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기준은 누가 정한건데?

역지사지 시리즈

by 칼과나


photo-1506126613408-eca07ce68773.jpg © jareddrice, 출처 Unsplash

아이가 제 나이에 알아야 할 것을 모를 때 친절하지 못했다. 2학년이 구구단을 모른다는 것은 니가 학교 생활을 충실히 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퉁을 줬다.


나는 100점을 바라는 엄마가 아닌데. 그저 지금 학년에 배우는 것이라도 충실히 배워서 알고 있기를 바라는 것 뿐인데,라고 나를 정당화해왔다.


아이가 마땅히 알아야 하는데 모르고 있는 것을 가르칠 때 혼내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던 굳건한 믿음에 처음 균열이 생긴 건 2년 전 겨울, 아이들과 함께 내가 스키를 배울 때였다.


그 선생님은 왕초보일 때는 아주 친절하고 우쭈쭈를 해주며 가르치는데 어느 정도 운동 신경이 있고 스키 타는 능력이 높아지면 기대치를 기하급수적으로 올려서 매섭게 가르쳤다. 폴대로 헬멧을 두드리기도 하고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같이 배우는 다른 사람들은 혼이 나도 고분고분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하는데 나는 짜증이 났다.


"여보세요. 나는 이걸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즐기려고 하는 거지 혼나면서 이걸 배울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나한테 방금 처음 가르쳐놓고 이러면 이런다고 혼내고 저러면 저런다고 혼내면 어쩌라는 겁니까?!"라고 말로 악다구니를 하지는 않았지만 고글 사이로 보이는 눈빛, 제스처로 전달이 되었겠지.


이런 선생을 만나니 스키 타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그 선생에게 배정되면 한숨이 났다. 결국 그 선생에게 배우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그러면서 문득 내가 아이들에게 이런 엄마는 아니었나 돌아보았다. 아니라고 못 하겠더라. 다만 아이들은 이 엄마에게 배우지 않겠다고 보이콧할 수 없을 뿐.


이 정도 타면 이건 알고 있어야지, 이 코스를 타면서 이걸 한 번에 못 한다고? 그러니까 내가 널 혼내는 거야,라는 건데 정확히 내가 아이를 혼내는 로직이 아닌가 싶었다.


2학년인데 구구단이 척척 안 튀어나와?

4학년인데 아직 띄어쓰기가 안돼?

6학년인데 thousand의 영어 스펠링을 몰라?


그러니까 내가 너를 혼내도 돼.


반면 혼날 때의 내 마음은 이랬다.


나도 이걸 못하는 채로 연습을 해서 익힐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처음부터 어떻게 잘 합니까?

못해도 내가 못하지, 내가 당신한테 스키 가르쳐달랬지 혼낼 권리를 언제 줬는데요?


못하는 것만으로 아이도 마음이 편치 않다.

못해도 아이가 못하는거다.

그러니 이미 힘든 아이를 더 힘들게 하지 말자. 할 수 있는 한 친절하자.

내가 그런 선생을 바랐으므로.

친절하면서도 만만하지 않을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테스트해보자.

좋은 선생들이 그러하듯이.


덕질하다 발견한 트위터 명언이 생각나는 밤이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당신이 전혀 모르는 전투에서


각자


싸우고 있습니다.


언제나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세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엄마친구와의 대화를 즐기는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