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석사생을 위한 '조 발표' 잡학 지식
팀플레이는 개인플레이다
말빨(or 영어)이 달리면 권위에 호소하자
'누구나' 무대 울렁증은 있다
#1. 우리 학과에는 미모의 스웨디쉬 여학생 A가 있는데 오늘 그 애가 발표를 했다. 그런데 이 여학생이 초반부터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발표 말미에 가면서는 거의 울먹이듯 겨우 이어갔다. 본인도 의식한 듯 중간중간 웃었지만 안쓰러울 정도였고 솔직히 발표 내용에 집중이 안됐다.
#2. 내가 속한 조에는 늘 패셔너블 하게 입고 다니는 이탈리아 여자애 B가 있다. 패션 강국 출신답게 H&M을 케이스 스터디 주제로 제안한 것도 이 아이였다. 그런데 발표를 하루 앞둔 날, 25분간 발표 예행연습을 한 뒤 각자 짐을 챙겨 나가는데 이 아이가 말했다. "아 어쩌지 나 무지 떨 거 같아. 내 말은, 이탈리아어로는 잘 하는데 영어 발표는 처음이라" 그래서 "학교 오기 전에 와인을 마셔라"라고 했더니 다들 웃었다. (솔직히 그 정도로 웃기진 않는데 문화 차이인지 웃음 코드가 다른 것 같다)
#3. 인도네시아에서 국가 장학금을 받고 온 수재 친구 C도 쉬는 시간 긴장 풀 겸 나에게 와서 수다 떨다가 "와 어쩌지 떨린다" 이러며 환하게 웃었다. 당연히 귀를 의심했다.
대본을 쓰고 외워가자 (안 보고 발표하기) / 의도적인 농담을 섞고 실전에선 발표가 아닌 '연출'을 한다.
휘발성 강한 발표의 특성을 역이용하자 - "약점은 숨기고, 강점은 두 번 세 번 강조"
#4. 우리 조는 H&M의 지속가능 전략이 발표 주제였는데, 애초에 SPA 패션 회사가 지속 가능한 경영 전략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지만 그래도 신선해서 주제로 선택했다. 그런데 문제는... 2012년부터 착수한 이 전략이 역사가 짧아선지 (아님 효과가 없어선지) 이 전략이 성공했다고 증명할만한 수치가 없었다. 그래서 PPT엔 온통 H&M이 말하는 장밋빛 전략을 고대로 받아쓰기했을 뿐, 실제로 이 전략이 성공적인지 증명할 근거가 빈약했다. 겨우 독일인 친구 B가 분기별 매출 분석 보고서에서 숫자 하나를 찾아냈지만 그걸론 부족했다.
그래서 내가 발표를 맡은 파트 (SWOT 분석)에서 억지로,
1) "SPA 패션업계 중 H&M이 지속가능 전략의 선도주자이고 '차별화 전략' 그 자체가 혁신이다"
2)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시적 성과는 적지만 확실한 건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다. (이미지 제고로 이어졌다는 근거 없음) 그래서 우리는 이걸 '성공적' 혁신 사례라 본다. ('성공적' 단어 재차 강조)
3) 그 증거로, CEO 칼 요한 페르손은 2016년 지속가능 리더상을 수상했다. (사실 상을 받았다고 이미지 높아지는 건 아님)
4) 그리고 매출에서도 이것은 드러나는데, 정확한 수치에 대해선 B가 나중에 발표할 거다" (회피)
'착한 아시안'이 되기보다 차라리 '해변' 같은 여자가 되자
마침표는 내가 찍는다.
친구들 기분 안 상하게, 그러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준비
#5. "프레젠테이션 정말 좋았고 잘 봤다. 고맙다 (질문에 앞서 반드시 말하는 게 좋다. 대부분 다른 학생들은 안 하기 때문에. 이걸 하고 안 하고 차이가 큰 것이, 다들 공격적 질문을 받을까 봐 쫄아있는데 이렇게 칭찬을 해줄 경우 내가 발표할 순번 때 태도가 호의적이었을뿐더러 평소 서먹하던 애들과도 벽을 허물 수 있었다)
그런데, 너넨 '고어 재팬'의 핵심역량이 AA라고 했는데 난 BB라고 생각하거든. 왜냐면 CC라는 증거가 있잖아? 이에 대한 너희들 개인적 생각이 궁금하다"
이 말의 뜻은 '너네는 핵심역량을 안 거드리고 피상적인 정보를 언급했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건데 조원들 대부분이 질문 요지를 파악 못 해서 엉뚱한 답변을 하거나 한 친구는 발표가 끝난 뒤 다시 질문을 물어봤는데 정작 교수님은 알아들으신 듯했다.
#6. 예를 들면 내 친구의 경우 "제조업에 국한해 Lean management 사례를 발표했는데 인력 감축에 악용될 가능성은 있나"라는 질문을 했다가 교수님의 칭찬을 받았다. 이 친구는 또 성격까지 좋은 것이... 발표 전날 은근슬쩍 나에게 SNS를 보내 "나 내일 질문하고 싶은데 AA 부분이 궁금하다"면서 내가 당황하지 않게 사전에 힌트를 주기까지 했다.
평가는 늘 주관적이다 / 채점관에 전략적으로 어필하기
#7. 일본에서 유학한 남아시아 출신 친구가 있다. 마침 교수님이 일본 유학 경력이 있고 연구분야가 그쪽이라 엄청 어필을 했다. 발표 전체 내용과 직접적 연관은 없는데도 '일본식 명함 건네기' 연극까지 펼쳤고 교수님이 한국인인 걸 의식해선지 '한국식 회식문화'에 대한 설명에 PPT 1장을 할애했다. 뒤풀이 파티에는 교수님의 한국 모교 잠바까지 입고 왔다. 1학기 동안 2번의 에세이와 2번의 프레젠테이션 평가를 거쳤는데, 이 친구의 경우 에세이 2개 모두 주제가 '일본의 감정노동'이었고, 프레젠테이션도 2번 모두 일부러 조별 활동 중에 자기 할당량을 만들어서 ('고어 재팬' 성공 사례에 대한 문화적 배경 분석, 이런 식으로) '일본의 하이어라키 조직 구조'에 대한 설명을 넣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선 "또? 너 거의 전문가네 이쪽으론" 이런 은근한 질시 섞인 반응도 나올 정도였다.
#8. 그 친구가 쓴 에세이 파일 2개를 참고할 겸 보여달라고 부탁해서 분석해 봤는데, 글을 쓴 동기나 참고자료 등을 쓰는 Appendix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내가 이 글을 쓴 동기는 스웨디쉬 사회의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였다. 일본은 서비스 질이 훌륭한데 반해 삶의 질 차원에서는 스웨덴이 훨씬 앞서 있고 개인의 자유를 누리기 좋다"라고 썼기 때문이다. (참고로 에세이 평가를 한 교수 2명 다 스웨디쉬다)
그룹 발표는 남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보고 베낄 절호의 기회
(수업 전 미리 질문을 준비한 뒤) 질문시간엔 무조건 첫 빠따로 손 든다
PPT 마지막 장에는 Reference 목록을 넣는다
팀플레이? '따로 또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