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시리즈
서울에서 경주로 내려갈 때,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운전을 했다. 운전면허 시험장 앞 버스정류장에 붙은 광고문구를 보니 6시간 도로연수는 15만원이던데 운전연수하는 셈치고 운전을 해봤다.
경기도 이남의 AI도 운전할 수 있는 고속도로에서는 몇 번 운전을 해봤었다. 그럴 때는 남편이 너무 졸려서 운전을 맡기는 거여서 별 일이 없었고 항상 수도권에 들어오기 전 휴게소에서 운전석을 다시 넘겼던 터라 차를 몰고 수도권을 지나 집까지 오는 건 처음이었다.
경기도로 접어들면서 차도 많아지고 차선 바꿀 일도 많아지니 나도 남편도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남편이 옆에서 어찌나 혼을 내는지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는데 나한테 화풀이를 하나 싶을 지경이었다.
브레이크를 너무 급하게 밟아서 사람 불안하게 만든다고 화내고, 그 말을 듣고 울컥거리지 않게 밟느라 신경 쓰면 브레이크를 늦게 밟아서 차간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서 사람 불안하게 만든다고 혼내고. 차가 차선을 인식해서 운전중에 라인을 밟으면 핸들이 부르르 떨리면서 알려주는데 차선을 밟았다는 신호가 안 오는데 오른쪽 차선 밟고 간다고 계속 혼내고, 근데 또 운전석 쪽 라인 밟은 건 자기 기준에 안 거슬리니 암 말 안 하고 넘어갔다.
차선을 밟고 가는 게 위험하면 왼쪽 차선을 밟으나 오른쪽 차선을 밟으나 위험하긴 마찬가지인데 본인에게 보이는 쪽에만 민감하게 구는 것은 편파적인 시각이라고 말대꾸를 했더니 오른쪽 차선에는 차가 오기 때문에 왼쪽 차선을 밟아서 중앙분리대를 나 혼자 긁는 것보다 더 위험한 거라고 한다. 내가 2차선에 있을 때는 왼쪽 차선 쪽이 다른 차 긁는 건데?라고 말대꾸 했더니 한숨 쉼.
언제는 1차선은 추월차선이니까 너무 오래 머물지 말라고 하더니 언제는 1차선으로 쭉 가라고 하고, 언제는 1차선 뒤에서 바짝 따라오는 차에게 자리 비켜주래서 오른쪽 차선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추월차선에 따라오던 뒤차가 나한테 바짝 붙어서 2차선으로 추월하길래 ‘아유 놀래라’ 했더니 위험하게 운전한다고 난리. 어쩌란 말이냐 진짜.
장롱면허인 나는 면허 갱신을 두번째 하고도 모든 것이 서툴 수밖에 없는데 서툴다고 계속 혼나면서 경주에서 서울까지 끌고오다보니 아이들 혼내는 내가 떠오르더라.
아이들은 모든 게 처음이니까 서툴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걸 모르냐고 혼내고, 그렇게 서툴러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 거냐고 불안해하고 아이가 혼나다 혼나다 자기 기준에 엄마가 하는 말이 일관성이 없어서 말대꾸하면 저거 커서 뭐 되려고 저러나 한숨 쉬고 딱 그랬던 것 같다.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나쁘고 다 때려치고 싶어 말대꾸를 하는 와중에 남편도 나에게 차선을 밟음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을 알려주고 방지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구나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남이 운전할 때는 불안해도 화를 내지는 않는다. 운전 미숙으로 인해 사고가 났을 때 모든 책임은 운전대를 쥔 사람이 지는 것이고 나에게는 그닥 큰 영향이 없다. 하지만 가족은 다르다. 니가 사고를 내면 곧 내 지갑에서 돈이 나가고, 니가 다치면 그건 나의 큰 불행이니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상황은 이미 아무 큰 일 없이 지나갔지만 화를 내서라도 앞으로 그런 일이 닥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알겠다.
남편이 계속 한 말도 이렇게 운전하면 사고가 나기 쉽고 다른 운전자들에게도 민폐라는 얘기였다. 아이를 혼낼 때 나의 논리도 그것이었다. 이렇게 늦잠을 자면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느냐, 회사 갈 때도 엄마가 깨워줄 줄 아느냐, 이렇게 정리를 안 하고 살면 어떻게 하느냐. 단호하고 담백하게 '정리하라, 일어나라'고만 말하면 되는 거였는데. 앞으로 살아갈 모든 아침의 실패를 담아 거대한 낭패를 만든 다음 아이에게서 그 비극적인 미래를 지워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아이들도 '해야할 일을 먼저하기'라는 중요한 명제를 자기 인생에 적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지금 그 습관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고 세상이 무너지고 앞날이 우중충해지는 것이 아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미리 아이에게 화를 내고 윽박지르고 다그친다고 그 일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가 일러줬던 그 일들을 습관으로 가지지 않음으로써 일어나는 실패들도 겪어보아야 한다. 그랬을 때 엄마를 찾아올 수 있는 관계면 족하다. 엄마가 해줬던 말을 떠올리며 바로잡으려고 노력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니 항상 기억해야지. 지금 한 이 잘못에 대해서만 담백하게 알려주기. 그 잘못이 일으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끌고 와서 막아주려하지 말기. 어차피 막아지지 않으니까.
부부 사이에 운전 가르쳐주는 거 아니랬는데 부자지간도 그런 것 같다.
애 영어 가르치고 그러지 말아야지….