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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기자 Dec 31. 2017

겨울이 긴 나라에 살 때 생기는 몸의 변화

"Winter is coming..!"





헬싱보리 구스타프 성당 광장에 세워진 대형 트리.

12월 15일, 1학기가 끝나고 종강 파티를 한 지 2주가량 흘렀다. 대부분 학생들이 가족이 있는 고향에 돌아가거나 가까운 유럽으로 삼삼오오 짧은 여행을 떠났다. 그 탓에 동네가 (안 그래도 스웨덴은 인구가 적어 유령 도시 같은데) 텅 비어 썰렁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나처럼 어디 가지 않고 머무는 사람들도 있어 쓸쓸하지만은 않다. 곳곳에 켜진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물들이 연말 분위기를 더한다.


최근 반성하는 일이 잦아졌다.

다음 학기에 공부할 리딩 리스트를 미리 뽑아 읽고 과제를 하느라 집순이 노릇을 자처하고 있는데 정신 차려보니 벌써 2017년의 마지막 날. 요새 들어 부쩍 나태해지고 몸이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점검을 위해 내 일상과 공부량을 쭈욱 기록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 그랬더니 일단 나의 문제는,

너무 많이 먹고, 잠을 너무 많이 잔다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 모든 게 날씨와 연관이 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일단 그간 관찰한 결과, 내 몸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꼽아보면..



1. 우선 식욕이 폭발한다.



평소 입이 짧은 편인데도 요즈음은 늘 습관적으로 뭔갈 먹고 있다. 위 사진은 친구 A의 생일파티 때 찍은 사진인데, 각자 요리를 한 뒤 가져와서 펼쳐놓고 먹는다. 이 날도 폭식을 했다. 낮의 길이가 극단적으로 짧은 이 나라 겨울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8월에는 오후 8시 30분쯤 돼서야 뉘엿뉘엿 지던 해가, 10월까지만 해도 참을 만하더니 11월이 되니 오후 5시에 떨어졌다. 12월이 되니 오후 3시면 창 밖이 새벽 3시를 연상시킬 정도로 캄캄하다. 반대로 아침 해는 참 더디게 뜨기 때문에 일어나기가 더 힘들다.


홀린 듯이 훠궈( Hot pot)를 흡입한 나와 친구들. 고향 가는 중국인 친구들의 환송식이 열렸다.


일례로,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인데 오전 11시쯤 겨우 눈이 떠져서 일어나 씻고 간식을 먹다가 12시부터 집에서 꾸역꾸역 자습을 하기 시작했다. 문득 정신 차려보니 밖이 어둑어둑해서 '어이쿠 벌써 저녁이네?' 이러면서 습관적으로 냉장고에서 밥, 반찬을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35분.


때아닌 시차 적응을 다시 하게 만드는 이상한 낮 길이 때문에 식욕을 조절하는 기능이 자율성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내가 있는 헬싱보리(스웨덴 남부 해안지역)는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은 곳이다. 12월인데도 부산보다 약간 춥고 서울보다는 늘 3~4도 높은 영상권 온도를 유지해 많은 학생들이 반팔 위에 점퍼만 걸치고 다닌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조차도 면역력이 높아져선지 여기 와서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다. 그래서 '북유럽의 겨울'이 악명 높다더니 별 것 아니구나, 했는데 온도가 아니라 낮의 길이가 복병이었다는 게 함정이었다.



친구가 만들어준 볶음면(위 사진)이다. 이 친구가 세 들어 사는 집주인은 시칠리아 출신 이태리인인데, 친구가 요리를 다 만들 때까지 나는 그 새를 못 참고 테이블에 있던 이태리 요리 책을 쳐다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2. 시도 때도 없이 졸린다


이것도 빛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사람도 동면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글들을 몇 개 찾아본 적 있는데 자연 상태의 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줄면,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되고 생체 리듬이 깨져 육체가 낮밤을 분간하기 힘들게 된다고 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주변 친구들도 엇비슷했다. 10월에 만난 어떤 친구는 오후 4시만 되면 미칠 듯이 졸려서 자다가 어중간하게 저녁 7시에 일어나 화장을 지우고 다시 잠든다고 했다. 눈이라도 내려 시야가 더 어둑해지면 늦잠이 일상다반사다.


.. 그래도 가끔씩 눈이 '귀한' 헬싱보리 남부에 밤새 눈이 자욱하게 내리면, 새벽에 일어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창문을 열어보는 재미도 있는 것 같다.




3. 우울해진다 (+운동부족)


나는 추위는 싫어하지만 밤이 길고 조용한 겨울은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비 오는 날씨를 미친 듯이 좋아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여러 번 비가 온다는 헬싱보리에 간다고 했을 때 뛸 듯이 기뻐했던 게 기억난다. 그래서 향수나 우울증, 외로움 따위는 남일이겠거니 생각했다. 실제로 초기엔 적응도 곧잘 했다.

 


제때 관리 안 해주면 멘탈이 부서진다

하지만 11월 중순인가, 겨울이 본격적으로 찾아오며 경미한 우울감에 빠졌다. 하루 종일 해가 안 보이고 우중충한 회색이었다.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비라도 내리면 시원할 텐데 비는 안 오면서 구리고 쐐한 날씨가 계속되니 기분이 다운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일단 매사에 의욕이 없었다.


이 문제를 극복한 건 (시간이 해결해준 것도 있겠지만) 친구들과의 대화 덕이 컸다. 남아시아에서 온 한 친구는 이번이 살면서 처음 겪는 겨울이라고 했다. 정말 밝은 친구인데 우울해서 한동안 친구들 집에서 자고 이야기를 하니 나아졌다고. 그 말을 듣고 공감하는 순간 나도 우울함을 잊게 됐다.


감탄하면서 이 말을 건넸다. "그래, 진짜 이야기를 하고 서로 나누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 같다, 해결책이 없어도 그냥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사실 저 말도 하루 전에 만난 스웨덴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그 친구도 활기차고 사교적인 친구인데 칼라테라피 mindfulness를 하고 있다며 애플리케이션을 소개했다. 그러는가 하면 동유럽에서 온 자신만만한 친구는 Transcendental meditation을 하고 있다고 유튜브 영상까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도 의아해서 "너네는 그런 게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늘 밝고 자신감 넘쳐 보여서" 그랬더니 자기도 가면을 쓰고 감정을 숨길뿐이지 다 힘든 건 똑같다고 했는데 마침 예전에 좋아하던 아이돌 멤버의 비보를 접한 뒤라 마음이 착잡했다.


물론 위의 친구들이 겪은 우울감의 원인에는 날씨 외적인 요인들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날씨의 영향이 크다는 걸 실감했다. 수업이 다 끝나고 기숙사에 남은 친구들끼리 모여 파티를 하는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멕시코 친구가 안 보였다. 알고 보니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항상 안 먹고 살이 다 빠져서 줄담배만 피웠는데.. 벌써 돌아간 지 오래됐어" 그동안 수업 때문에 바빠서 챙겨주긴커녕 제대로 인사도 못 한 게 너무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쇼크였다. 다들 공부하느라 시간이 빠듯한 것도 한몫하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위에서 말한 친구들과 만나 각자의 문제를 (동시에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종강 이후에나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고민 끝에 생각해낸 방법은 크게 아래 4가지다. 요는 '낮처럼 주위 환경을 조성'해 주면 된다.



1. 일정 온도 유지 - Convector heater (대류성 히터)의 활용, 양말, 따뜻한 차와 물, 글뢰기 마시기


나에겐 한국에서 가져온 미니 전기히터가 있는데 물론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공부할 때 책상 밑에 두고 쓸 때는 문제가 없지만 방 전체를 덥히기엔 한계가 있다. 불가에 가까이 갔을 때만 따뜻하기 때문에 자연히 운동도 안 하게 되고 활동성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연휴가 지나면 컨벡터 히터를 살까 생각 중이다. 친구가 라디에이터가 고장 난 탓에 기숙사에서 저 대류성 히터(Clas Ohlson 제품)를 빌려 쓰던데 다들 반팔만 입은 채 밥 먹고 게임을 했다. 방안이 훈훈해선지 다들 간만에 미친 듯이 웃고 떠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양말의 진가를 스웨덴에 와서 깨닫게 됐다. 10월 말쯤 슬슬 추워질 때 새벽에 자다가 깨는 일이 잦아 친구에게 하소연하니 "양말을 꼭 신고 자라"길래 "넌 우리 아버지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라고 대거리해 줬는데 한 번 신고 잤더니 체온이 5도는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저처럼 답답한 걸 싫어하는 분은 유니클로 털 실내화를 챙겨 오시면 요긴할 겁니다)



2. 밝기 유지 - 램프와 캔들을 활용


방 안을 최대한 여러 개의 조명을 활용해서 밝히는 게 좋다. 한국인 친구 한 명은 예쁜 초를 수집하고 있는데 "왜 여기 사람들이 예쁜 조명이나 초에 집착하는지 알 것 같다"라고 했다. 이젠 정말 2백 퍼센트 공감하고 있다.


3. 일정 체온과 활동성 유지 - 루틴한 동과 공부


이건 위 1번이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 같다. 방이 훈훈해지면 사람이 활기가 돌고 움직임이 많아진다. 가능한 수업 시작하기 전 짬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못 보던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운동도 마음껏 해야겠다.






4. 그 밖에 릴랙스하게 해줄 것들 - 알코올과 각종 달다구리(케이크, 초콜릿, 구디스, 짠 스낵..)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시스템볼라겟












건강 전문 매거진을 보니 '그나마 해가 보이는 낮 시간에 산책을 조금이라도 하고 햇볕을 많이 받아라'라고 조언하더라. 친구들 중에는 비타민 D를 먹고 광합성을 하는 아이들도 많다. 공부도 어쨌거나 장기전이니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자기관리도 부지런해야 가능한데.. 이 날씨에 바지런해지기 참 힘들지만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자꾸 노력하는 게, 멘탈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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