다. 다들 방어태세이기 때문에.



평가는 늘 주관적이다 / 채점관에 전략적으로 어필하기


#7. 일본에서 유학한 남아시아 출신 친구가 있다. 마침 교수님이 일본 유학 경력이 있고 연구분야가 그쪽이라 엄청 어필을 했다. 발표 전체 내용과 직접적 연관은 없는데도 '일본식 명함 건네기' 연극까지 펼쳤고 교수님이 한국인인 걸 의식해선지 '한국식 회식문화'에 대한 설명에 PPT 1장을 할애했다. 뒤풀이 파티에는 교수님의 한국 모교 잠바까지 입고 왔다. 1학기 동안 2번의 에세이와 2번의 프레젠테이션 평가를 거쳤는데, 이 친구의 경우 에세이 2개 모두 주제가 '일본의 감정노동'이었고, 프레젠테이션도 2번 모두 일부러 조별 활동 중에 자기 할당량을 만들어서 ('고어 재팬' 성공 사례에 대한 문화적 배경 분석, 이런 식으로) '일본의 하이어라키 조직 구조'에 대한 설명을 넣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선 "또? 너 거의 전문가네 이쪽으론" 이런 은근한 질시 섞인 반응도 나올 정도였다.


사실 프레젠테이션에서 굳이 일본 사례를 넣은 건 요지에 딱히 부합하지 않아 무리수였지만 그래도 이 친구의 대응이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볼 때 이 친구는 자신의 문화적 강점(남아시아 출신+일본 유학)을 어필하고, 그걸 강점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8. 그 친구가 쓴 에세이 파일 2개를 참고할 겸 보여달라고 부탁해서 분석해 봤는데,  글을 쓴 동기나 참고자료 등을 쓰는 Appendix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내가 이 글을 쓴 동기는 스웨디쉬 사회의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였다. 일본은 서비스 질이 훌륭한데 반해 삶의 질 차원에서는 스웨덴이 훨씬 앞서 있고 개인의 자유를 누리기 좋다"라고 썼기 때문이다. (참고로 에세이 평가를 한 교수 2명 다 스웨디쉬다)


이건 좀 심하다,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사실은, 이 친구가 30명 정원의 우리 학과 중 성적이 최상위권에 있는 몇 안 되는 학생 중 하나라는 것. 이제 24살인 학생이지만 영악할 정도로 세심한 면을 볼 때면 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뒤풀이 파티 때 불닭 볶음면을 끓이고 있는 귀요미들.


 그룹 발표는 남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보고 베낄 절호의 기회


기숙사에서 혼자 갇혀 에세이를 쓰고 리딩을 하면서 지식을 얻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남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참고하면서 따라 배우는 게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처럼 유학은커녕 한국에서도 석사 공부를 한 적이 없는 사람에겐 주변에 롤모델이 될 친구들이 필요하다. 조 발표는 그들이 내뱉는 말 하나하나를 안 놓치고 팁을 적어놓고 내 것으로 흡수할 기회다. 조금이라도 궁금한 점이 있으면 바보같이 보이건 말건 일단 물어보는 게 좋다. 조모임에 직접적 연관은 없어도 이건 왜 이랬니? 이거 꼭 필요하니? 이런 식으로. 대부분 영어권 국가에서 학/석사를 경험한 친구들의 지식을 순식간에 흡수할 수 있고, 그런 게 쌓여서 비약적인 압축 성장을 이뤄낸다.


(수업 전 미리 질문을 준비한 뒤) 질문시간엔 무조건 첫 빠따로 손 든다

핑퐁처럼 튀는 대화 속에 중간에 치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어차피 타이밍 잡기 힘들다면 제일 먼저 말하기.


PPT 마지막 장에는 Reference 목록을 넣는다

물론 발표 때는 쓰이지 않을 슬라이드지만 채점관에게 어필을 하고 다른 조와 차별화할 수 있다. 이것도 우리 조의 조장 여자애(유럽인, 영어권 학사 유학 유경험자)에게 "왜 Reference 슬라이드를 넣었느냐"라고 물어봤기 때문에 얻은 팁이다. 자료의 신빙성을 높이고 교수님이 차후라도 내용 진위를 확인하실 수 있다.








2번의 발표를 끝내고 갑자기 마음이 허해져서 분노의 김장을 담았다. 석사기간 중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 보람과 성취감도 형언할 수 없이 컸다.


팀플레이? '따로 또 같이'


얼핏 조 발표의 부정적인 부분이 만만찮은 것 같지만 이런 교육이 개인적으로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흔히들 스웨덴의 조모임 교육이 '윈-윈'을 가르친다고들 하는데 그 정도까진 몰라도 확실히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내 친구는 유니레버에서 6년 간 회사 생활을 하다 석사 유학을 왔는데 나처럼 전공을 바꿔 지원한 케이스였다. 둘 다 관광업계에서 일한 적은 없지만 그간 사회에서 먹은 짬밥(?)이 있어선지 지식을 실무에 적용해 행간을 잘 읽었고 간혹 뾰족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반대로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들은 서구권 교육 시스템에 익숙해서 아카데믹한 발표, 공부, 라이팅에 능숙해 같이 작업을 하면 상호보완이 됐다.

특히 우리 조 조장 여자애처럼 타 국가에서 학사 경험이 있는 학생이 거의 전체의 3/4이라 어깨너머로 보면서 그들이 체득한 지식을 단기간에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재미있는 것이, 다들 사정이 비슷한 건지 서로의 PPT 발표를 보면서 모방하고 벤치마킹을 하기 때문에 수업 말미로 갈수록 PPT 수준들이 점점 높아진다. 어떨 땐 내가 발표한 스타일을 다른 학생이 비슷하게 연출하고 있는 걸 보면서 감개무량해지기도.


이번 주부터 2학기를 시작하면서 방법론 Methodology를 배우고 있는데 역시나 조모임 쓰나미가 예상된다. 이번엔 좀 더 웃으면서 즐겁게 능선을 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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